“아 여자들의 신음소리는 어쩌면 저렇게도 천차만별인가. 지금 사사코가 내지르는 저 신음소리는 일찍이 한 번도 듣지 못한 기묘한 절창이 아닌가.”
강쇠는 언젠가 교접 중에 어떤 여자가 내지르는 섹시한 신음을 듣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교접시의 신음은 마치 음악과도 같다고. 가요든 뽕짝이든, 팝송이든, 클래식이든 저마다 가사가 다르고 멜로디와 화음도 다르다. 여자의 신음이 과연 그러했다. 갖가지 종류의 신음들 중에는 간드러진 뽕짝도 있고, 웅장한 교향곡도 있었다. 베토벤의 유명한 교향곡 ‘운명’처럼 처음부터 ‘꽈꽈꽈꽝!’하고 화끈하게 소리를 내지르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애수의 소야곡’처럼 시종일관 슬픈 듯 흐느껴 우는 여자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여자의 신음은 아름다운 하나의 악기였다.하지만 여자들이 왜 그렇게 각자 다른 소리를 내는지에 대해선 강쇠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여자든 교접시에 절대로 웃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흐흐흐흑…’은 있어도 ‘으하하하…’는 없다는 게 그나마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사사코는 방아를 찧을 때마다 자지러질 듯 교성을 질렀다. 그럴 적마다 강쇠는 몹시 흥분됐으나 결코 현혹되지 않았다. 오히려 강쇠는 더욱더 모질게 밀어붙였다. 그러자 다급해진 사사코가 강쇠의 엉덩이를 찰싹 찰싹 때리며 ‘센세이! 센세이!’ 하고 부르짖었다. 그건 바로 절정에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 다음 순간, 강쇠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한데 이게 웬 일인가. 가루지기 성 일대가 화염에 휩싸인 듯 열기가 뻗치더니, 용암이 분출하듯 뜨거운 물이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게 아닌가. 용암은 거북이의 뿌리를 타고 순식간에 사타구니 전체를 적셨다.
“앗! 이게 뭐지?”
돌연한 사태 발생에 강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재빨리 거북이를 철수시키려던 강쇠는 또 한 번 까무러칠 듯 놀랐다. 거북이가 분화구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강쇠는 당황했다.
“크 큰 일 났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에서 오만 가지 비책이 떠올랐다. 그러나 묘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작금의 사태는 강쇠가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비상사태였던 것이다. 분화구에 빠진 거북이는 바야흐로 익사 직전이었다. 이대로 허우적거리다 장렬한 최후를 맞을 것인가.
“안돼. 그럴 수는 없어. 나, 오강쇠. 이날 이때까지 상대방이 먼저 백기를 들기 전에 항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오 이 무슨 기이한 조화란 말인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쇠는 필사적으로 버텼다. 하지만 사사코 역시 만만찮았다. 옴찔거리는 가루지기는 거북이를 쉴 새 없이 압박하며 못살게 굴었다. 과연 명기 중의 명기요 요기(妖器)중의 요기였다. 조상님들이 가루지기에 대해 왜 그토록 칭송을 마다하지 않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막! 그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사사코는 절정에 오른 듯 두 다리를 번쩍 들어 으스러져라 강쇠의 허리를 휘감았다. 허억! 강쇠의 비명이 새나온 순간, 거북이가 폭발하듯 거대하게 팽창했다. 동시에 사사코의 입에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아아 아아악!”
비명이 터지자, 강쇠는 얼른 귀를 막았다. 히로미에게 당했던 기억이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은 것이다. 오르가슴에 도달한 사사코는 연방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두 다리를 축 늘어뜨렸다. 잠시 후 사사코가 감았던 눈을 뜨고 속삭이듯 말했다.
“아 정말 황홀했어요. 제 온몸이 아득한 구름 위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같이 황홀한 느낌이었어요. 고마워요 선생님. 이제 소원을 풀었으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으면 좋죠?”
