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의료계는 코로나19를 잠재우기 위한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의 마찰로 이중고를 겪었다. 바로 정부의 ‘문재인 케어 강행 추진’이 대한의사협회(의협)와 입장 차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 의협은 정부·여당과 협상을 타결하며 급한 불은 끈 것처럼 보이지만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원점에서 다시 논의한다’는 내용이 합의문에 담겨 갈등의 여지는 남았다. 의료계의 강한 반대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의료 체계 강화를 명분으로 추진하려는 4대 의료정책을 밀어붙이는 배경이 주목받고 있다. 일요서울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공공의료 정책의 내막이 무엇인지 추적했다.
![김용익 [뉴시스]](/news/photo/202010/424918_341933_231.jpg)
-서울대 의료 관리학 교실에서 ‘김용익 사단’ 길러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8월14일 ‘4대악(惡) 의료정책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총파업 궐기대회’를 열었다. 의협에 따르면 ‘밥그릇 지키기’ 때문이 아닌 정부의 ‘비현실적 정책 강행 처사’ 때문이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도 정부의 의료정책에 반대해 지난 8월21일부터 연차별로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박능후 복지부장관은 지난 8월19일 의협에서 지정한 ‘4대악 의료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 간담회를 가졌으나 소득 없이 끝났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지난 8월 23, 24일 연달아 대전협, 의협과 면담을 가졌으나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고 의료계와의 갈등만 커졌다.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9월 서울성모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는 건강보험 하나로 큰 걱정 없이 치료 받을 수 있도록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며 “미용, 성형과 같이 명백하게 보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것 외에는 모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비급여의 급여화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미용·성형·건강검진을 제외한 치료에 관계된 비급여 항목들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다.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에 의료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의협은 2017년 12월 ‘문재인 케어 반대 및 한의사의료기기 사용 반대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시작으로 2018~2020년에도 투쟁을 계속 이어왔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2017년 12월 열린 전국의사 총궐기 대회에서 “적정한 의료수가 보장없이 급여 항목을 늘리는 건 의료계의 생존을 위협한다”며 “비급여를 전부 급여화한다면 대부분의 중소병원과 동네 의원의 수익 구조가 악화돼 단기간 내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케어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발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의협은 정부의 의료정책을 규탄하며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한방첩약 급여화 ▲비대면 진료를 4대악 의료정책으로 규정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월23일 2022학년도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늘려 10년간 4000명의 의사를 추가로 양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3000명은 지역의사 특별전형을 통해 선발해 10년간 특정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는 지역의사로 키운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정부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 의사들이 부족한 만큼 지역에서 10년 정도 의무적으로 근무하도록 하는 의사들을 1년에 300명씩 배출하여 이렇게 10년 동안 3000명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역 의사는 지역 의료기관 분야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하며 이를 어기면 장학금 환수와 면허 취소를 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지난 4월 이슈브리핑을 통해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에 관해 의사의 숫자 부족 근거로 정부가 내세우는 ‘OECD 국가 간 의사 수 비교’는 산술에 불과하다”며 “의사 근무시간·의사 밀도·인구감소·활동 의사 증가율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 의사 숫자 부족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근거로 “2017년 기준 우리나라의 최근 5년간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의 연평균 증가율은 3.0%에 달한다”며 “이는 OECD 회원국 평균 2.5%보다 높은 수준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첨예한 갈등 속에 지난 4일 정부와 의협은 ‘코로나19가 안정될 때까지 의사 수 증원과 공공의대 설립을 중단하고 이후 의정협의체를 꾸려 4대 의료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한 점에서 앞으로의 협의과정 가운데 갈등의 불씨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셈이다. 의료계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공공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추진하는 4대 정책들의 기조는 크게 변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중심으로 한 ‘의료 사회주의’세력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이다.
![이진석 [뉴시스]](/news/photo/202010/424918_341934_323.jpg)
김용익 이사장-이진석 국정상황실장은 사제지간
공공의료 분야에 있어 전문가로 불리는 김용익 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을 지냈고, 2012년 총선에선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상임운영 위원, 민주당 민주연구원장 등을 지내며 여권의 핵심인사로 분류됐다.
이런 김 이사장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실에서 교수를 지내며 ‘김용익 라인’(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출신)을 키워냈다. 특히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대표적인 김용익 사단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이 실장은 의료관리학 교실에 진학하면서 김 이사장의 제자가 됐다. 그리고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캠프에서 김 이사장과 함께 문재인 케어 등 보건의료 공약의 틀을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 실장은 보건·의료·복지 업무를 담당하는 사회정책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2019년 정책조정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이 실장은 지난 1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의 핵심인 국정상황실장에 임명됐다. 국정상황실은 국정 전반의 상황 및 동향 파악 업무를 수행한다. 이 실장은 보건·의료·복지 업무를 넘어 국정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접근한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 “특정 이념에 치우쳐 보건·의료 정책 추진 안 돼”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순례 전 의원(전 미래통합당)은 첩약 급여화에 대한 국정감사 중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임원의 녹취록을 공개했다. 김 전 의원은 해당 녹취록을 간략하게 정리하며 “김용익 이사장이 박능후 장관보다 실세다. 김 이사장이 제자인 청와대 이진석 사회수석비서관을 꽂았다. 김 이사장과 이 비서관이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고 있고 한의협이 문재인 케어를 찬성하는 대신 첩약 급여화 약속을 받았다. 김용익과 이진석은 의료사회주의자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언급된 녹취록처럼 정치권 안팎에선 김 이사장과 이 실장을 비롯한 그의 사단이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을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는 정확히 들어나지 않았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보건·의료 정책의 방향을 통해 짐작할 뿐이다. 익명을 요청한 의료계 관계자는 지난 9월22일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정부가 특정 진영과 이념에 치우쳐 보건·의료 정책을 추진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용익 사단의 행보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정재호 기자 sunseou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