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과학수사파일 제 10 회
대한민국 과학수사파일 제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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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6-11-03 10:46
  • 승인 2006.11.03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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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색 T셔츠가 결정적 물증…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다 (中)

검찰은 이 사건을 원점에서부터 재수사하는 과정에 D군이 1차 조사를 받을 당시, 조사받은 다음 날 곧바로 자신의 승용차 시트커버를 교환했고, 시트커버 교환 사실과 Q양 오빠와 같은 아파트단지에 사는 친척집을 방문한 사실을 은폐했음을 알아내고, 거짓말탐지기 등을 동원해 신문한 끝에 D군으로부터 자백을 받았다고 했다.
그 후 H검사는 사건 발생 3개월이 훨씬 지났지만 계속해서 여러 가지 증거확보에 전력투구했다. H검사가 의뢰한 또 다른 증거물은 피해자가 사건 당시에 입고 있던 검정색 티셔츠였다.
감정 결과 티셔츠의 11개 부위에서 직경 1밀리미터, 5밀리미터, 7밀리미터 내외의 혈흔이 검출되었으며, 혈액형은 O형으로 판정되었다. 혈흔은 티셔츠 앞쪽 양 어깨 부위의 4곳에 산재해있었다. 그 당시 검찰에서는 피해자가 범인으로부터 얼굴을 얻어맞고 코와 입 안에 피가 고인 상태에서 폭언을 했으며, 이때 피해자 옷에 흩뿌려진 혈흔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속된 D군은 변호인과의 면담에서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
“저는 절대 범인이 아닙니다. 검찰에서 발표한 대로 진술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 진술은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습니다.”
한편 전화를 걸어주겠다는 D군의 친척은 그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그 후로도 검찰은 자동차 안전벨트 2점, 겨울용 차량 시트커버 7매, 백과사전 1권을 의뢰해 왔다. 안전벨트 2점은 용의자 D군의 자동차 운전석과 조수석의 것이고, 겨울용 시트커버는 혈흔이 검출된 여름용 시트커버와 서로 교환한 것이며, 백과사전은 사건 당일 밤 9시경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D군이 친척 집에서 빌려왔던 물건이라고 H검사는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안전벨트는 D군으로부터 차 안에서 Q양의 목을 조를 때 사용했다는 진술을 받았기 때문에 의뢰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증거물에서도 혈흔은 검출되지 않았다. D군 가족들은 백과사전은 사건 당일이 아닌 그 다음 날 아침에 빌려온 것이며, 자동차 시트커버는 오랫동안 쓴 것이라 너무 낡아서 전부터 교환하려 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또 의뢰된 증거물은 자동차용 미색 베개커버 2매, 자동차용 백색 베개커버 1매, 그리고 백색 끈 1점(119센티미터) 등이었다. 감정 결과 미색 베개커버 1매의 한쪽 면에서만 직경 2밀리미터 정도 크기의 O형 혈흔이 2부위, 또 1매에서는 양면에서 각각 4부위, 2부위, 직경 1~2밀리미터 정도의 O형 혈흔이 검출되었다. 그러나 백색 베개커버와 백색 끈에서는 혈흔이 검출되지 않았다. 베개커버는 용의자 D군의 집에서 별도 수거된 것이라고 H검사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미 감정이 끝난 여름용 시트커버에서 혈흔이 검출되었고, 그 이후 한 달이 지난 뒤 D군의 집에서 수거된 베개커버에서도 혈흔이 검출되었다. 그런데 각각 다른 시기와 다른 장소에서 수거된 차량 시트커버와 베개커버가 과연 동일한 세트의 커버인가, 그리고 발견된 혈흔은 같은 것인가가 문제였다. 검사 결과 이들 시트커버는 같은 세트로 보였으며, 발견된 혈흔은 그 형태나 혈액형으로 보아 같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검찰에서는 이 같은 감정결과를 회보 받고 난감해했다.