사사코는 진심으로 감읍한 나머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사사코는 흐르는 눈물을 연신 손등으로 훔치며 강쇠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어떤 사내도 해내지 못한 처녀 딱지를 떼 주지 않았는가. 사사코는 강쇠가 너무나 존경스러운 나머지 전설 속의 도경스님처럼 우러러 보였다. 침대에서 일어난 사사코는 서둘러 샤워를 한 후, 수화기를 들어 식사를 주문했다.
“이 호텔에서 가장 맛있고 비싼 요리를 갖다 주세요. 곰발바닥 요리든, 거위 든 간에 최고급으로. 아셨죠?”
얼마 후, 머리에 흰 캡을 두른 주방장이 직접 요리를 갖고 들어와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깍듯한 대접에 강쇠는 귀빈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잠시 후 주방장이 물러가자, 사사코가 생글생글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강쇠씨. 많이 드세요. 그리고 한 번 더 안아주세요.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죠?”
“그야 어렵지 않지. 그런데 사사코, 아프지는 않았어?”
“네. 하지만 아프면서도 좋았어요. 정말로 죽는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선생님. 한국 남자들은 다들 선생님처럼 센가요?”
“글쎄…. 껄떡거리는 건 일본 남자와 하등 다를 바 없겠지만, 기질들이 화끈하니까, 그것도 화끈하게 하지 않을까.”
“호호호 그럼 제 신랑감도 한국 남자 중에서 골라야겠네요. 선생님 같이 멋지고 터프한 섹스가이랑 평생을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후후 말만 들어도 고맙군. 그렇지만 사사코, 난 할 일이 많은 사람이야. 내 야망을 이루기 전에는 절대로 결혼할 생각이 없어. 그런데 사사코 언니가 살고 있는 무인도는 어디지?”
“머나먼 남쪽, 시코쿠 부근에 있어요.”
“시코쿠? 거기가 어디쯤 되나.”
“음…. 시코쿠는 일본 열도를 구성하는 네 개의 가장 주요한 섬 가운데 가장 작은 섬이에요. 도쿄에서 남쪽으로 차로만 열 시간이 넘게 걸려요. 거기서 다시 언니가 사는 무인도에 가려면 배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해요. 그런데 정말 가 보시게요?”
“응. 어쩐지 사사코 언니야말로 내가 일본 땅에서 대결을 벌일 마지막 여자라는 생각이 들어. 마치 전생에서부터 이어져온 숙명의 라이벌이라고나 할까, 자꾸만 그런 예감이 들거든.”
“그래요 선생님. 선생님께서 제 언니와 맞붙어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스님 말씀처럼 언니에게도 살 길이 생길 텐데. 아…. 하지만 두려워요. 막강한 체력의 남자들도 비명에 갔는데…. 정말 괜찮을까요? 선생님.”
“흠, 장담은 못하겠어. 하지만 피치 못할 한판 승부라면,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게 남자답지 않을까.”
강쇠는 그 말을 하며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크고 작은 불빛들이 앞 다퉈 명멸하던 도쿄의 밤은 어느덧 고요한 적막에 잠겨 있었다. 강쇠는 게슴프레 눈을 뜨고 머나먼 남쪽 하늘 어딘가 있을 사사코 언니를 떠올렸다. 아직 얼굴조차 본 적 없는 그녀. 남자들이 기를 쓰고 쫓아다녔다니 필시 빼어난 미인일 거였다.아무도 살지 않는 외딴 섬에서 밤이면 밤마다 파도소리에 떨고 있을 그녀. 이런 그녀에게 어느 날 갑자기 육지에서 한 사내가 혈혈단신 찾아든다. 사내를 본 그녀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도 크게 놀랄 것이다. 나아가, 찾아온 목적을 들으면 더 크게 놀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남녀간의 운명이란 참으로 기이한 것이 아닌가. 일본 최고의 웅녀와 한국 최고 변강쇠의 운명적 대결이라니! 강쇠는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튿날 오전, 강쇠와 사사코가 택견도장으로 돌아오자, 소식을 들은 교오코와 히로미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런데 교오코가 사사코의 얼굴을 보더니 대뜸 말했다.
“어머머 사사코. 밤사이 얼굴이 몰라보게 달라졌네. 얼굴이 뽀얘졌어. 좋은 일이 있었나 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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