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위로의 레시피
화제의 신간 위로의 레시피
  •  기자
  • 입력 2011-06-14 13:00
  • 승인 2011.06.14 13:00
  • 호수 893
  • 3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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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추억의 한 그릇
세상과 삶에 대한 따뜻함이 묻어나는 특유의 감성적인 글을 선보여온 황경신이 이번에는 음식과 요리를 주제로 울림 깊은 에세이집을 내놓았다.

유년 시절부터 학창 시절, 그리고 현재까지 39가지의 음식과 요리에 얽힌 여러 추억이 접시 가득 맛있게 펼쳐진다.

거기에 사랑스러운 고양이 캐릭터 ‘스노우캣’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권윤주가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일러스트를 그려 음식의 맛을 한층 돋운다.

황경신과 스노우캣의 특별한 만남으로 만들어진 ‘위로의 레시피’는 손에 잡힐 듯 말 듯 아련한 옛 시절의 기억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국밥 한 그릇에 툭 떨어지던 눈물,
누구나 가슴에 품고 있는 추억의 한 그릇

“황경신이 요리책을 쓴다고?” 하면, “밥이나 할 줄 알면 다행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 대표로 ‘가사실습대회’에 나간 적이 있고, 회사 초년병 시절엔 요리 책 서른다섯 권을 만들며 서른다섯 곱하기 서른 가지 요리, 즉 일천오십 가지 요리를 코앞에서 목격한 쟁쟁한 경험의 소유자다.

게다가 석류 한 알에서 문득 영감이 떠올라 담그기 시작한 물김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고, 유학을 온 서울에서 처음 접한 삼겹살 맛에 반해 그 유명하다는 삼겹살집을 모조리 섭렵, 궁극의 소스 비밀을 기어코 캐내고야 만 집념의 맛집 종결자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그녀가 왜 이런 책을 쓰게 됐을까 하는 의문은 자동적으로 풀린다. 그녀의 마법 같은 요리 비결은 그림을 그린 스노우캣이 직접 경험한 바 있다. 스노우캣이 열심히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던 중 문득 읽은 ‘명란젓 스파게티’의 한 줄짜리 레시피는‘꼭 해먹고 말리라’라는 결심으로 이어졌고, 당장 인터넷으로 명란젓을 주문, 그다음 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이 스파게티는 그 유명한 스노우캣 블로그(snowcat,co.kr)에 올라와 있으니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정말 요리책인가 하면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아니라 ‘사랑했던’ 여인이듯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도 내가 ‘언젠가 먹었던’ 것이다. 하니, 그 맛있는 음식을 얘기하려면 오만가지 추억과 상념과 웃음과 눈물이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 나올 수밖에 없다.


아주 슬픈 날, 눈물을 펑펑 흘리고 난 후,
누군가 잡아준 따뜻한 손길 같은 글

가난한 대학 시절 서로 먼저 먹으려고 활극을 벌이던 노란 달걀말이 한 접시, 기숙사에서 밤 12시만 되면 어디선가 피어오르던 라면의 향기, 손님들 밥 먹이느라 늘 자리를 비우던 정겨운 단골집의 주인언니, 어린 시절 아빠 무릎에 앉아 참새처럼 받아먹었던 지상 최고의 과메기, 고래고래 노래 부르지 않으면 술이 넘어가지 않았던 그 시절에 먹었던 고갈비 한 점, 연인과 헤어지고 먹먹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할 때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갔던 작은 밥집…….

그녀가 꺼내놓는 이야기들은 달고 시고 짜고 쓴 음식들의 다양한 맛과 향처럼 몸의 모든 감각을 자극하며 우리의 가슴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읽다보면 문득 그녀의 추억이 아닌 나의 추억 속을 항해하게 되고, 밤 12시가 가까워졌는데도 책에 나온 물국수 한 그릇을 말아먹고 싶어진다.

그리고 무엇 하나 새로울 것 없는 일상에서 그래도 삶은 아름다웠어, 하며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된다.

어느 것은 익숙하고 어느 것은 낯선, 이 갖가지 음식에 황경신은 참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매일매일 아무 생각 없이 무미한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자신을 볼 때, 그 헛헛함을 지울 수 없을 때 어쩌면 당신은 한 그릇의 음식에서 큰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제목이 보여주듯, 쓰라린 사랑에 지치고 팍팍한 일상에 힘겨워하는 당신에게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따뜻한 손길이 되어줄 것이다.


[책 속에서]
꺼내놓기도 힘든 괴로운 일로 인해 마음을 다친 이의 손을 잡고 밥집으로 가는 사람.
눈물을 지켜주고 고통을 가져가는 사람. 세계의 끝에서 유일하게 편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
당신이 그런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을 때, 당신에게 달려가 당신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다.
내가 너의 밥이야, 라고.
- 「나는 너의 밥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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