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관서지방의 어느 조그만 시골마을에 나이 서른을 넘기고도 슬하에 자식이 없는 양반내외가 살고 있었다. 자식이 없다보니 두 내외의 관계도 만목소연(滿目蕭然)하고, 자연스레 부부의 잠자리도 멀어지게 되었다.
남편은 뒤늦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느라 집을 비우기 일쑤였고, 혼자 남은 부인은 그때마다 끓어오르는 춘정(春情)을 억제치 못하고 외간 사내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한바탕 음희(淫戱)를 벌이곤 했다. 남편 아닌 외간 사내와의 음행(淫行)이 거듭될수록 부인은 색에 눈뜨고 음희의 기교 또한 나날이 향상되어 가다보니, 부인은 만족하는 일이 드물어졌고 외간 사내들은 하나같이 부인의 기교에 넋을 잃고 허물어져 혼비백산하며 버선발로 도망하기 바빴다.
마을의 힘 좋다 소문난 젊은 양반들은 너나할것없이 모두 부인과 관계를 가졌지만 누구 하나 부인을 제대로 만족시키는 사내가 없었다.
나이 서른 줄에 들어서도 중국 한나라 성제의 연인 조비연(趙飛燕)과 견주어도 미색이 지지 않을법한 부인을 흠모해 마을의 많은 머슴과 양인들이 부인과의 방사를 꿈꾸며 월담하여 부인의 방에 몰래 침입하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부인은 아무리 힘 좋은 머슴과 양인일지라도 자신의 몸을 허락하는 일이 없었고, 집안의 종들에게 붙잡혀 뭇매를 맞고 쫓겨났다.
어느 날은 방에 침입했다 붙잡힌 이웃집의 한 머슴이 뭇매질을 견디며 죽을 것을 각오하고 부인에게 물었다.
“마님, 마님께옵선 힘 좋고 오래가는 남정네를 찾는다고 들었사온데, 어찌 남정네의 거시기에 차별을 두려하옵니까, 마님의 옥문을 만족시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는지요?”
“그래 네놈의 말대로 내 외간 사내와의 음희를 즐기나, 내 어찌 금수(禽獸)의 탈까지 쓸 수야 있겠느냐, 네가 비록 날 만족시킬 수 있다 할지언즉, 반상(班常)의 도를 헤치면서까지 내 음심을 채우고 싶진 않구나!” 부인이 머슴을 호되게 꾸짖었다.
이웃집 머슴은 호된 뭇매질을 당하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고 이 일이 알려진 후에야 마을의 머슴들과 양인들은 부인의 집 담을 넘지 않았고 주막에 모여 안주삼아 입방아를 찧어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명기의 고장 평양으로 향하던 김선달이라는 행색이 초라한 선비가 이 마을을 지나다 주막에 들러 요기를 하게 되었는데, 마을의 양인들이 술판을 벌이며 나누는 얘기를 우연히 듣곤 양인들의 자리에 합석하며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전해 듣게 되었다.
서산자락이 노을의 검붉은 옷으로 갈아입을 무렵 김선달은 부인의 집 앞에 당도해 대문을 힘차게 두드리고 있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몇 번을 그렇게 부르니 늙은 종이 대문을 열고 나와 뉘인지 물었다.
“부인의 딱한 소식을 전해 듣고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온 과객이라 부인께 여쭙고, 긴긴밤 말동무나 하며 보내잔다 전하거라” 하고 김선달이 말하니, 얼마 후 부인의 몸종이 나와 김선달을 안내해 안채로 들어갔다.
안채에서 부인과 직접 마주하고 보니, 온 마을의 머슴과 양인남정네들이 그토록 입이 마르고 닳도록 얘기를 하는 연유를 알게 되었다.
“선비님께옵선 저의 딱한 사정을 어떻게 헤아려주실 작정이십니까?” 부인이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그야 부인께옵서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줘야하지 않겠습니까.” 김선달이 호언하듯 말하자 부인이 김선달의 행색과 몰골을 살피며 한바탕 크게 웃었다.
“호호호 선비님의 그 보잘 것 없는 체격으로 절 조금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으시겠습니까?”
“부인 옛말에 이르기를 마른 장작이 오래타고 화력 또한 강하다 하지 않습니까!” 김선달의 거칠 것 없는 호언에 부인이 잠시 생각하다 이내 말문을 다시 열었다.
“그럼 선비님께서 저에게 약조를 하나 해 주시지요?”
“그 약조가 무엇입니까?”
“선비님께옵서 제게 열 번 만족을 주시지 못한다면 선비님의 그것을 제가 갖겠습니다.”
부인이 말하자 이번에는 김선달이 자신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기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부인께옵서도 제게 지켜주셔야 할 것이 있사온데 그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첫째 안채의 종들은 행랑채로 물릴 것이며, 둘째 음행 간에 있어 절대 불을 밝히면 안 될 것이고, 셋째 열 번의 거사를 치르고 부인이 만족하시면 은화 백 냥을 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김선달이 당당하게 조건을 제시하자 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김선달의 조건을 모두 들어 주겠노라고 대답했다.
이윽고 방안을 밝히던 촛불을 모두 끄고 알몸으로 금침에 들어 음희를 시작하니 과히 김선달의 호언이 거짓이 아님을 부인은 몸소 느끼게 되었다. 부인이 첫 번째 방사의 기쁨을 느끼고 만족하니 김선달이 자리에서 일어나 도포만을 걸친 채,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려 하자 부인이 김선달을 잡으며 물었다.
“선비님께옵선 어찌 한 번에 그치시고 도망하려 하십니까, 정녕 약조를 어길 참이십니까?”
“부인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 제가 소피를 보고 오는 동안 흘린 땀이나 닦아내시구려, 저는 음행 간에 항상 소피를 보아야만 다시 그 기운이 되살아난답니다” 하
고 껄껄 웃으며 김선달이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도포를 걸친 김선달이 들어와 다짜고짜 부인에게 달려드니 전보다 더욱 힘이 강하였다. 매번 방사가 끝난 후엔 말없이 뒷간을 다녀와 다시금 힘차게 방사의 기쁨을 선사하니, 부인은 사지가 허물어지고 온몸이 부르르 떨려 더 이상 방사의 즐거움도 느낄 수 없게 되었고 이제는 오직 음희를 그만 두고자 했다. 마지막 열 번째로 김선달이 들어와 저돌적으로 달려들며 자신의 옥문에 그것을 찔러 넣으려하니 부인이 뒤로 물러났다.
“선비님 충분히 만족하였으니 이제 그만 하심이...” 부인의 애원에도 묵묵부답 부인에게 달려들었다. 부인이 도망치듯 물러나 김선달과의 약조를 어기고 방안에 불을 밝히니, ‘아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알몸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사내가 김선달이 아니고 수개월 전 자신에게 뭇매를 맞고 쫓겨난 이웃집 머슴이 아닌가.
“네 이놈,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냐? 네가 이러고도 무사하길 바라느냐? 네 놈이 선비님께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부인이 다그쳐 물으니 이웃집 머슴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마님, 선비님께옵선 지금 밖에서… 밖에서…”
“대체 뭐냐? 얼른 말해 보거라?”
“선비님께옵선 밖에서 돈을 받고 계십니다요.”
그 말을 듣고 부인이 너무도 황당하여 문을 열어보니 마을의 머슴과 양인남정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이 이야기는 편자미상으로 요즘 인터넷상에서 떠돌았던 ‘옹녀를 울린 봉이 김선달’이란 제목의 얘기로 고전설화인 변강쇠전과 봉이 김선달전의 일부가 결합되어 일종의 해학설화 형태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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