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었다. 이 희대의 살인마에 대해서 경찰은 어떤 단서도 잡지 못해 런던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희생자들이 전부 매춘부들이었지만 언제 일반 여자들에게 살인마의 마수가 뻗쳐올지 알 수 없었다. 런던은 밤이 되면 외출자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사건이 장기화되자 무능한 경찰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경찰은 노팅힐 지구 일대에 비상망을 쳤다. 노팅힐을 지나가는 모든 차량의 번호를 추적하여 수사에 나섰다. 그러나 범인에 대한 단서는 찾을 길이 없었다.
영국 런던의 노팅힐 지구는 우울했다. 2월16일, 겨울이 채 가기도 전에 또 하나의 매춘부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번에는 히론 트레이딩이라는 숲속이었다. 시체의 목구멍에서는 정액이 검출되었고 앞이빨이 부러져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에는 페인트 스프레이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시체는 거의 미라 상태였다.
호사가들은 살인마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추측을 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야기는 과연 페라치오를 하다가 여자를 죽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추측했다. 특히 법의학자들이 제기한 추측에는 개연성이 있었다. 법의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추리했다.
살인마는 여자를 납치한 뒤에 밴에서 여자에게 페라치오를 할 것을 요구한다. 여자는 살인마의 협박에 견디다 못해 울면서 페라치오를 한다. 살인마는 행위가 절정에 이를 때 여자의 머리를 눌러서 페니스의 끝이 여자의 목구멍을 메우게 한다. 여자는 그렇게 하여 기도가 막혀 질식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측은 어
디까지나 가설일 뿐이었다.
살인마는 여자를 살해한 뒤에 시체를 밴에 싣고 도장 공장으로 가서 옷을 벗기고 능욕했다. 그리고 이빨을 부러트린 뒤에 템즈강이나 숲속에 버렸다. 그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노팅힐 일대를 지나가는 많은 영국인들이 수사대상에 올랐다. 영국 경찰은 두 번 이상 노팅힐을 지나간 차량을 모두 조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양이었다. 수사 책임자인 존 듀 로즈 형사는 용의자들을 20명으로 압축하여 수사를 벌였다. 그 중에 17명이 알리바이가 입증되어 3명이 남았다.
로즈 형사는 더욱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용의자는 경비회사의 경비원이었다. 그가 밤에 경비하는 지역에는 문제의 도장 공장이 있었다. 살인마가 시체를 버리고 달아났던 페인트 공장이었다. 여러 가지로 그 사내는 의심을 받았으나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 그는 독신자였고 밴을 소유하고 있었다. 로즈 형사는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여 살인마를 검거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살인마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용의자는 수사망이 좁혀져 오자 긴장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다.
살인사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심증은 있었으나 그가 살인마라는 확증은 없었다. 런던 경찰은 그 후에도 계속 수사를 했으나 이 사건에 대해서 아무 단서도 발견할 수 없어서 결국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영국에서 일어났던 가장 잔인했던 연쇄살인사건 ‘찢어 죽이는 잭’과 함께 영국 범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우리는 살인자가 매춘부들을 집중적으로 살해했다는 점에서 교활한 면을 엿볼 수 있다. 살인자는 사회적으로 신분이 낮고 접근이 쉬운 매춘부들만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끝>
시체를 황산으로 녹인 살인마
살인자는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을 느끼는가. 유감스럽게도 연쇄살인이나 대량 살인에서 이러한 모습을 살필 수는 없다. 연쇄살인이나 대량살인은 살인자가 이미 인간성을 상실하여 오로지 행위에만 목적을 두고 있었다. 살인자가 욕망을 원하면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 살인을 하고 돈을 원하면 돈을 얻기 위해서 연속으로 살인을 한다. 연쇄살인의 범인들은 오로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살인을 계속한다.
