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경상도 순흥(順興)에 모(某)상사(上舍:조선시대 생원이나 진사를 지칭함)가 젊고 자색이 뛰어난 무녀와 이웃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해 만물이 녹음으로 짙어가는 늦은 봄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수호신인 당신(堂神)을 모셔놓고 마을의 평안과 생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굿판을 벌이게 되었다.
마을의 아낙들은 무녀의 굿에 끌려 그들 가정의 평안과 가족의 건강을 빌었고, 남정네들은 신명나는 악사들의 사물에 맞추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뛰어오르며 덩실덩실 춤사위를 펼치는 무녀의 굿에 빠졌다기보다는 젊은 무녀의 미색과 어우러져 간간이 드러나는 무녀의 가느린 팔과 부드러운 목선 그리고 아담하게 부풀어 올라 출렁이는 젖무덤에 시선을 두었다.
그곳에 모인 대부분의 남정네들은 입을 다물 줄 몰랐고 고인 침을 삼키느라 요동치는 목젖만이 악사들의 장단에 맞추고 있었다. 그리고 멍석에 줄지어 앉아 지켜보던 양반네들은 헛기침을 간헐적으로 뱉으며 체통을 지키느라 애써 시선을 돌리곤 했다. 상사 또한 무녀의 모습에 넋을 잃고 의지완 관계없이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무녀의 몸동작 하나하나를 놓칠세라 쫓고 있었다.
그날 이후 상사는 하루에도 서너 번씩 무녀의 집 앞을 기웃거리며 친압(親狎)하고자 했으나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다. 젊은 무녀도 상사의 행동거지와 음흉한 마음을 눈치 채고 있었으나 응하지 않았다. 상사는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도저히 이대로는 끓어오르는 음심(淫心)을 주체할 수 없어 변복을 하고 인적이 드문 마을 초입의 한곳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성황당에서 치성을 드리고 오는 무녀의 앞으로 불쑥 튀어나와 길을 가로 막아섰다.
“헉, 뉘 뉘시오? 뉘신데 신녀의 앞길을 가로막는 것이요?” 놀라며 무녀가 물었다.
“자네 날 모르겠는가?” 상사가 삿갓으로 가린 얼굴을 드러내고서야 무녀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상사어른 이 밤중에 여기까지 어인 일이신지?”
“자네가 날 이리도 피하니 예서 무작정 기다렸다네.”
“어인 일로 쇤네를 그토록 기다리셨는지요, 혹 댁에 무슨 변고라도?”
무녀가 시치미 떼며 물었다.
“어허 변고라니 그런 것이 아닐세, 자네 이리도 내 마음을 모르겠는가?”
상사가 애원하듯 되물었다.
“쇤네는 무슨 말씀이온지 통 모르겠사옵니다.”
무녀의 어정쩡한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상사가 와락 끌어안았다.
“이보게 어찌 이리도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겐가, 자네가 그러고도 신녀라고 말할 수 있는 게야?” 떼쓰는 어린아이마냥 상사가 애원했다.
“쇤네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만 놓아주시지요.” 다소곳이 무녀가 대답했다.
“그럼 날 받아들이겠다는 것인가?” 상사가 희색이 만면하며 묻자 무녀가 답하기를 잠시 주저하다 이내 말을 뱉었다.
“하오나 나으리, 오늘은 호합하기에 합당한 날이 아니옵니다.”
“어째서?” 이맛살을 찌푸리며 상사가 채근했다.
“오늘은 쇤네가 성황당에 치성을 드린 날이오라 사내와 호합하면 분명 큰 변고가 생길까해서이옵니다. 수일 내로 나으리께 기별을 넣어 정을 나눌 터이니 그만 돌아가시지오.”
“…내 자네의 말을 믿음세.” 상사가 미심쩍어 하였지만 부정 탄다는 무녀의 말에 후일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여러 날이 흘렀지만 무녀가 준다던 기별은 없고 해서 상사는 그 집 앞을 서성거려도 보았지만 무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실의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상사는 산신께 정성을 드리려 깊은 산에 들어갔던 무녀가 돌아왔다는 여종들의 얘기를 우연히 듣고는 오늘이 적기라 여겼고, 저녁상을 받을 무렵 상사가 가슴이 심하게 아프다고 꾀병하며 부인에게 무녀를 불러와 귀신 쫓는 굿을 부탁하라고 했다.
여종의 손에 이끌려 무녀가 상사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사랑채 앞에서 상사의 부인은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무녀가 와서 누워 있는 상사의 옆에 앉아 가슴을 만지며 굿할 준비를 하는데, 상사가 슬그머니 무녀의 치마 밑으로 손을 뻗어 음부(陰部)를 꼭 쥐었다.
“아~” 갑작스런 상사의 행동에 짧은 신음을 뱉고 당황하였지만 무녀는 이내 의젓하게 말을 이었다.
“빨리 놓아주지 않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이놈.”
그래도 놓아주지 않자 무녀는 이 말을 몇 번 반복하며 호통도 쳐보았지만 상사는 놓아줄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방밖에선 상사의 부인이 그 말이
귀신에게 경고하는 말로 알아듣고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빌고 있었다.
“제발 놓아주십시오.” 무녀는 사정하는 말로 애원했다. 그러나 상사는 더욱 힘차게 움켜쥐자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간파한 무녀는,
“나으리 약조를 지킬 터이니 제발 놓아 주시지오.”애원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상사는 그 말을 듣곤 빙그레 웃으며 음부를 놓아주었고 무녀는 꾀를 내어 상사의 부인에게“귀신을 달래야 하니, 붉은 콩과 쌀 몇 되, 삼베 몇 자를 소반에 받쳐 방으로 들이시오.”라고 했고 부인이 가지고 들어온 소반을 상사의 배 위에 얹고 몇 마디 주문을 외운 다음 상사의 부인에게 다시 주면서 말하기를 “이 소반을 가지고 동네 어귀로 나가 천천히 정성을 다하여 큰 절 3배를 7번 반복하고 오시오”라고 했다. 부인이 여종들과 밖으로 나가 오랜 시간이 걸려 큰 절을 하고 오는 동안, 상사와 무녀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몰랐다. 일이 끝나고 무녀가 돌아가니 상사의 가슴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상사의 부인은 무녀의 이 계책을 눈치 채지 못하였고 무녀를 영험 있다 하여, 자주 집에 드나들게 하였고 그럴 때마다 상사와 무녀는 호합할 수 있었다.
이 설화는 조선중기의 학자 고상안(高尙顔)의 효빈잡기(效嚬雜記)에 수록된 글로 원문의 묘미를 해치지 않게 재구성하였다. 원문의 끝에 실린 선조 임금의 일화를 짧게 소개하자면 병석에 누운 선조 임금이 이 이야기를 듣곤 크게 웃으며 저녁 내내 잠들지 않고 기분이 좋았다고 전한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