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화전 세계 최대 살인사건 백백교
우리는 살인의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 들어서 살인은 폭발적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살인의 이유도 뚜렷하지 않고 우리는 마치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는 듯하다.
창세시대 카인의 살인사건 이후 살인은 시대를 초월하여 계속되고 있다. 살인사건의 내용도 다양해 독살, 암살, 교살, 총기류나 흉기에 의한 살인, 대량살인, 연쇄살인, 성범죄에 의한 살인,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의한 살인, 사회병리에 의한 살인, 동기 없는 살인까지 놀랄 정도로 수많은 사건들이 전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대량살인과 연쇄살인사건, 인육살인사건 등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거나 센세이션을 일으킨 사건을 살펴보고 있는 것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과 잔혹성에 대한 근원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작가의 말 중에서>
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안식처가 되지만 때때로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기도 한다. 특히 그럴 듯하게 포장된 사이비 종교는 인류가 창조된 이래 끝없이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우리가 최근에 볼 수 있는 사이비 종교의 폐해는 뿌리가 인류의 역사만치나 깊다. 살아 있는 부처라면서 자신의 발을 씻은 물을 법수라고 신도들에게 팔고, 남편은 밖에서 기도를 하게 하고 부인을 동굴 안에서 간음하는 고려시대 사이비 승려의 예에서 보듯 사이비 종교는 인간을 오히려 황폐하게 만든다.
‘…문봉조 김서진, 이경득, 김군옥, 이한종, 박달준은 백백교 간부로서 문봉조는 129명, 이경득은 166명, 김서진은 169명, 김군옥은 121명, 이한종은 35명, 박달준은 51명을 직접 살해하거나 살해하는 데 가담했습니다. 이 사건은 천황폐하의 성려에 힘입어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2,000만 조선 민중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원시 미개인으로 비쳐질 우려가 있을 정도로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입니다. 피고인들은 교주 전용해의 측근으로 그가 음탕하고 포학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신성한 종교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1940년 5월5일 경성지방법원의 일본인 마쓰모토 검사가 추상같은 목소리로 논고를 해나가자 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학살극, 총인원 300명에서 380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백백교 간부들에 대한 논고가 이어지면서 한 사람의 살인 숫자가 100명을 넘어서자 방청석에서는 일제히 경악과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굴된 시체만 전국에서 200구, 관련 피고인이 150여명에 이르는 단군 이래 최대 최악의 살인사건이었다.
피고석에는 살인집단 백백교의 간부 벽력사들이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 앉아 있었다. 10여명의 살인자 중에서 유일한 젊은 여성, 단발머리에 흰 저고리 검정치마를 입고 있는 여성은 검사의 준엄한 논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에 홀린 듯이 귀기스러운 목소리로 주문을 외고 있었다.
“백백백…적적적…흑흑흑….”
피부는 하얗고 눈매는 서늘했다.
“피고 정삼례는….”
마쓰모토 검사가 이름을 호명하자 주문을 외던 정삼례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고 눈을 치떴다. 마쓰모토 검사의 눈이 정삼례에게로 향했다. 그 순간 마쓰모토 검사는 얼음 같은 차가운 공포가 뒷덜미를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정삼례의 눈은 흰자위가 동공을 하얗게 덮어버리고 있었다. 마쓰모토 검사는 그 기묘한 눈에 가슴이 뛰고 소름이 돋았다. 마쓰모토 검사는 황급히 정삼례의 눈을 외면하고 구형 논고를 계속했다.
“…예심에서 살인을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으나 공소 사실에 2건 4명을 살해하고 3건 5명의 살인사건에 가담한 정황과 증거가 명백하여 사형을 구형합니다.”
마쓰모토 검사의 구형에 정삼례가 화들짝 놀라서 눈을 치떴다.
마쓰모토 검사는 벽력사들을 비롯하여 11명의 백백교 간부들에게 줄줄이 사형을 구형했다. 아니야, 난 아니야! 속칭 부엉이 부대라고 불리는 교주 전용해의 살쾡이 같은 밀정 정삼례는 사형이 구형되자 눈을 치뜨고 발악을 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1936년 늦가을, 함경남도 안변군 위익면 청학리의 깊은 산골은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청학리의 한 동굴에서는 밤마다 기도회가 열리고 백백교 교주 전용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는 벽력사(霹靂使)와 화천사(化天使)들, 소위 부엉이 부대로 불리는 밀정들까지 몰려들어 어수선했다.
청학리의 화전민 마을은 아침부터 뒤숭숭했다.
교주 전용해의 심복들인 대법사(大法師),도유사(道儒師),공명사(公明師)와 심봉사자(心奉使者),북두사자(北斗使者)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벽력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화천사들도 기도회 준비로 분주했다.
