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없다 <제11회>
코끼리는 없다 <제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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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06-26 13:34
  • 승인 2007.06.2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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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위험한 사랑(1)

조금만 늦었으면 벌써 칼을 빼어든 키 큰 사내에게 일을 당하고 말았을 위기였다.

“이 짜아식은 또 뭐야?”

키 큰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순간, 차 일만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키 작은 사내의 옆구리를 발로 힘껏 내질렀다. 불시에 선방을 당한 사내는 맥없이 쓰러졌다. 거울 벽이 깨어져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으나 차 일만은 개의치 않았다.

“왜 훼방꾼이 나타나니까, 떫어?”

이럴 때는 먼저 기싸움에서 지지 말아야 했다. 차 일만은 키 작은 사내가 꿈틀대자 얼굴을 한 차례 더 발로 가격한 뒤 키 큰 사내를 향해 다가갔다.

키 큰 사내가 돌아섰다. 순간, 차 일만은 그에게 달려들며 자신도 모르게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도망가요, 빨리. 차 일만은 그녀의 얼굴이 백짓장보다 더 창백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뱃속의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징조였다.

키 큰 사내는 역시 키 작은 사내와는 달랐다. 칼을 날리는 솜씨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러나 차 일만은 겁이 나지 않았다. 염 은옥이가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그는 맨몸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춤을 추듯 칼을 휘둘러대던 키 큰 사내는 차 일만에게 기가 질린 듯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던 칼에 결국 어깨를 찔린 차 일만이 피를 흘리며 잠시 주춤하는 사이 쓰러졌던 키 작은 사내가 둔기로 등짝을 세게 가격한 것이었다.

비틀거리던 차 일만은 미용기구가 진열되어 있는 벽을 잡고 쓰러졌다. 그만 정신을 놓았다. 그 뒤로 얼굴과 몸통에 둔기가 몇 차례 더 가해지는 것을 느꼈으나 이미 아프다는 감각은 상실된 뒤였다. 의식이 가물거렸다. 그런 속에서도 그는 염 은옥이가 걱정스러웠다.

“재수 드럽게 없네.”

“빨리 튑시다, 형님.”

“근데, 이 새끼는 어디서 굴러먹던 말뼈다귀야?”

“손쓰는 것을 보니까, 예사 놈은 아니던데요.”

사내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통감하는 모양이었다. 화풀이 하듯 널브러져 있는 차 일만의 옆구리를 구둣발로 몇 차례 더 찍은 뒤, 가래침을 바닥에 힘껏 뱉고는 미용실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강 승길로부터 마지막 통고를 받은 뒤 꼭 이틀 만이었다. 파견된 ‘아이’들이 미용실을 엉망으로 만들고 나간 시간은 고작 10분도 되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은 늘 그처럼 길지 않았다. 순식간에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매에 대한 사람들의 면역성은 의외로 약했다. 특히 둔기나, 혹은 칼과 같은 무기에 의한 가격은 더욱 빨리 끝나버리게 마련이었다.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은 차 일만은 염 은옥부터 찾았다. 그녀와 아이의 안전이 궁금했다. 두리번거리던 그는 바로 곁에 그녀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 비로소 안심이 된다는 듯 다시 눈을 스르르 감았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울 것으로 알고 이번엔 저들이 ‘풋내기’들을 파견하였으나 한 차례 곤욕을 겪은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 틀림없었다.

차 일만이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 노출된 이상 저들도 이제는 관례상 그를 이길만한 인물을 파견할 게 분명했다.

“많이 아프세요?”

염 은옥이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아픔 따위가 문제되지 않았다. 옆구리가 켕기고, 어깨통이 욱신거렸으나 그는 벌써 자신의 몸에 대한 체크를 모두 끝낸 상태였다. 뼈가 상하지 않은 이상 온몸을 칭칭 감고 있는 붕대는 닷새쯤이면 풀릴 것이 틀림없었으며, 터지고 찢긴 피부를 꿰맨 실밥은 그보다 이틀 정도 더 지나면 제거될 게 분명했다. 병원 신세를 진 게 어디 한두 번인가. 그는 한숨을 길게 토해내었다.

