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성 풍속사 <제10화>
조선 성 풍속사 <제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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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04-13 14:36
  • 승인 2007.04.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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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자유부인 어을우동(於乙宇同)

조선시대 최대의 섹스 스캔들을 꼽으라면 성종조의 어을우동사건과 세종조의 유감동(兪甘同)사건일 것이다. 왜 이들은 조선 최대의 섹스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조선왕조실록과 조선조의 야담집을 살펴보자면 간통사건에 대한 기록과 얘기는 무수히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처럼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수많은 남성과 관계를 가진 음부는 없었기에 이들의 음행(淫行)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어을우동 보단 어우동(於宇同)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어우동은 어을우동이란 이름으로 조선의 여성으로서는 가장 많이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다.

어우동은 성종 때 승문원 지사였던 박윤창(朴允昌)의 딸로 태어나 종실 태강수(泰江守) 이동(李仝)에게 출가해 정4품 혜인(惠人)의 품작까지 받은 귀부인으로 자색은 뛰어났으나 성품은 방탕하였다. 한날은 남편이 은장이를 불러 은그릇을 만들게 했는데, 어우동은 은장이의 젊고 탄력 있는 늠름한 풍채에 반해 계집종으로 변장하여 그를 유혹해 통간하게 되었다.

남편과의 음희(淫戱)에선 맛보지 못한 진맛을 맛보게 된 어우동은 남편이 집을 비울 때면 어김없이 은장이를 불러들여 그와 사통(私通)했는데, 호합이 더해 갈수록 어우동의 색기는 농익어갔다.

후에 남편이 이 사실을 알고 쫓아내 버렸다. 어우동은 그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 몇날며칠을 홀로 앉아 슬퍼하며 탄식하였는데, 한 계집종이 위로하기를, “사람이 얼마나 살기에 상심하고 탄식하기를 그처럼 하십니까? 오종년(吳從年)이란 이는 일찍이 사헌부의 도리가 되었고, 용모도 아름답기가 태강수보다 월등히 나으며, 족계(族系)도 천(賤)하지 않으니, 배필을 삼을 만합니다. 아씨께서 만약 생각이 있으시면, 제가 마땅히 아씨를 위해서 불러 오겠습니다.”하였다. 어우동은 계집종의 위로에 웃음만 보였을 뿐, 확실한 언질은 주지 않았다.

어우동의 음행이 도가 넘기 시작한 때는 남편 태강수 이동이 기생 연경비(燕輕飛)를 매우 사랑하여 아내의 허물을 들추어 제멋대로 버려서 이별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이후였다.

어우동은 모든 것이 남편의 계략이었음을 깨닫고 남편에 대한 복수심으로 남성들을 유혹했다. 오종년을 끌어들여 갖가지 음희기술로 호합하니 오종년은 십여 차례 방사하였고 다음날 출근길을 기어서 갔다.

그 날 이후 꽃피고 달 밝은 밤이면, 계집종과 함께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그들을 유혹해 호합을 가졌고, 큰길가에 집을 얻어 살면서 매일 같이 계집종이 문 앞에 나가 지나가는 남자들을 살펴 어우동에게 말하기를, “누구는 젊고 누구는 코가 크니 아씨에게 안성맞춤입니다.”하면 어우동은 “누구는 내가 하고 누구는 너에게 주마.”라고 말하며 그들을 불러와 호합하니 하루도 그냥 보내는 날이 없었다. 어느 날은 기생으로 변장하고 종실 방산수(方山守) 이난(李瀾)의 집 앞을 지나다가, 이난과 마주쳐 이난이 유혹하니 못이기는척 따라 들어가 호합하였다.

둘은 정호(情好)가 매우 두터워서 서로의 집을 오가며 밤낮으로 호합하였고, 이난이 자기의 팔뚝에 어우동의 이름을 새기기를 청하여 먹물로 서로의 이름을 새기었다.

