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보는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1958년 5월, 보스턴의 한 주택가 아파트에 양복을 말끔하게 입은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오른 손에 세일즈맨들이 들고 다니는 서류가방을 하나 들고 있었고 머리에는 단정하게 모자를 쓰고 있었다. 면도자국이 파르스름하게 드러날 정도로 턱수염을 깨끗하게 깎아 깔끔한 인상을 풍겼다. 누가 봐도 호감이 가는 인상이었다.
사내는 아파트의 광장에 서서 베란다를 올려다보았다. 베란다에는 빨래가 널린 집도 몇 집 있었으나 대부분이 색색의 장미 화분을 놓아 짙은 꽃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파트 출입구의 현관 옆에도 장미 넝쿨이 우거져 있었다. 1958년의 5월, 미국 동부의 공업도시 보스턴은 온통 장미꽃 향기로 가득했다.
37세의 평범한 가정주부인 마셔 클라크는 남편과 아이들이 직장과 학교로 가자 설거지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려던 참이었다. 그때 현관에서 차임벨이 딩동댕하고 울렸다. 마셔 클라크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고 빗을 꽂은 뒤에 현관문을 열었다. 날씨는 화창했다. 아침 9시를 조금 지난 시각, 보스턴의 북쪽에 위치해 있는 이 아파트는 주택가로서 손색이 없었다. 아파트는 넓고 베란다에는 색색의 장미들이 활짝 피어 진한 꽃향기를 리빙룸으로 날려 보내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현관 앞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단정한 양복 차림의 사내가 서 있었다. 마셔 클라크는 사내가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일을 하는 그녀의 아파트에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일은 교회 사람들 외에는 없었다.
“어디서 오셨죠?”
마셔 클라크는 의아한 표정으로 사내를 쳐다보았다.
“저는 고급 여성복을 만드는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우리 회사에서는 금년 여름 신상품을 기획하면서 주부들의 표준 체형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협조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사내는 매우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말하고 있었다.
“글쎄요.”
마셔 클라크는 망설였다. 얼핏 보면 세일즈맨 같기도 했으나 수다스럽지 않은 것을 보면 세일즈맨은 아닌 것같았다. 사내가 매우 수줍어하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회사에서는 표준 체형 조사에 응하는 분들에게 모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기도 합니다. 모델이 되면 텔레비전 선전에 나가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부인이라면 충분히 모델이 될 수 있을 것같군요.”
사내의 말에는 사람을 잡아끄는 호소력이 있었다.
“호호호. 그건 젊은 여자들이 해야죠. 저와 같은 가정주부가 어떻게 모델을 하겠어요?”
마셔 클라크는 이미 40대로 들어서고 있었으나 모델이라는 말이 기분좋게 귓전을 간질렀다.
“제가 말씀을 드리지 못했군요. 우리 회사는 젊은 여성들의 옷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부인들의 옷을 만드는 회사입니다. 당연히 부인들이 모델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사내가 흰 이를 드러내놓고 웃었다. 마셔 클라크는 반신반의했다. 그녀도 한때 결혼을 하기 전에 모델이나 영화배우를 꿈꾼 적이 있었다. 여자들이라면, 특히 미혼 때는 누구나 신데렐라가 되고 싶어 하는 꿈을 갖고 있는 것이다.
“잠깐 들어오시겠어요?”
마샤 클라크는 양복 입은 사내를 리빙룸으로 안내했다. 모델이 되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가정주부들의 체형을 조사하는 일에 협조를 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마샤 클라크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사내는 리빙룸으로 들어오자 빠르게 방안을 살폈다. 리빙룸 안에 마샤 클라크 외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 확실했다. 마셔 클라크는 주방으로 가서 커피 주전자를 가스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 사내가 가방에서 줄자를 꺼내들고 마셔 클라크에게 다가왔다.
“커피가 끓는 동안 체형을 재도록 하겠습니다.”
사내가 마샤 클라크의 뒤에서 말했다. 마샤 클라크는 멈칫했으나 사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잠깐 돌아서 주시겠습니까?”
사내가 말했다.
“어쩌나… 나는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았는데….”
