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의 혈흔 분석
국립문화재연구소로부터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당시 의복의 혈흔을 통해 혈액형 검출 및 DNA를 분석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혈흔은 암흑색의 미세한 고체 가루 형태였으며, 무려 47년 동안이나 의복에 부착된 상태로 보존되었던 것이다.
국과수 연구원들은 암흑색의 고체 가루를 혈액형 진단 항혈청에 넣어 섭씨 37도에서 두 시간, 4도에서 두 시간 항원항체반응을 실시했다. 그 다음 과잉의 항체를 생리식염수로 3회 세척하여 제거하고, A형 및 B형의 대조혈구를 가하여 혈구의 응집 유무를 관찰해 혈액형을 판정하는 방법인 해리시험법을 적용했고, 흡착시험법도 병행해 검사했다.
혈액형은 AB형으로 판정되었으며, 신선한 혈액과 별 차이 없이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혈액형 물질인 당지질과 당단백질은 수십 년간 건조된 상태에서도 파괴되지 않고 그대로 항원성을 잃지 않는 대단히 안정성 있는 화학적 특성이 있다. 따라서 부패되지 않고 건조시킨 혈흔 상태로 보존된다면 수십 년이 지나도 혈액형 검출이 가능하다.
그 다음 이 혈흔으로부터 DNA를 분리하고, 중합효소 연쇄반응법에 의해 DNA를 대량으로 증폭시킨 다음, 전기영동을 실시하여 DNA분자의 무게에 따라 전기의 음극과 양극 사이에서 배열을 완료시켰다.
그 다음 질산은으로 염색하자 여섯 종류의 DNA형들이 명확히 검출되었다. 비록 오래된 혈흔이었지만 DNA형 역시 신선한 혈액과 다름없이 선명한 결과를 나타냈다.
간혹 오래된 유골, 또는 미라 심지어 쥐라기공원과 같은 화석에서의 DNA분리는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유품에 묻은 혈흔에 대한 혈액형 검출 및 DNA형 분석의 성공은 오래 경과된 혈흔으로부터 혈액형 및 DNA형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법의학적 개인식별은 물론, 향후 출토되는 고분, 유골 등 대부분의 유기체 흔적으로부터 생물학적 특성을 규명해 인류학 및 고고학적 연구의 기초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셈이다.
수사드라마의 한계
1980년대 <수사반장>과 1990년대 <경찰청사람들>은 인기 있는 수사드라마였다. 나 역시 흥미도 있었고 관심도 많았다.
범죄사건에 호기심이 많은 인간 심리와 흥미 위주의 구성이 시청자들의 기호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성공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종영은 개인적으로 유감스럽기만 하다. 어떠한 형태로든 수사드라마의 복귀를 희망한다.
IMF이후 범죄의 증가는 물론 그 형태도 달라져 사소한 절도 폭행사건은 물론 실직과 경제의 어려움 속에 존속살인, 특히 보험살인, 사기사건 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방송매체를 통한 범죄 프로를 없앤다고 해서 범죄가 감소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오히려 그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수사드라마를 방영하여 시청자들에게 알리고, 비판의 계기를 만들어 그 시대의 사회 병리현상을 파악하고 현명한 대처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내가 특히 주문하고 싶은 것은 수사 드라마의 과감한 변신에 있다. 성인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초중고생들의 시청률이 높은 수사드라마는 문제가 있다.
흥미를 유발하는 범죄형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경찰관들이 마치 격투를 잘하기 때문에 범인을 쉽게 잡는 것처럼 잘못 비추어지기도 한다.
<경찰청사람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였다. 실화를 드라마화하는 작업은 창작 드라마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재연 장면과 실제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들이 등장해 경직되고 어눌한 말투로 대사를 읽어나가는 것은 오히려 그 드라마의 특색이 되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나 역시 그 드라마가 흥미로웠지만 허술한 짜임새는 문제가 많았다.
사건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사건해결 과정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측면에서 풀어나가는 과학수사 기법은 드라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건 해결과정 이면에는 과학적 증거 확보에 대한 치열함과 범죄심리 내지는 추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학적 수사와 범죄분석을 적절히 드라마에 배합시킨다면 수사드라마는 격조 높고 튼튼한 짜임새로 더욱더 흥미로울 것이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이 수사 드라마와 같이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드라마를 쓰려는 작가는 더더욱 그 분야의 전문성을 마스터해야 한다. 즉, 수사관들의 머리싸움을 생동감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역량과 식견을 넓히는데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인간생명의 존엄성, 방송작가와 관계자들의 다양한 식견과 전문성으로 흥미는 물론, 자연스럽게 범죄예방을 익히는 교훈적이면서도 참신한 수사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사람 피인가, 동물 피인가
혈흔이 증거물로 의뢰되면 으레 일상적으로 실시하는 실험을 한다. 먼저 혈흔 예비시험을 실시하며, 그 다음에는 혈흔에 대한 본 시험을 실시하여 혈흔이 틀림없는가를 증명한다. 이때 증명되는 혈흔은 반드시 사람 피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 다음은 반드시 사람의 혈흔인가를 확인하는 인혈 증명시험을 또 실시한다. 항상 실시하는 실험법이지만 그렇게 간단하지 않은 것이 인혈 증명시험법이다.
사람의 혈흔이나 동물의 혈흔은 모두 적혈구의 색소인 붉은색을 띠는 혈색소(헤모글로빈)가 있기 때문에 그냥 눈으로 보아서는 도저히 사람 또는 동물 혈흔 여부가 식별되지 않는다. 이들 혈흔은 이미 응고 및 건조되어 적혈구 및 백혈구 세포 등이 모두 파괴되어 그 세포의 형태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선한 혈액의 경우에는 사람 또는 각종 동물 혈액의 세포 모양 및 그 크기 등이 조금씩 달라 현미경 관찰에 의해 식별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인혈 여부를 증명할 때, 이미 건조된 혈흔으로는 그 혈액세포의 모양을 볼 수 없어 식별이 불가능하다. 이때 실시하는 인혈 증명법은 혈흔에 증류수를 가해 추출하나 혈흔 추출액에 함유된 각 동물의 고유한 특성을 나타내는 종속특이항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사건의 종류와 상황에 따라서는 증거물에서 인혈이 아닌 식용동물, 생선 등 심지어는 여름철 작은 풀벌레 등의 혈흔으로 밝혀지는 때가 종종 있다.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식칼은 돼지, 닭, 쇠고기 등을 요리할 때 흔히 칼자루 또는 칼날과 자루 사이에 피가 침투되어 사건 발생시 범행에 의한 혈흔의 인혈 판정에 있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시장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상점은 바로 정육점이다. 정육점은 물론 주변에서까지도 사람 피 아닌 동물의 피가 분산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소와 돼지를 매일 도살하는 도축장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온통 가축의 피로, 일하는 사람들의 의복에까지 물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나는 혈흔 증거물 중 고기잡이배, 또는 장기간 배에서 일하는 선원들 간에 벌어진 폭력 또는 살인사건 발생시 사람 피 또는 생선 피를 식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해 왔다.
이와 같이 인혈 증명시험은 범죄용의자의 개인식별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하며 인혈과 타 동물 혈액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사건 해결에 엄청난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법과학자는 냉철함과 치밀함을 생명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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