또한 단오날에 화장을 하고 나가 놀다가 도성 서쪽에서 그네 뛰는 놀이를 구경하는데, 종실 수산수(守山守) 이기(李驥)가 보고 좋아하여 그 계집종에게 묻기를, “뉘 집의 여자냐?”하니, 계집종이 대답하기를, “내금위(內禁衛)의 첩입니다.”하여, 이기는 어우동을 유혹해 자신의 일터(관청)로 끌어들여 호합하니 남녀의 음탕한 신음이 관청을 메아리쳤다.

전의감 생도 박강창(朴强昌)이 종을 파는 일로 인해 어우동의 집에 들러 값을 직접 의논하기를 청하니, 어우동이 박강창을 나와서 보곤 그의 외모에 반해 꼬리를 쳐서 간통하였는데, 어우동이 가장 사랑하여 또 팔뚝에다 이름을 새기었다.

또 이근지(李謹之)란 자는 어우동이 음행(淫行)을 좋아한다는 소문을 듣고 간통하려고 직접 찾아가서 거짓으로 방산수 이난의 심부름 온 사람이라고 사칭하니, 어우동이 나와서 그를 보곤 눈웃음을 짓더니 이내 붙잡고서 간통을 하였다. 호합을 끝내고 어우동이 묻기를 “이제 만족하셨소?”하니, 이근지가 놀라며 “내 거짓됨을 알고도 어떻게 그냥 호합해 주셨소?”라고 물으니, 어우동이 말하기를 “서로가 원했기 때문이 아니겠소.”하였다.

생원 이승언(李承彦)이 집 앞에 서 있다가 어우동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계집종에게 묻기를, “지방에서 뽑아 올린 새 기생이 아니냐?”하니, 계집종이 말하기를, “그렇습니다.”하자, 이승언이 뒤를 따라가며 희롱도 하고 말도 붙이며 그 집에 이르러서, 침방에 들어가 비파를 보고 가져다가 한 곡 연주했다. 어우동이 누구냐고 묻기에, “이 생원(李生員)이라.”하니, 어우동이 말하기를, “장안의 이 생원(李生員)이 얼마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이름을 알겠는가?”하므로, 이승언이 대답하기를, “장안에 춘양군(春陽君)의 사위 이생원을 누가 모르는가?”하였는데, 어우동이 빙그레 웃으며 이승언을 끌어안고 함께 잤다.

홍찬(洪璨)이 과거에 급제하여 유가(遊街)하다가 방산수의 집을 지날 적에 어우동이 살며시 엿보고 간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 뒤에 길에서 만나자 요염한 자태로 서서 소매 자락으로 그의 얼굴을 살짝 건드리니 이내 뒤를 따르고 마침내 그녀 집에 이르러 간통했다.

밀성군(密城君:세종의 후궁 신빈 김씨 아들)의 종인 지거비(知巨非)가 이웃에서 살았는데, 틈을 타서 간통하려고 하여, 어느 날 새벽에 어우동이 일찌감치 나가는 것을 보고, 위협하여 말하기를, “부인(婦人)께선 어찌하여 밤을 틈타 나가시오? 내가 장차 크게 떠들어서 이웃 마을에 모두 알게 하면, 큰 옥사(獄事)가 일어날 것이오.”하니, 어을우동이 두려워서 마침내 안으로 불러 들여 간통을 하였다.

이러한 어우동의 음행이 알려져 결국 성종에게 보고되었고 성종은 죄상을 낱낱이 밝히라 명하였고 결국 어우동과 관계를 맺은 조정 관리와 유생들, 노비와 근친인 육촌과 팔촌의 시아주버니들을 잡아들여 문초하고 파면시키거나 벌을 내리고 귀양을 보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아 죄를 면한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대신들은 어우동의 죄를 논할 때, 법에 의하면 사형은 시킬 수 없고 귀양을 보내야 한다고 하였으나, 성종은 풍속정화 차원에서라도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고 결론 내려 어우동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자못 어을우동의 어미 정씨(鄭氏)도 음행이 있을 것을 의심하였는데, 그 어미가 말하기를, “사람이 누군들 정욕(情慾)이 없겠는가? 내 딸이 남자에게 혹(惑)하는 것이 다만 너무 심할 뿐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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