용의자 측에서는 당시 그 차량은 의자에 베개를 설치하지 않고 사용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차량 운전석에는 베개를 꽂았던 2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조수석에는 구멍이 뚫려 있지 않았다. 검찰에서는 이와 같은 미묘한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석을 내려야 할지 난감해했다. 나에게 자문해 왔지만 나 역시 그 진실을 알 수 없었다. 결국 검찰은 나름대로 베개를 구멍이 뚫린 운전석에만 사용한 것이 틀림없으며, 혈흔이 검출된 2개의 베개커버는 하나의 베개에 이중으로 덧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추정을 내리기도 했다.
드디어 Q양 피살사건과 관련, 살인 및 사체은닉, 절도 등의 혐의로 D피고인에 대한 공판이 시작되었다. 5차 공판 때였다. 첫 번째 증인으로 나간 나에게는 자동차 시트커버 등 증거물에서 검출된 혈흔감정에 관해 재판부에서 질문을 해왔다. 나는 혈흔감정법의 기초이론부터 자세히 설명했고, 소견을 덧붙여 증언했다.
“자동차 시트커버와 Q양이 피살 당시 입었던 티셔츠와 청바지에서 검출된 혈흔의 크기, 색깔, 형태가 모두 유사하며, 혈액형 등도 일치하나 동일인 유래의 혈흔인지는 판정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D피고인의 친구인 A군이 진술했다.
“사건 후 D군의 차를 탄 적이 있는데, 그 때 시트커버가 없었고 베개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 후 D피고인에 대한 7차 공판이 열려 검찰과 변호인 측의 열띤 공방이 있었다. 검찰은 D피고인이 기소된 후 뒤늦게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Q양 살해 때 승용차 안전벨트를 사용했다고 자백한 사실 등을 들어 자백의 임의성과 논리적 타당성을 주장했다. 또한 승용차 시트 및 베개커버에서 발견된 O형 혈흔의 분포도와 상태는 자백과 일치하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변호인 측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으며, 검찰이 내세운 유일한 증거는 자백밖에 없고, 이 자백도 강요된 상태에서 행해진 것이며, 사건 당일 D피고인이 집에 있었다는 가족들의 증언을 들어 D피고인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또한 변호인 측은 D피고인의 할머니가 O형이며 기관지염을 앓고 있어,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기침이나 침을 뱉을 경우 피가 섞여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들어 그 혈흔이 Q양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드디어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은 D피고인에게 살인, 사체유기 및 절도죄를 적용,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 측은 논고에서 그 경위를 설명했다.
“용의자 D피고인에 대하여 인격적인 대우와 합리적이고 양심에 호소하는 수사방법을 동원해 조사한 결과, D피고인의 임의에 의한 범행자백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D피고인의 자백에 따라 범행에 사용된 승용차와 시트커버의 혈흔 등을 감정하고 정황을 종합한 결과, D피고인의 범행을 입증하는 완벽한 증거물로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변호인 측은 변론을 통해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허구성을 지닌 근거 없는 추리에서 출발했으며, D피고인의 순진성이 검찰의 열의에 휘말려든 결과가 이번 사건이므로 D피고인은 무죄입니다.”
○○지원 형사합의부는 Q양 살해혐의로 구속기소된 D피고인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유죄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엄격한 증거주의 입장을 내세웠다.
“D피고인이 검찰에서 한 자백의 임의성은 인정하나 그 신빙성은 없습니다. 피고인이 검찰의 강압에 의하지 않고 범행을 자백한 이상 그 자백은 임의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이 Q양을 불러내 드라이브를 했다는 범행상황, 범행동기, 살해장소, 살해경위, 살해방법, 은닉장소 및 범행 후 귀가경위, Q양의 샌들 및 지갑, 반지를 훔친 경위 등에 대한 D피고인의 진술은 다른 정황과 비교해 볼 때 모두 믿기 어렵습니다. 또 검찰이 내세운 증거로서 차량의 시트커버 등에서 검출된 혈흔과 검찰 측 증인들의 증언도 모두 범행을 인정할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검찰은 이 판결에 불복, 고등법원에 항소를 제기했고, 항소심 2차 공판 때 나는 또 증인으로 소환되어 당시의 혈흔감정에 대해 증언했다.
“D피고인의 자동차 시트와 베개커버, 살해된 Q양의 티셔츠와 청바지 등에서 발견된 혈흔들의 형성 시기는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 경험상 혈흔의 크기, 색깔, 분포 상태 등은 유사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혈흔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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