“아프시면 아프다고 하세요.”

그녀가 재우쳐 물었으나 차 일만은 여전히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 얼마만인가. 로즈 우드 향기…….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 꿈속 같았다.

“그런데 그 강도 놈들이 쳐들어올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염 은옥은 그것이 못내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 놈들은 강도가 아닙니다…….”

차 일만은 도리질을 했다.

“그럼, 아는 사람들이에요?”

염 은옥의 두 눈이 더욱 커졌다. 말눈치를 챈 그녀의 어머니가 바투 다가앉으며 참견을 하였다. “거 봐라. 내 꿈이 꼭 맞는구나.” 그녀가 혀끝을 찼다.

독한 소독약 냄새가 콧속으로 스며들어왔다. 차 일만은 얼굴을 찡그렸다.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할까. 뭐라고 해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정체는 숨기고, 그들의 정체는 밝힐 수 있단 말인가. 미처 거기까지는 궁리하지 못했던 그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황 회장님이 보낸?”

역시 그녀는 영리했다. 그녀의 얼굴에 다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가 뒷말을 이어주지 않았는 데도 벌써 앞을 내다보며 걱정하고 있었다. 결국 차 일만은 그녀에게 닥칠 앞날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이실직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오늘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앞으로가 더 문제입니다. 저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람을 보낼 것입니다.”

“뭣 때문이지요? 아이 때문인가요?”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간, 그녀의 어머니 입에서 ‘주여, 주여’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다행스럽게도 염 은옥은 그가 어떻게 그런 것을 소상히 알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캐묻지 않았다. ‘주여, 주여’를 연발하며 귀여겨듣던 그녀의 어머니가 다시 나섰다.

“경찰에 신고하면 어떨까요?”

그녀는 강경했다. 그 말에 차 일만은 화들짝 놀랐다.

“안 돼요.”

그는 헛기침을 몇 차례 뱉어냈다. ‘짭새’라면 생리적으로 거부반응이 있는 차 일만이었다. 더구나 이번 ‘일’이 까발려진다면 그 여파는 자기한테도 올 것이 틀림없지 않은가. 그는 옆구리가 결렸으나, 말을 이어나갔다.

“경찰에 신고를 한다고 해서 저들이 겁을 먹고 사람을 보내지 않을 것 같으세요? 천만의 말씀이에요. 저들은 계속 사람을 보낼 겁니다. 끝장을 볼 때까지.”

“그럼, 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수밖에 없겠구먼…….”

그녀의 어머니가 토해놓는 한숨 소리가 병실 안을 음울하게 울렸다. 귀살쩍다는 듯 그녀가 혼잣말로 다시 ‘주여’ 소리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권상사가 잠자고 있던 휴대폰을 흔들어 깨웠다. 염 은옥이가 건네준 휴대폰 속에서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외쳐대고 있었다.

“형님, 이거이 무신 경우래유. 아닌 밤중에 홍두깨두 유분수지, ‘빳따’ 형이 우리 ‘하우스’를 개박살낼 이유가 도대체 뭐래유? 이거이 말이 되는 소리에유?”

차 일만은 잠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바야흐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자신뿐만 아니라 어느새 아우인
‘권 상사’에게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이었다.

“근디, 형님은 지금 어디 기시는 거유?”

권 상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급했다. 그는 차 일만의 행방을 급히 찾고 있었다.‘하우스’를 부수면서 ‘빳따’가 차 일만이 때문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 차 일만은 더 이상 그에게조차도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병원이야.”

이제 선택의 폭은 좁아졌다. 그들과 전쟁을 치르느냐, 아니면 항복을 하느냐 하는 두 가지 뿐이었다. 그것을 그는 권 상사가 병원을 찾아오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차 일만은 망설이지 않았다.

항복이란 곧 염 은옥의 죽음까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은 자신이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가까이 다가와 있는 염 은옥
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병원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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