마샤 클라크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사내는 묵묵히 그녀의 두 팔을 들어 올리고 복부 쪽에 줄자를 감았다. 자연스럽게 사내의 손이 그녀의 복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샤 클라크는 무엇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달콤한 기분에 빠져 들었다. 사내의 손길이 겨우 스치고 지나갔을 뿐인데도 야릇한 반응이 일어났다. 사내는 그녀의 뒤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마치 그녀를 뒤에서 안는 듯한 자세였다. 마샤 클라크는 사내가 뒤에 바짝 다가와서 체형을 재기 시작하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뛰었다.
사내는 복부를 잰 뒤에 줄자를 내려트려 둔부를 재기 시작했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둔부에 닿았다. 순간 그녀는 은밀하고 감미로운 전율이 자신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 물결처럼 전신으로 번지는 것을 느꼈다. 마샤 클라크는 그때 사내의 손을 떼어내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사내가 줄자를 올려 가슴을 재기 시작했다. 마샤 클라크는 마치 사내에게 자신의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사내의 줄자가 그녀의 가슴 위에 얹혀 있는 것이 마치 사내의 손이 얹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 사내가 줄자를 놓아버리고 한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덥석 움켜쥐었다. 다른 한 손은 빠르게 그녀의 복부를 끌어안았다.
“아!”
마샤 클라크는 순식간에 전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가슴을 움켜쥐었던 사내의 손이 가슴을 애무하고 복부를 끌어안았던 손은 그녀의 스커트를 걷어 올리고 속옷 위로 여인의 은밀한 곳을 더듬었다. 마샤 클라크는 정신이 몽롱해져 왔다. 그녀는 두 다리에 맥이 탁 풀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가늘게 신음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마샤 클라크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일이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사내에게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 자는 사람이 아닐 거야.’
사내는 그 일을 마친 뒤에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오로지 여자와 그 짓을 하는 것에만 목적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미안하지만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사내는 서둘러 일을 마치고나자 기진맥진한 마샤 클라크에게 그렇게 말했다. 마샤 클라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토록 격렬하게 관계를 했으면서도 무엇을 또 하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그의 나신을 보았을 때 마샤 클라크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그의 남성이 어느 사이에 거대해져 있었다. 마샤 클라크는 사내를 받아 안았다. 그를 거부하지 않은 것은 공포나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은밀한 쾌감 때문이었다. 사내는 두 번이나 일을 치르자 돌아갔다. 다시 오겠다고 말을 했으나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마샤 클라크는 몇 시간 동안 일어날 수도 없었다.
데살보는 마샤 클라크의 아파트를 빠져 나오자 흡족했다. 그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힌트를 얻어 자신의 왕성한 식욕을 해결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마샤 클라크는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몸을 열어주었다. 두 번째로 그가 요구했을 때는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었으나 나중에는 그녀가 허리에 두 다리를 감고 적극적으로 호응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녀의 남편에게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데살보는 이날부터 거의 매일 같이 양복점에서 사용하는 줄자를 가지고 여자들의 치수를 재러 다녔다. 보스턴 일대에 여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여자들은 기꺼이 데살보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체형을 잰다면서 복부를 만지거나 둔부를 애무하면 여자들은 허리를 비틀며 간드러지게 웃었다. 강간범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여자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는 노파들까지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보스턴 일대에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공개적인 소문은 아니었으나 강간범이 활개치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실 그런 소문이 나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치수 재는 사나이 데살보는 거의 매일 같이 여자들의 체형을 재러 다녔고 그에게 체형을 재게 된 여자들과 엽색 행각을 벌였다. 보스턴 일대에 나쁜 소문이 유령처럼 돌아다니고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1960년 3월 17일,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경찰은 절도범으로 생각되는 사내를 긴급 체포했다. 경찰에 체포된 사내는 검은 장갑과 양복점에서 사용하는 줄자를 갖고 있었는데 아파트를 기웃거리다가 순찰하던 경찰과 마주치자 황급히 달아나려고 하다가 체포되었다. 케임브리지 경찰은 사내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그는 경찰의 추궁이 계속되자 자신이 치수 재는 사나이라는 것을 자백했다. 2년 동안 보스턴 일대의 여러 경찰서에서는 강간사건이 수십 건이나 신고 되어 있었다. 경찰에 신고된 대부분의 사건들이 정체 모를 사내가 치수를 잰다고 접근하여 강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중에는 많지 않지만 치수 재는 사나이가 드물게 폭행을 한 사건도 있었다.
