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시네필 다이어리2 (지은이 정여울/ 출판사 자음과 모음)
[화제의 신간] 시네필 다이어리2 (지은이 정여울/ 출판사 자음과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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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1-03 13:47
  • 승인 2011.01.03 13:47
  • 호수 871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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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읽는 철학
평론가 정여울씨가 전작 <시네필 다이어리>에 대한 독자들의 열띤 호응에 힘 입어 <시네필 다이어리2>를 펴냈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철학으로의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전작과 마찬가지로 두번째 이야기에서도 독자들을 영화를 통해 철학의 세계로 인도한다. 본 아이덴티티, 매트릭스, 슈렉, 아바타, 의형제, 타인의 삶,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이 8편의 영화를 통해 가장 실용적인 철학의 조언을 들려주고 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가 없을 때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있었다. 꼭 연락해야 하는 곳의 전화번호 정도는 자연스럽게 외웠고 스스로에게 중요한 대부분의 정보는 ‘몸 바깥의 기계’가 아니라 ‘마음 속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었다. 명인과 명창의 기술을, 장인의 노하우를 ‘메모리칩’으로 전수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의 기예는 오직 그들의 몸 안에 있고 그들로부터 배우는 길은 오직 ‘몸’과 ‘말’을 통한 직접적인 소통뿐이다. 우리는 ‘기록의 기술’을 얻는 대신 ‘구전의 지혜’를, 몸으로 기억하는 아날로그적 정보처리 기술을 잃어버렸다. 지금 우리는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순간, 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날아가는 순간 패닉상태에 빠진다. 나보다 나를 더 잘 기억하는 영혼의 분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바타
‘진보 자처하는 문명의 어둠’

‘아바타’에 등장하는 과학자와 엔지니어, 군인들은 ‘문자 없는 부족’인 나비족의 정보처리 능력을 불신한다. 언옵타늄이라는 위대한 광물질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절대로 지구인과 협상하지 않으려는 나비족의 ‘어리석은’ 선택에 코웃음을 친다. 문자가 없기에 열등하고, 열등하기 때문에 대등한 협상이 불가능하며, 그들에게서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서는 어떤 폭력도 정당화되며, 그런 야만인들은 얼마든지 학살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원시문명에서 ‘그들과 우리의 다름’이 아니라 ‘그들과 우리의 같음’을 찾으려고 했던 레비스토로스의 태도는 바로 진보를 자처하는 문명의 어둠, 문명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야만의 잔혹성을 응시하는 것이었다.


슈렉
‘디즈니 사상 초유의 캐릭터’

피오나의 머릿속에는 동화적 환상이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다. 자신을 구하러 오는 기사는 완벽한 외모와 용감한 심성을 지닌 왕자님이어야 하고, 왕자님은 자신을 구하기 전에 미리 용을 무찔러야 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기사님은 투구를 벗어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도 않고, 자신에게 아름다운 시를 낭송해주며 로맨틱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도 않는다. 게다가 백마 탄 왕자님은커녕 우리의 귀하신 공주님을 몸소 두 발로 뛰어다니게 만드는 얼굴 없는 기사님이라니. 왜 동화 속 이야기처럼 멋진 라이프스토리가 펼쳐지지 않는 걸까, 피오나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슈렉’은 디즈니 월드가 추방한 아브젝트의 부분적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슈렉은 ‘미녀와 야수’의 ‘야수’처럼 다시 ‘왕자’로 돌아갈 희망이 전혀 없다. 슈렉은 괴물인 채로, 흉측한채로 여전히 매력적이고 사랑스럽다. 슈렉은 백인도 아니며 왕자도 아니고 꽃미남도 아닌, 그야말로 디즈니 주인공 같은 구석이 조금도 없는 사상 초유의 캐릭터였던 것이다.


의형제
‘주인공 대한 무조건적 흠모’

감독의 시선은 인물의 내면과 외면을 비추는 마음속 카메라의 완급을 조절한다. 망원경의 시선으로 송지원을 비출 때 그는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는 유능한 ‘공작원’으로 보이지만 돋보기의 시선으로 그의 차가운 얼굴을 확대해보면 고뇌와 절망과 신념이 교차하는 그의 우수어린 표정이 드러난다. 현미경의 시선으로 그를 비추면 그의 행동을 결정하는 변수들이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당’의 입장에서는 유능한 인재지만 다른 사람에게 아주 사소한 상처조차 주기 싫어하는 세심한 성격이기에 ‘그림자’처럼 냉혹한 킬러가 될 수 없다. 여기에 ‘이한규의 시선’이 더해진다. 이한규의 시선 또한 크게 세 가지로 분리된다. 남파 공작원 송지원을 바라보는 직업적 시선과 아내와 딸을 두고 떠나온 한 남자를 바라보는 인간적 시선. 그리고 자신과 동거하는 룸메이트를 바라보는,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없는 서로에게 이제는 가장 가까운 ‘측근’이 되어버린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제3의 시선.

이렇듯 한 인물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토록 다양한 감성의 렌즈가 필요하지 않을까. 송지원이 스스로가 처한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면 아래에서 수면 밖을 바라보는 잠망경의 시선이 필요할 것이다. 바흐친은 작가가 주인공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는 단지 주인공에게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을 ‘있는 그대로’ 흠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략) 어느새 작품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존재가 된 주인공에 대한 무조건적인 흠모야말로 작가가 주인공을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위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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