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스캔들’과 보내는 여름 휴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세계사를 뒤바꾼 정치 스캔들과 섹스 스캔들, 그리고 금융 스캔들을 다룬 ‘역사를 비틀어버린 세기의 스캔들’이 출간됐다. 저자에 따르면 스캔들이란 마치 극장처럼, ‘주인공’, ‘사건’, ‘관객’이라는 3요소를 갖춘 하나의 ‘희극’이다. 스캔들은 사회적으로 높이 오른 사람이 떨어질수록 더 흥미를 일으키는데, 주로 왕과 권력자,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그런데 어떤 스캔들은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어떤 스캔들은 케네디 가의 막내아들처럼 역사의 흐름마저 바꿔놓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케네디 가의 막내아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코페크니라는 여인과 함께 1968년 여름, 채퍼퀴딕 섬에서 파티를 하고 수영을 즐겼다.
그리고는 밤늦게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그만 바다에 빠져버렸다.
에드워드 의원은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동승했던 코페크니는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여자가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불륜이 들통날까봐 혼자서 항구까지 헤엄쳐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아침까지 잠들어버렸다. 사고 후 여덟 시간 이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1963년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1968년 케네디 가문에서 두 번째로 대통령에 입후보한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당한 후, 케네디 가는 최후의 희망을 아홉 명의 자녀 중 막내인 에드워드 케네디에게 걸고 있었다.
당시 미국도 고인이 된 케네디에 매료되어 있던 터라 전 국민적으로 어떻게든 케네디 가에서 두 번째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 스캔들은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어버렸다.
재판을 거쳐 에드워드 케네디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상원의원에 재선되었지만, 사람들은 채퍼퀴딕 사건을 잊지 못했다. 여성을 익사시키고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케네디 가 출신의 상원의원이라는 권위 때문에 처벌을 면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결국 그는 두 번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케네디 가의 숙원은 영영 멀어지고 말았다. 국민과 가문의 지지를 받던 인물이 스스로를 세상에서 격리시킨 셈이었다.
훗날 이 사건은 대통령 후보자의 처신의 중요성을 일깨운 정치 스캔들로 기록되었다.
그렇다면 스캔들은 역사적으로 무엇을 시사하는가.
책에 따르면 도덕이 심하게 흔들리는 시대일수록 스캔들이 격발했다. 로마 사회를 갉아먹었던 황제 칼리굴라와 네로의 광기, 잔 다르크에 대한 파리 대학 교수들의 음모와 사형 재판, 드레퓌스의 군사 기밀 유출 사건, 프랑스 혁명의 전조가 된 마리 앙투와네트의 목걸이 스캔들, 메이저리그 화이트삭스의 승부조작 사건, 미국 재벌의 대명사 록펠러의 정사 사건,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 등은 그 사회와 시대의 가치관이 얼마나 휘청거리고 있었는지 잘 말해준다.
스캔들이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웠다고 해서 사회가 즉각 온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스캔들은 언제고 틈만 있으면 솟아날 것처럼 인간의 본성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저자는 개인적 자유가 커지면 아이러니하게도 공공성은 상실된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도덕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스캔들의 파도가 밀려온다는 것이다.
욕설이나 소문의 오물이 뿌려지고, 아름다운 것, 순수한 것, 옳은 것이 끌려 내려간다. 우상이 파괴되고, 도덕과 양식은 자취를 감춘다. 역사가 이상과는 멀어져가며 비틀린다는 것이다.
스트로스 칸 IMF 전 총재의 성추행으로 지구 반대편 프랑스인들의 가치관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탈 행위들 역시 스캔들로 보기에 손색이 없어 보인다. 저축은행발 금융 스캔들과 프로선수들의 승부조작, 군의 불량무기 납품비리 등, 그저 바라보며 웃어넘기기에는 사회적 파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현대는 정보가 대중에게 공개된다. 하지만 완전히 투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으로 이중화되고,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질 정도로 비밀도 커진다.
대중화는 일반화이지만 또 차별화이기도 하다. 차별화는 정보의 뒤, 즉 비밀을 알고 있는가의 여부로 이루어진다. 저널리즘은 특종으로 정보의 차별화를 잰다. 나만 알고 있다는 인상으로 뉴스의 수신자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스캔들은 세계적인 규모가 되었다. 할리우드의 영화 스타가 유명인으로서 스캔들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이어서 패션, 대중음악, 스포츠 등도 새로운 장르로서 스캔들의 주인공을 낳는다.
시각화, 복제화가 20세기 문화의 커다란 특징이 된다. 그것에 의해 대중문화가 꽃피고 스캔들 역시 일종의 대중문화로서 성립한다.
인터넷은 스캔들에 가장 적합한 미디어가 되었다. 모든 세계를 연결할 뿐만 아니라 정보가 상호적이 된다.
수신자는 받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보내고 써넣을 수 있어 정보 게임에 참가할 수 있다. 누구나 근거 없는 소문을 적어 넣거나 욕설이나 중상을 하는 공격에 가담할 수 있다. 스캔들은 일찍이 역사의 난외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역사와 스캔들의 경계가 무너졌다. 오늘날 스캔들은 역사와 더불어 춤판을 벌이다가 마침내는 역사를 비틀어버리는 결과를 부르곤 한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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