대법사는 백백교의 2인자 겸 부교주지만 교주 전용해의 비서나 다름없었다. 대법사 밑에 도유사가 1명 있고 공명사라는 장로 집단이 약간 명 있었다. 벽력사는 전용해의 실제적인 심복들로 살인마 집단이었다. 화천사는 여자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교주의 첩과 시녀 중에서 총애를 받는 여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정삼례는 화천사에 속해 있으면서도 소년소녀들로 이루어진 밀정들인 부엉이부대의 책임자였다. 부엉이부대는 백백교 교도들이 배신을 하거나 불평을 하는 것을 찾아내 전용해에게 밀고를 하거나 직접 처단을 하는 집단이었다. 14세에서 21세까지의 소년소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비가 오는 한낮, 벽력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빗속에서 돌아다니는 원인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일반 교도 중에는 거의 없었다. 백백교 교도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도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는 등 일을 했고 밤이 되자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하나둘씩 뒷산의 동굴로 모여들었다.
동굴에는 제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앞에는 붉은 색의 휘장이 늘어져 있었다. 제단 앞에는 여러 개의 향로가 있어서 푸르스름한 향연이 자욱하게 피어올라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바닥에 멍석이 깔려 있어 교도들이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백백백… 적적적… 흑흑흑!”
교도들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주문을 외웠다.
“들으라. 나를 따르는 자는 죽지도 않을 것이며 병이 들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천신의 아들이니 결백한 심령이다. 나를 믿으면 몸과 마음이 결백해져 일체의 중생들이 선남선녀가 되어 구원을 받으리라.”
휘장 안에서 교주 전용해의 신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교도들은 더욱 머리를 조아려 제단을 향해 절을 했다. 그때 벽력을 치듯 징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제단을 가린 붉은 휘장이 걷혔다. 제단 위에 흰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전용해가 앉아 있었다.
“대원님께서 현신하셨다. 4배를 올려라!”
대법사 이순문이 호통을 치자 교도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들으라!”
전용해가 두 팔을 벌리고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넓은 동굴을 쩌렁쩌렁 울렸다. 소매가 치맛자락처럼 넓어서 흡사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편 것 같았다.
“나 대원님을 믿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나를 믿지 않고 의심하는 자는 하늘이 벌을 내린다. 보라! 너희 앞에 앉아 있는 여덟 교도들은 나를 의심하여 천벌을 받았다. 모두 머리를 들고 보라!”
전용해의 명령에 교도들이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가장 앞줄에 앉아 있던 교도들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벽력사들이 미리 목을 졸라 죽인 뒤에 앉혀 놓았기 때문에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북두사자들이 옆에 가서 툭툭 건드리자 시체들은 앉은 채로 그대로 쓰러졌다. 이것은 교주 전용해가 신통력을 과시하기 위해 종종 신도들을 위협하는 방법이었다. 교도들은 교주의 신통력에 의해 배신자들이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몸을 떨었다. 동굴에서의 처형이 끝나자 전용해는 숙소로 돌아와 여자들과 음란한 행위에 들어갔다. 그는 여신도들을 닥치는대로 농락하여
부인이 여럿이고 첩이 10여명이나 되었다.
“너는 천신을 맞이하는 것이다. 결백하신 대원님께서 너를 깨끗하게 해줄 것이다.”
전용해는 여신도들을 농락할 때 신이 강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용해가 여인들을 농락할 때 다른 첩들은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한 번은 전용해의 첩 중에 최인자가 갑자기 발광을 했다. 안방에서는 전용해가 어린 소녀를 겁탈하고 있었다.
“호호호!”
그때 최인자가 안방을 쏘아보면서 갑자기 요란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여자들이 깜짝 놀라서 일제히 최인자를 쳐다보았다. 최인자는 숨이 막힐 정도의 적막을 깨트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잇달아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여자들이 최인자의 팔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최인자는 그녀들을 뿌리치고 더욱 요란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거기 북두사자 있느냐?”
안방에서 전용해의 냉막하고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
마당에 있던 김서진이 황급히 대청으로 뛰어올라왔다.
“북두사자는 저 계집년을 조용하게 해라!”
“예!”
김서진이 최인자의 가슴팍을 무지막지한 발길로 내질렀다. 최인자가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렀다. 김서진은 최인자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마당으로 내려갔다. 최인자는 소리를 지르면서 끌려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댔다.
<다음호에 계속>
이수광 프로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고 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도의문화저작상 소설부문 수상.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고 역사 소설 ‘나는 조선의 국모다’를 발표했다. 한국추리문학 사무국장, 계간 미스터리 주간을 역임하고 여러 신문에 연재소설을 발표한 바 있다. 작가의 경제경영서로는 <부자열전>. <선인들에게 배우는 상술>. <귀신이 되어서라도 팔아라> 등이 있고 역사서로는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조선여인 잔혹사> 등이 있어 다방면의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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