보스턴 일대는 치수 재는 사나이로 인해 발칵 뒤집혔다. 경찰이 잠정적으로 집계한 통계에서 이 사내가 약 300명의 여자와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많은 남자들이 자신의 부인을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데살보는 주거 침입, 주거 침입 미수, 폭행, 구타, 외설과 호색 행위 등으로 기소되었다. 그러나 법원에서 데살보는 그 사실을 모두 부정했다. 데살보에게 당한 많은 여자들도 데살보는 본 적도 없다면서 피해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사실 피해라고도 볼 수 없었다. 데살보는 여자들의 치수를 재는 척하면서 여자들의 가슴과 둔부를 애무했고 여자들은 대부분 데살보에게 자신의 몸을 맡겼던 것이다. 데살보는 여자들을 흡족하게 해준 모양이었다. 여자들 중에는 데살보에게 300달러를 주면서 다시 한 번 방문해 달라고 애원하는 여자도 있었다.
데살보의 재판에는 희대의 카사노바를 보기 위해 몰려든 여자 방청객들로 인해 초만원을 이루었다. 선정적인 지방 신문들이 이런 호재를 놓칠 리가 없었다. 보스턴 일대의 지방 신문들은 치수 재는 사나이의 이야기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외설과 호색이 유죄가 될 것이냐 하는 부분도 많은 시민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데살보는 법정에서 검찰의 기소 내용을 모두 부정했다. 검찰은 피해자들을 참고인으로 소환했으나 여자들은 응하지 않았다. 소환에 응한 여자들도 검찰의 기소 내용을 부인했다. 법원은 데살보에게 ‘주거 침입 미수’의 건만 인정하여 2년 징역을 선고했다. 주거 침입 미수에 대한 형량으로는 상당히 무거운 형벌이었으므로 데살보의 외설과 호색 행위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증거가 없었다.
데살보는 300(경찰 추정 : 본인은 1,000명 주장)명의 여자와 엽색 행각을 벌인 대가로는 지나치게 가벼운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카사노바를 능가할 정도로 수많은 여자들을 농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주거 침입 미수라는 죄목만 적용된 것은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주거 침입 미수에 대한 죄목으로는 지나치게 무거운 형벌이기는 했다. 데살보는 교도소에서 모범적인 수형 생활을 했다. 흉악범들과 달리 조용히 지냈기 때문에 11개월만 복용하고 모범수로 가석방이 되었다. 그러나 교도소에서의 11개월은 그의 심경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여자들의 치수를 재면서 거의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의 애무에 여자들 스스로 허물어져 그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11개월 동안의 교도소 생활은 그의 내면에 깊이 잠재해 있는 악마를 불러내고 있었다.
데살보의 아내 일름 가르트는 그에게 부부 관계를 중단할 것을 선언했다. 치수 재는 사나이로 보스턴에서 부도덕한 명성을 날린 데살보를 일름 가르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당신은 심각한 병이에요. 당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부부 생활을 하지 않겠어요.”
일름 가르트의 선언에 데살보는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교도소에서 11개월 동안 갇혀 있느라고 그는 왕성한 성욕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내마저 잠자리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난 그것만 할 수 있으면 아무 불만이 없는데….’
데살보는 어떻게 하든지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치수 재는 사나이로 변신하기로 결심했다. 데살보의
수법은 보스턴 일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를 모방한 가짜 치수 재는 사나이도 등장했다. 같은 수법을 사용하는 것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데살보는 같은 수법을 되풀이해서 사용했다.
그러나 데살보는 같은 수법을 되풀이해서 사용했다. 그가 교도소에서 나온 뒤에 데살보를 받아들인 여자들 중에서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데살보의 얼굴을 알고 있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다수의 여자들은 데살보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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