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기업가의 탄생 (지은이 김태형/위즈덤하우스)
화제의 신간 기업가의 탄생 (지은이 김태형/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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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12-21 11:29
  • 승인 2010.12.21 11:29
  • 호수 869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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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창업자 이병철, 현대 창업자 정주영, 세계 재계랭킹 500위 안에까지 올랐다 침몰한 대우 김우중. 이들은 대한민국 재계의 신화적인 인물로 꼽힌다. 위즈덤하우스에서 펴낸 ‘기업가의 탄생’은 이 세 사람의 인생과 속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다. 성장환경과 가족관계를 비롯해 심리까지 짚어보고 이 요소들이 기업경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등을 엮은 이 책의 내용 일부를 발췌해 살펴 본다.

끝없는 방황이 거듭되던 어느 날, 이병철은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날도 골패노름을 하다가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왔다. 밝은 달빛이 창 너머로 방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나이 26세,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달빛을 안고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심정이 되었다.”


사업 선택은 일종의 타협책

그날 이병철은 밤을 꼬박 새우면서 ‘사업’을 하겠다는 결심을 다진다. 그가 사업을 선택한 것은 일종의 타협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선택 가능했던 여러 진로를 나열하면서 ‘독립운동’을 맨 앞에 놓은 것이나 ‘독립을 위해서 투쟁에 투신하는 것 못지않게’라는 표현 등으로 미루어보면 그가 여전히 독립운동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고민과 방황의 원인을 단순하게 정리하자면 ‘독립운동을 해야 마땅한데, 그것을 할 자신이 없다’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운동은 안 되겠고, 식민지하의 관리생활이란 더더욱 안 되겠고, 그렇다고 나이만 축내면서 계속 놀 수도 없고…. 결국 이병철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타협책으로 사업을 선택했다.


결정적 역할한 비비기 능력

인생과 사업의 고비 고비마다 정주영의 강력한 비비기 능력은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정주영은 “우리가 뒤떨어져 있는 분야라고 주저한다든지, 미지의 분야라고 두려워한다든지, 힘들다고 피한다든지 하는 것은 패배주의다”라고 외쳤는데 아버지한테 아낌없이 지지받으며 자란 아들, 그래서 세상이 자신을 수용할 거라고 굳게 믿는 아들은 이렇게 패기만만한 법이다.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지지는 또한 정주영에게 웬만한 비난에는 눈썹 하나 까딱 않는 든든한 뱃심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는 새로운 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예외 없이 ‘무모한 미친 짓’이라는 매도를 당했고 사회 각계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반대, 그리고 조소를 받았다. 예를 들면 1953년에 시작한 고령교 공사에서 막대한 적자를 내자 ‘소학교밖에 안 나온 그 학력으로 인플레가 무엇인지나 알겠느냐’는 비난을 받았고, 1967년 소양감댐 건설에 참여하면서는 일본이 설계했던 콘크리트 중력댐을 사력댐 방식으로 바꿔야한다고 주장했다가 정부 관리들한테 욕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무수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주영은 끄떡도 하지 않고 완강하게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안 된다고 보는 사람이 많을수록 기어코 해내고 말겠다는 결심은 더 굳세지고, 따라서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더더욱 치열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소년시절 생존전략에 집착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이 방천시장의 신문판매 전략은 훗날의 기업가 김우중의 사업전략과 극히 유사하다. 그는 신문을 가장 먼저 팔아 방천시장을 석권했듯이 경쟁사보다 더 빨리 달려감으로써 신흥시장을 독점하려는 전략을 추구했다. 또한 판매량과 속도를 높이기 위해 신문을 외상으로 주었던 것처럼 외상판매를 통해 매출을 확장시키는 전략도 즐겨 사용했다. 이런 유사성으로 인해 김우중은 방천시장에서 사용했던 ‘바로 그 노하우로 대우의 32년을 지탱’해왔다거나 ‘더 빨리 먼저 뛰고 일하는’ 소년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방천시장에서의 판매 전략이 훗날 기업가 김우중의 사업전략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진짜로 궁금한 건 김우중이 무엇 때문에 그 ‘소년시절의 생존전략’에 그다지도 집착하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그에 대한 해답의 일부분은 다음과 같은 그의 말에 담겨있다.

“집에는 어머니와 두 명의 어린 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를 공치면 네 식구가 밥을 굶는다는 절실함이 10킬로미터가 넘는 먼 거리를 뛰어다니게 만들었다.”

신문을 받아들고 방천시장을 향해 달음박질쳤던 소년 김우중의 마음과 상품을 팔기 위해 세계시장을 향해 뛰어가던 기업가 김우중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같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소년 김우중을 달리게 만들었던 것은 식구들이 굶는 장면이었던 반면 어른 김우중을 달리게 만든 것은 대우의 직원들 혹은 국민들이 굶는 장면으로 서로 달랐지만 ‘내가 뛰지 않으면 내가 책임진 사람들이 굶는다’는 절박함만은 동일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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