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
화제의 신간-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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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11-30 11:17
  • 승인 2010.11.30 11:17
  • 호수 866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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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역전의 발판으로…뚝심의 현정은 회장
정몽헌 회장 타계 이후 지난 7년간 현대그룹을 이끌어 온 현정은 회장 앞에는 수많은 악재와 위기가 산재했었다. 현 회장은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경영권 위협에서부터 현대건설 인수건까지 위기의 순간마다 특유의 뚝심으로 맞서 현대그룹을 지켰다. 더구나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선정되는 등 글로벌 경영자로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현 회장은 재벌가 며느리의 삶을 뒤로한 채 치열한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어 현대그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현 회장의 도전과 역경을 다룬 책 ‘이기지 못할 도전은 없다’를 통해 현 회장 특유의 배짱과 뚝심을 들여다봤다.


날벼락 같은 남편의 비보

“믿겨지지 않았다.”

2003년 8월 4일 새벽. 그룹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훗날 지인에게 “처음엔 애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가족들에게 정몽헌 회장의 갑작스러운 투신은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중략) 현대그룹은 대북송금, 정치권 비자금 등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설상가상으로 정몽헌 회장이 “대북 사업을 강력히 추진해 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타계했다. 이후 현대그룹의 운명은 한 치 앞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은 “온갖 난제가 산적한 현대그룹을 과연 누가 이끌 것인가”에 쏠렸다. 정몽헌 회장은 부인과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었다. 당시 큰딸 지이 양은 26세, 작은딸 영이 양은 19세, 외아들 영선 군은 고등학교 3학년으로 그룹을 맡기에는 모두 너무 어렸다. 그래서 현대가 정씨 집안에서 나선다느니, 새로운 전문 경영인을 영입할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소문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그룹의 방향키를 넘겨받은 사람은 바로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었다.


사면초가에 처한 현 회장

당시 현 회장의 상황은 그야말로 사면초가였다. 숙부의 갑작스러운 인수 발표 후 현 회장은 현대가 집안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모두가 “비즈니스가 얽혀 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냉정한 말만 돌아왔다. (중략) 현 회장은 숙부의 갑작스러운 지분 매입 이후 다급한 나머지 정몽구 회장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어 지원과 조언을 구했다. 하지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심정적으로 도와주고 싶지만 현대자동차 기업 내에 현안이 많아 도와주기 힘들다’는 이야기만 들어야 했다. (중략) 하는 수 없이 현 회장은 숙부가 너무 속상해 조언도 얻을 겸 정몽준 의원에게 전화했다. 하지만 정몽준 의원의 대답은 현 회장을 더욱 힘 빠지게 했다.

“작은아버지나 형수 가운데 어느 한쪽을 편들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전면에 나설 입장이 아닙니다. 가족 싸움으로 비쳐지지 않게 조용히 계십시오.”


공식석상서 눈물 보인 적 없어

현 회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는데 바로 ‘눈물’에 관한 내용이다.

그녀는 남편이 사망한 후 한 번도 공식석상에서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빈소에서 경황없이 조문객을 맞으면서도, 장례식에서도, 삼우제와 49제에서도 그녀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사진기자들이 망원렌즈까지 들고 쫓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포착할 수 없었다. 그러자 한 기자가 물었다.

“원래 강한 겁니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겁니까?”

“저는 남 있는 데서 잘 못 울어요. 혼자 있을 때면 모를까….”

“그게 마음대로 컨트롤이 됩니까?”

“아이가 셋인데 제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뭐 그런 경각심도 생겨서 마음이 강해진 것 같아요.”


가슴 벅찬 백두산 관광 시작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차 남북정상회담 직후인 2000년 6월 28일. 평양을 방문한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에게 김 위원장이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금강산 구경 실컷 했으니 이제 백두산 구경도 하셔야지요…. 개성의 박연폭포와 묘향산도 보시고 칠보산까지 구경시켜 드릴 테니 북한의 금수강산을 죄다 보고 가시라요.”

하지만 당시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정몽헌 회장의 타계, 2006년 북핵 사태로 인해 혼란스러운 상황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백두산 관광에 대해 김 위원장이 먼저 화두를 꺼내자, 현 회장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남편이 못 이룬 약속을 7년 만에 이루게 되는 것이었다.

이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의 언질은 날개를 달고 현 회장의 두 번째 방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후 현 회장과 큰딸 정지이 전무는 평양을 방문해서 금강산 비로봉 관광과 개성 관광에 대해 북한과 합의서를 체결했다. 또한 현 회장 모녀는 김 위원장이 내준 특별기를 타고 백두산을 참관하였다. 그리고 백두산 관광 사업권을 갖고, 백두산 관광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

백두산에서 흰 눈을 맞으며 현 회장은 생각했다.

“아… 시아버지와 남편이 못 이룬 백두산 관광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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