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자신의 안전을 생각해 연약한 여자들 살해
살인마 자신의 안전을 생각해 연약한 여자들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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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7-07-04 11:38
  • 승인 2007.07.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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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남녀가 방사 도중 음화(淫火)가 일어나서 죽은 사건


《무원록》에 ‘남자가 지나치게 방사를 하면 정기를 모두 빼앗겨 부인의 몸 위에서 죽는다(腹上死)’고 기록되어 있다. 그 진위를 살펴보면, 복상사의 경우에는 양경이 죽지 아니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양이 죽어 있다. 김점룡의 경우 양경이 서 있으므로 복상사로 볼 수 있는데, 맹화(猛火)가 속에서 발생하여 죽은 것이지만 몸 밖의 피부에는 번지지 않은 것이다.

이 사건은 음화로 인하여 죽었다고 하여 조선시대에 큰 화제가 되었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희귀한 일이다. 그러나 시장을 검토한 전라도 감영의 제사는 독특하다. 전라도 감영의 제사는 남자는 새벽에 부친의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잠을 설쳤을 것이고, 여자를 만나 술까지 마신 뒤에 과도하게 방사를 하여 연기에 먼저 질식하고 다음에 불에 탄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현대의 화재 현장에서도 불에 타 죽는 것보다 연기에 질식해 죽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정약용이 두 남녀의 죽음을 음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본 것은 화재의 속성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끝>


제15화
요크셔의 살인마


연쇄살인에는 대개 핏빛의 지독한 광기가 느껴진다. 세상에 대한 증오라던가, 자신에 대한 모멸이 광기의 저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우리는 흔하게 발견할 수가 있다. 우리는 때때로 이러한 살인사건을 보면서 왜 이런 살인사건이 발생하는가, 이러한 살인사건을 피할 수 없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범죄심리학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통해 보더라도 살인사건은 인간의 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유전적인 요소와 태생적인 요소, 그리고 환경적인 요소도 많은 작용을 하고 있다.

1975년 10월부터 1978년까지 영국의 요크셔 지방에서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잇달아 발생하여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불과 3년 동안에 9명의 젊은 여자들이 잔인하게 살해되었던 것이다. 피해자들 중 8명은 매춘부들로 밤중에 혼자 길을 가다가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복부나 국부가 난자된 시체로 발견되었다. 현장은 처참했다. 낭자한 핏자국과 짓이겨진 시체의 참혹한 모습에 형사들마저 진저리를 쳤다. 현장에는 즉시 감식반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면밀한 감식을 한 끝에 살인자가 피해자의 뒤에서 기습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인마는 밤길을 혼자 걷는 여자의 뒤통수를 망치로 강타한 뒤에 복부와 국부를 난자했다.

흉기는 드라이버와 칼이었다. 기이한 일은 살인마가 여자들을 강간하지 않고 살해만 했다는 사실이었다. 형사들은 살인마가 오로지 살인에만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크셔의 주민들, 특히 여자들은 공포에 떨었다. 해가 지면 여자들은 밤외출을 삼갔다. 요크셔 일대는 밤이 되면 인적이 뚝 끊겼다. 거리는 황량했고 상점들은 문을 닫아걸었다.

‘요크셔에 살인마 등장, 요크셔는 유령의 거리!’

영국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경찰은 신문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더욱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저인망식 수사가 오랫동안 되풀이되었으나 전과자들이나 주변 불량배들만 연행되어 고초를 당했다.

영국 경찰은 베테랑 수사관들을 총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살인마의 꼬리는 잡히지 않았다. 영국 최대의 살인사건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서 요크셔의 살인마는 범죄 행각을 거듭했다. 1975년에서 1978년까지 3년 동안 9명의 여자들이 밤길에 살해되었다. 이후에도 살인은 계속되어 그가 살해한 여자들은 모두 13명이나 되었다. 피해자들은 기이하게 매춘부들뿐이었다.

영국 경찰은 매춘부들을 주목했다. 유흥가의 매춘부를 상대로 한 집요한 수사가 계속되었다. 매춘부들을 찾아오는 남자들도 수사의 대상이 되었다. 경찰의 집요한 수사로 매춘부들은 수입이 크게 떨어졌다. 1981년 1월2일 영국 경찰은 요크셔주 세필드에 주차해 있는 차에 남녀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여자는 한 눈에 매춘부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화장이 진했고 옷차림이 선정적이었다. 세필드 경찰은 불심검문을 했다. 차에 있던 여자는 그 지역 매춘부였고 남자는 피터 셔트클리프라는 트럭운전사였다.

경찰은 차량 번호를 조회했다. 그가 운전하고 있던 차는 도난 차량이었다. 경찰은 그를 연행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는 소변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경찰이 멀리 떨어져 감시하는 가운데 피터 셔트클리프는 가솔린 탱크 옆에서 소변을 봤다. 이튿날 아침에 경찰은 가솔린 탱크 옆을 수색했다. 가솔린 탱크 옆에서 드라이버와 칼이 발견되었다. 그것들에는 아직도 혈흔이 묻어 있었다. 경찰은 밤을 새워 그를 추궁했다. 피터 셔트클리프는 마침내 자신이 13명의 여자들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드라이버와 칼에서 발견된 혈흔은 피해자의 혈흔과 일치했다.

피터 셔트클리프는 35세의 결혼한 남자였다. 그에게는 소니아라는 이름의 아내와 아이들도 있었다. 이웃 사람들은 그가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내와의 관계도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왜 살인을 저질렀는가?”

검사가 그의 살인 동기를 물었다.