1949년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는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의 첼시 섹서스 지방에서 일어난 6건의 연속살인, 시체를 황산(黃酸)으로 녹여서 증거를 인멸하려다가 검거된 희대의 살인마 ‘존 조지 헤이’가 ‘나는 오로지 인간의 피를 마시기 위해 살해했다’라고 진술을 하여 영국인들을 충격 속에 몰아넣었던 것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은 의외로 잔혹하고 엽기적인 사건이 많이 일어난다. 찢어 죽이는 잭이나 요크셔의 살인마가 모두 영국인이라는 사실은 인간의 표면과 이면이 어떻게 다른지 살필 수가 있다.
살인마 ‘헤이’의 연쇄 살인은 사소한 범죄로 시작되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사기와 절도 따위의 범죄를 저질러 잡범으로 형무소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세계 어느 나라나 그랬던 것처럼 형무소는 죄인을 갱생시키는 곳이 아니라 범죄자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헤이는 1936년에 맥스윈이라는 게임 코너 경영자 밑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그는 얼마 일을 하지 않고 또 다시 사기를 저질러 형무소에 들어갔다. 헤이가 형무소에 있을 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히틀러는 전 유럽을 침략하고 일본은 아시아를, 이탈리아는 남부유럽에서 잔혹한 전쟁을 수행했다. 전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의 고통 속에 빠져 있을 때 헤이는 형무소에서 ‘완전한 범죄’를 계획했다. 그가 목적으로 하는 것은 오로지 돈이었다.
1943년 헤이는 형무소에서 출감했다. 히틀러의 광기가 점점 심해져 유태인들이 가스로 학살되고 영국도 독일군의 공습의 위협에 놓이게 되었다. 영국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군대에 징집되었다. 그러나 헤이는 전과가 많았기 때문에 징집에서 제외되었다. 그는 그 동안 섹서스에 있는 그로스터 거리의 붉은 벽돌집 지하에 작업장을 만들어놓고 황산을 구입했다. 그리고 들고양이를 죽여서 실험도 했다. 실험결과는 만족할 만했다. 준비가 갖추어지자 헤이는 자신을 고용했던 맥스윈의 아들, 도널드 맥스윈을 작업장, 소위 살인공장으로 유인하여 뒤통수를 가격하여 살해했다. 이어 도널드의 사체를 황산통에 넣어 녹였다. 냄새는 지독했으나 지하 작업장이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잔재는 하수도에 버려 흘러가게 했다.
여러 날이 지났다. 첫 번째 살인을 완벽하게 해치운 헤이는 맥스윈 부부를 차례로 유인해서 살해했다. 일가를 완전히 살해한 헤이는 그들의 재산 4천 파운드를 유언장을 조작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그 돈으로 온슬로 코트 호텔에 머물면서 사업가 행세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1947년 맥스윈 일가를 살해하고 빼앗은 4천 파운드를 모두 탕진한 헤이는 새로운 사냥감을 찾기 시작했다. 영국은 전후 복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쟁에 나가서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고 독일의 공습으로 수많은 건물들이 파괴되었다. 전승국이었지만 영국은 미국의 원조를 받아야 했다. 집을 팔겠다는 신문 광고가 헤이의 눈에 띄었다. 신문에 광고를 낸 사람은 핸더슨 부부, 헤이는 1만5000 달러에 사겠다면서 그들에게 접근했다. 그러나 애초부터 집을 살 돈이 없었던 헤이는 계약이 성사될 때쯤에 엉뚱한 이유를 붙여서 파기했다. 그러나 돈 많은 사업가 행세를 한 헤이는 그들과의 관계를 계속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핸더슨 부부는 헤이에게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
헤이는 새로운 작업장을 클로리시 레오폴드 거리에 마련했다. 그리고 작업 준비가 완전히 갖추어지자 핸더슨을 유인하여 살해했다. 이어서 그 부인을 유인한 뒤에 살해했다. 그리고 그들의 시체를 황산으로 녹여서 처리한 뒤에 7700 파운드에 이르는 재산을 착복했다.
