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조복성 곤충기
[화제의 신간] 조복성 곤충기
  • 김선영 기자
  • 입력 2011-08-29 17:02
  • 승인 2011.08.29 17:02
  • 호수 904
  • 3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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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땅, 우리 곤충을 다룬 최초의 곤충기
곤충기 하면 누구나 조건반사처럼 떠올리는 인물 파브르. 곤충의 생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파브르를 떠올리고, A에서 Z까지 그에게서 답을 구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단행본 출판시장에는 ‘파브르 곤충기’가 아동용에서 청소년용, 그리고 성인용에 이르기까지 조금씩 외형만 달리한 채 수십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져 답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책은 조복성 박사가 이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곤충들을 한 발 한 발 발품 팔며 채집해 심혈을 기울여 기록한 살아 있는 곤충기이자 명품 자연과학서이다. 이 책이 맨 처음 출간된 지 63년이 자났고(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곤충기』라는 이름으로 발행됨), 조복성 박사가 타계한 지 올해로 꼭 40년째 되는 해이지만 이 책이 지금에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고 그 어떤 과학서에 못지 않게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파브르 곤충기’는 물론 세계 자연과학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걸작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곤충 연구에 있어서 지나치게 파브르를 신봉하다 보니 그로 인한 문제점도 적지 않다. 첫째, 곤충 연구의 다양성과 특수성이 확보되지 못한 채 다소 획일화되고 교조화되는 측면이 있다. 즉, 비슷한 곤충이라도 대륙마다 나라마다 생태와 특성 면에서 뚜렷이, 혹은 미세하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파브르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그런 다양성과 특수성을 간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파브르를 지나치게 신봉하고 의존하다 보면 우리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토박이 곤충들의 생태와 특성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 제작되고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공급되며 전 세계를 휩쓰는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인만의 특수한 정서를 세밀하게 터치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인에게 깊은 정서적 공감을 주고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역시 한국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 영화가 제격인 것이다.

곤충학이나 자연과학의 발전은 고사하고 우리의 국권을 강탈당한 채 생존권마저 심각하게 위협받던 일제 강점기. 조복성 박사는 혈혈단신 백두산과 울릉도를 포함한 한반도의 산과 들을, 그리고 만주, 몽골, 중국 대륙까지 누비며 이 땅의 곤충들을 열정적으로 채집하고 꼼꼼히 기록했다. 그는 한국 곤충학의 시원을 열고 자연과학의 근간을 이룬 ‘한국 곤충학의 뿌리’이자 ‘한국 자연과학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조복성 박사는 자신의 일생을 우리 땅의 곤충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에 온전히 바쳤다. 그는 외국인 학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토종 곤충을 찾아내 모두 6종에 학명을 붙였는데, 조흰뱀눈나비, 조복성박쥐(황금박쥐 또는 붉은박쥐) 등 4종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조복성 박사는 자신의 인생 후반부를 교육자로서 곤충학 분야의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바쳤다. 1963년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곤충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려대학교에 한국곤충연구소도 세웠다. 이를 통해 당시까지 낙후되어 있던 우리의 자연과학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미래자원으로서 곤충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 나갔다. 1971년 임종하기 직전, 그는 자신이 가진 전 재산과 목숨처럼 아끼던 표본, 연구 자료와 서적 등을 장학회와 교내도서관에 기증, 기탁함으로써 후진양성의 뜻을 이어가도록 했다. 또 도봉섭, 석주명, 정태현 등과 함께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해 서적 발행, 강연회와 전람회 개최, 탐사여행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 백성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조선어학회와 함께 토종곤충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찾아 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곤충 이름들의 상당수가 이때 만들어졌다.

조복성을 누구나 한국 곤충학과 자연과학을 태동시킨 아버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땅에서 서식하는

우리 곤충들에 관한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38가지 이야기

이 책에는 인간보다 먼저, 아니 태곳적부터 ‘원자폭탄’을 제조해 사용해 온 방구벌레 이야기, 고대이집트에서 소똥구리가 신성시될 수밖에 없었던 심오한 이유, 인간이 그 어떤 수단으로도 파리를 완전 박멸하는 것이 불가능한 과학적, 통계학적 근거, 모성애가 지나쳐 다른 곤충의 알까지 정성껏 돌보는 못뽑이집게벌레의 웃지 못할 이야기 등 우리 땅에서 서식하는 우리 곤충들에 관한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38가지 이야기가 소개된다. 또 책의 후반부에는 ‘나의 곤충채집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조복성 박사가 이 땅 한반도와 몽골, 만주, 중국 대륙을 누비며 열정적으로 곤충채집하던 날들의 생생한 기록이 당시의 생생한 흑백사진과 함께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곤충의 생태와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에게 주제의 적절함이나 내용의 깊이 면에서 부족함이 없다. 물론 청소년(고등학생)에게도 적극 권장할 만한 책이다. 왜냐하면 1948년에 이 책이 처음 출간될 때 조복성 박사가 쓴 저자서문을 보면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집필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곤충기이면서 동시에 본격 청소년 과학서이기도 한 것이다.

[김선영 기자] ahae@dailypot.co.kr

김선영 기자 ahae@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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