“나는 공동묘지에서 무덤을 파는 일을 한 적이 있소. 그때 나는 묘비가 매춘부들을 죽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소.”

피터 셔트클리프가 음산하게 말했다. 변호사는 피터 셔트클리프를 정신병 환자로 몰고 가려고 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그의 유죄를 인정했고 판사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 트럭의 주인이 저지른 일이 드러나면 영국 전체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는 주위의 모든 것을 압도한다. 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피터 셔트클리프의 트럭 운전석에 있는 카드에서 나온 기록이다. 자조적이면서도 광기가 느껴지는 고백이었다. 그 자신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자신과 같은 존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피트 셔트클리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는 왜 매춘부들만 살해했을까. 피터 셔트클리프는 매춘부에 특별한 증오심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가 매춘부를 살해한 것은 세상을 더럽히는 창녀를 살해한다는 자기 나름대로의 기독교 정신이 아니라 매춘부들은 접근이 쉬웠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피터 셔트클리프의 메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신의 살인행각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악을 컨트롤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체포되는 것을 오히려 원하고 있었다.

살인은 죄악이다. 우리는 연쇄살인사건을 읽으면서 살인이 의외로 손쉽게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체 왜 이토록 잔인하고 엽기적인 살인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창세 시대에 카인이 아담을 살해하면서 시작된 살인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살인을 죄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되풀이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감스럽게도 연쇄살인에는 동기가 없는 경우가 더 많고, 다중인격에 의한 정신질환과 성범죄와 관련되어 일어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끝>



제16화
알몸의 연쇄살인사건


우리는 살인자들을 주로 살펴 왔는데 이제는 살인의 대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살인마들에게 살해당한 사람들은 뜻밖에 사회적으로 약자이거나 연약한 여성들, 미성년자들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살인자들이 타인은 살해하면서 자신은 안전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여자들, 특히 사창가의 여자들이 주로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1964년 2월 2일 오전에 영국의 템즈강에서 한 여자가 알몸의 시체로 발견되었다. 여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으며 스타킹이 발목에 감겨 있었고 삼각형의 붉은 팬티가 입 속에 쑤셔 박혀 있었다. 경찰 공의는 익사로 추정된다고 말했으나 삼각형의 붉은 팬티가 입 속에 쑤셔 박혀 있고 시체가 발견된 지점에서 여자의 겉옷이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타살일 가능성이 더 많았다. 경찰은 여자의 신원을 찾기 위해 지문을 떴다. 다행히 여자가 살해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자는 런던 시내 노팅힐 지구의 매춘부로 한나 틸포드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경력이 5년이나 되는 매춘부였다. 런던 경시청은 한나 틸포드가 매춘을 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수사를 진행했으나 용의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한나 틸포드가 알몸의 시체로 발견된 지 약 2개월이 지난 4월9일. 템즈강에 또 다시 알몸의 여자 시체가 떠올랐다. 한나 틸포드의 시체가 발견된 지점에서 불과 30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번에는 손과 발이 여자의 스타킹으로 묶여 있었다. 런던 경찰은 즉시 목격자 탐문수사와 여자의 신원을 밝히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수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여자가 아이린 로크위드라는 매춘부라는 것이 밝혀졌다. 목격자 탐문수사에서는 뚜렷한 소득이 없었다.

살인사건이 런던 타임즈에 보도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도 보도되었다. 이 사건이 매스컴에 집중적으로 보도되자 누구보다도 놀란 것은 런던의 노팅힐지구 매춘부들이었다. 노팅힐 지구는 오래된 도시였으나 밤에는 매춘부들이 들끓는 곳으로 유명했다. 런던의 매춘부들, 특히 노팅힐 지구의 매춘부들은 공포에 떨었다. 살인마에게 희생된 두 번째 매춘부는 임신 4개월이라 더욱 충격을 주었다. 런던의 템즈강에서는 1959년에도 제방에서 한 매춘부가 속옷 차림으로 교살된 채 발견되었고 1963년에 템즈강 하류의 쓰레기 처리장에서도 알몸의 여자 시체가 발견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매춘부들은 그 악몽과 같은 살인사건을 생각하면서 더욱 공포에 떨었다. 이 네 사건이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사건이기는 했지만 모두가 런던의 노팅힐 지구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는데 공통점이 있었다.

두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템즈강에서 1.6km 떨어진 브렌트포드의 운동장에서 또 다시 알몸의 여자 시체가 발견되었다. 여자는 금발머리로 허리 주위에 검은빛의 자국이 있었다. 시체에는 스프레이 페인트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살인마가 여자를 살해한 뒤에 페인트 공장에 운반하여 방치했다가 버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런던 경찰은 즉시 여자를 부검했다. 그 결과 여자의 목에서 남자의 정액이 검출되었다. 살인마가 여자의 목에 강제로 페라치오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64년 7월14일 티즈위크 고속도로 근처에서 철야작업을 하고 있던 도장공들은 자동차 도어가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도장공들이 밖으로 나오자 한 사나이가 밴을 몰고 급히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에 도장공들은 알몸의 여자가 차고의 문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목구멍에서 정액이 검출되었다. 시체에는 스프레이로 페인트를 뿌린 흔적이 있었다.

사체를 부검한 런던의 법의학자들은 매춘부들의 사인에 대해서 새로운 의견을 제기했다. 여자들의 사인이 질식사라는 새로운 소견을 발표한 것이다. 사건을 수
사하던 경찰들은 반신반의했다. 아직까지 그러한 살인방법은 한 번도 제시되지 않았고 기록에도 없었다. 법의학자들이 제기한 질식사는 살인마가 여자들에게 페라치오를 시킬 때 여자들을 질식시킨다는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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