헤이는 7700 파운드의 일부로 빚을 갚고 나머지는 1년도 되지 않아서 소비했다. 돈이 떨어졌기 때문에 그는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야 했다. 그는 온슬로 코트 호텔의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미모의 부인에게 눈독을 들였다. 그녀의 이름은 듀란 디콘이었다. 그는 인조손톱을 제조하는 사업가로 행세하면서 듀란 부인에게 접근하여 클로리시의 살인공장으로 유인했다. 듀란 부인도 결국 살해되었다.
듀란 부인이 행방불명이 되자 경찰이 행방을 찾기 시작했다. 헤이는 듀란 부인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목격되어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경찰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헤이는 스스로 경찰을 찾아가 듀란 부인의 행방불명을 신고했다. 경찰은 헤이의 과거를 조사하고 그가 수상한 인물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 챘다.
헤이에 대해서 집중적인 취조가 시작되었다. 헤이는 자신이 살인범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경찰은 섹서스의 작업장을 수색하여 듀란 디콘 부인의 코트를 찾아냈다. 헤이의 증언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듀란 부인의 보석을 헤이가 시내의 보석상에 팔았다는 것도 밝혀졌다.
“정신병자의 경우 처벌을 할 수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헤이는 취조하는 경찰에게 자신이 정신병자라고 주장하여 처벌을 받지 않으려고 했다. 경찰의 취조는 집요했다. 헤이는 마침내 자백을 했다.
“내가 듀란 부인을 죽인 것을 인정하겠다. 그녀는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체는 어떻게 했나?”
“산(酸)으로 처리해 버렸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황산으로 녹여서 없앴기 때문에 시체가 없다. 시체가 없는데 어떻게 살인을 입증하겠는가?”
헤이는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경찰은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시체 없는 살인자를 기소해서 유죄가 입증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사람을 죽여도 사체가 없으면 재판을 진행할 수 없다.
“왜 죽였지?”
“내가 살인한 동기는 인간의 피를 마시고 싶어서다. 피가 흐르는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사람을 죽일 때마다 그들의 피를 컵에 가득 따라서 마셨다.”
헤이는 가증스럽게 정신병자로 가장하려고 했다. 사람의 피를 마시는 것은 정신병자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취조하는 첼시의 경찰은 구토를 해야했다. 헤이는 자기가 저지른 살인사건을 모두 자백했으나 피를 마신 것으로 거짓 진술을 했다. 영국 신문은 이와 같은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영국 국민들은 피를 마셨다는 헤이의 주장에 공포에 떨었다.
“얼마나 마셨나?”
“배가 부를 때까지 마셨다.”
“구토를 하지 않았나. 피가 역겨웠을 텐데…?”
“나는 피를 좋아해. 한 번도 구토를 하지 않았어.”
헤이는 거짓 진술을 했다. 인간의 피는 최토성(催吐性)이 있어서 한 컵을 마시면 구토를 하게 되어 있었다. 경찰은 듀란 부인의 사체를 헤이가 황산으로 소실시켰으나 잔재를 찾는데 온갖 노력을 다했다. 헤이는 듀란 부인의 잔재를 건물의 뒤뜰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그 곳을 샅샅이 수색하여 마침내 듀란 부인의 플라스틱 의치와 담석을 찾을 수 있었다. 사체는 없었으나 죄체(罪體)의 증거는 충분했다. 듀란 부인이 다니던 치과병원의 의사는 그 의치가 듀란 부인의 것이라고 증언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헤이가 정상인이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헤이는 오로지 돈 때문에 살인을 했고 사체가 없으면 살인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잘못된 판단 때문에 사람을 죽여서 황산으로 녹여버리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1949년 3월 2일, 희대의 살인마 헤이는 기소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1949년 8월6일에 집행이 되었다.
이 사건은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 헤이가 황산으로 시체를 녹여서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체를 토막 내거나 황산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신질환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시체를 처리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프로파일러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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