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풀어놓다

‘아트북스’에서 펴낸 ‘어쩌면 그림 같은 이야기’는 그림 속에 담긴 화가들의 사적인 이야기와 생활 속에 존재하는 예술에 대해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 수전 브릴랜드의 12년간에 걸친 철저한 조사자료를 토대 위에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이 보태져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책 속의 총 17편 소설들은 그림만큼이나 다채롭고 생동감이 넘친다. 이 책을 통해 화가들의 삶은 물론 우리들의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술의 의미도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르누아르, 물뿌리개 든 소녀
“클레르 고모가 나무에 물주는 걸 거드는 건 어떨까?” 엘리즈가 물어보더니 그 애에게 작은 양철 물뿌리개를 가져다주었다. 물뿌리개를 받아들자 미미의 가슴이 꼬마 하사관처럼 부풀어 올랐다. 미미는 푸른 부츠를 적시지 않으려고 발을 뒤로 빼면서 물뿌리개를 톡톡 쳐 아이리스에 물을 주었다. 그리고 줄을 타고 오른 스위트피와 데이지 덤불에 물을 뿌렸다. 그는 미미가 분홍빛, 초록빛, 황금빛, 라벤더 빛, 짙은 자줏빛을 배경으로 있는 걸 보았다. 잿빛은 없었다.
미미는 기쁨에 차서 알리숨 너머에 있는 풍성하게 피어난 들장미에 물을 뿌렸다. 물방울은 어린 장미봉오리를 촉촉하게 적셨는데, 꼭 아물린 연자줏빛 꽃봉오리는, 그 기적의 순간 그가 처음 본 엘리즈의 유두만큼이나 약속으로 충만했다.
마네, 올랭피아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그녀는 벌거벗었다. 그녀의 팽팽한 작은 몸은 놀랍고 아름다우며, 입은 것이라고는 목에 두른 가느다란 검은 벨벳 리본과 우아한 공단 슬리퍼가 전부다.
「올랭피아」, 긴 의자 위에 늘어진 채로 꽃다발을 받아 들며 신사 고객을 냉정하게 감정하는 창부. “그녀는 너무 오만해서 다른 어떤 이름도 허용 못 해. 거기다가, 에두아르가 그녀에게 붙인 이름이 마음에 들거든. 올랭프, 시내에서 어떤 창부들이 쓰는 가명과 비슷하잖아. 그건 빅토린 뫼랑이야, 너도 알겠지만.” 캔버스로부터 곧장 쏟아져 나오는 그녀의 똑바른 응시는 표면상으로는 자신의 남성 고객을 향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말없이 대항하고 있었다.
프랑스인들은 이런 태도를 취하는 데 빼어났는데, 그녀는 그런 뻔뻔함이 부러웠다. 그녀의 네덜란드 사람다운 공손함은 평화를 유지했지만, 그게 다였다. 그 사이 「올랭피아」는 그 철면피 같은 뻔뻔함으로 그녀의 결혼생활의 매일매일을 조롱했다.
라파엘로, 갈라테아의 승리
그는 그들에게 벌거벗은 여자가 돌고래들이 끄는 조개껍질을 타고 있는 프레스코화를 보여주었다. 바다에서 온 남자 하나가 다른 벌거벗은 여자를 부여잡고 있었으며, 바다생물들이 하늘의 큐피드들 아래에서 사랑 노름을 하고 있었다. “이제야말로, 이건 좀 예술 같네.” 베르나르도가 눈을 자기 배만큼이나 동그랗게 뜨고 웅얼거렸다. 살바토레는 베르나르도의 배를 슬쩍 질렀다. “저 여자 거시기 좀 보라고.” 베르나르도는 살바토레의 손을 찰싹 때렸다. “알아, 알아. 나도 안다고. 날 뭘로 생각하는 거야? 얼뜨기라도 된다고?” “라파엘로가 이걸 그렸지.” 관리인은 말했다. “저 여자는 갈라테아야.” “네, 알고 있습죠.” 살바토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지만 갈라테아라니…. 사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피카소, 우는 여인
나는 스프링쿨러를 담쟁이에서 잔디로 돌려놓고는 거대한 책을 들고 해먹에 자리를 잡았다. 피카소. 그 이름에 피콜로가 떠올랐다. 책은 사람들을 그린 그림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멀쩡한 얼굴이 아니라 모두 잡아 늘려져 있었고, 다시 배열되어 있었다. 107페이지에는 미친 여자의 그림이 있었다. 그녀는 푸른 꽃이 달린 구겨진 붉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꽃잎 같은 귀 뒤로 밧줄 같은 자줏빛과 초록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인동덩굴 꽃봉오리가 줄기에 달려 있는 부분 같은 밝은 노란색과 연두색으로 반짝였다. 게다가 코는 구부러져 있었으며 큼직한 입은 여러 각도로 뒤틀려 있었다. 손가락들은 이빨을 그러잡고 있었다. 그녀는 폭발하려는 것 같았다. 그림 밑에 이렇게 인쇄되어 있었다. 「우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1937년. 그녀의 입을 보니 해스킨 아주머니가 떠올랐다. 그것을 집에 가져가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할아버지가 해스킨 아주머니를 좋아하지 않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그림들은 이런 게 전혀 아니었다. 그는 시골이나 산처럼, 세상을 거스르지 않는 것들만 그렸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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