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신간 5%의 기적
화제의 신간 5%의 기적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11-08 14:19
  • 승인 2010.11.08 14:19
  • 호수 863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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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밝은 햇살을…”
개그맨 그룹 ‘틴틴파이브’로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은 이동우는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2003년 겨울, 망막색소변성증(RP) 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았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그는 시력을 거의 잃어 정상인의 5% 정도 밖에 볼 수 없다. 시련은 계속됐다. 아내가 뇌종양 판정을 받고 수술 후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은 것. 하지만 이들 부부는 예쁜 딸 ‘지우’를 갖게 되며 희망을 꿈꾸게 됐다. 결국 그는 가족들의 사랑과 지원으로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공개하고 용기 있게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이동우 자신이 쓴 책 ‘5%의 기적’(생각의 나무 출판)은 눈으로 잘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된 그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그의 인생에 있어 갈림길이 된 순간들을 책에서 발췌해 소개한다.

실명, 암전이 된 것처럼 정적이 흘렀다. 의사가 고르던 단어는 ‘실명’이었다. 덜 고통스러우면서도 더 희망적인 단어를 찾고 싶었을까. 내 옆을 지키던 아내가 소리 없이 흐느꼈다. 나는 슬픈지도 몰랐다. ‘왜’라는 단어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원인이 뭔지 알아야 했다.


청천병력과도 같은 망막색소변성증

“이유는 없습니다. 아직까지 의학계에서 밝혀진 게 없습니다” 실명이라는 엄청난 재앙을 던져놓고 망막색소변성증의 발병 원인을 모른다니 황당했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오는 것 외엔 하고픈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여전히 따가운 햇살에 “오늘 왜 이렇게 눈이 부셔?”라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밝은 햇살을 이제 못 느끼게 되는 건가?’ 생각하니 슬픔이 차올랐다.

“일단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마”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가족은 물론이고 그 어떤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퉁퉁 부은 눈으로 나를 살피던 아내를 뒤로하고, 책상에 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분노인지 슬픔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온갖 감정이 뒤엉킨 채 나를 뒤흔들었다. 눈이 짓무르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울고 또 울었다.


뒤이어 찾아온 시련, 아내의 뇌종양

“아내 분이 나오시면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동우씨, 뇌종양 수술은 1차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서 무조건 하는 겁니다.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지만 뇌종양 수술은 분명히 후유증이 있습니다. 청각을 잃게 되는 건 당연하고 반신불수가 될 확률이 90% 이상입니다.”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정말 죽으라, 죽으라 하는구나 싶어 다리 힘이 풀렸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다. 아내처럼 나도 씩씩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씩씩함은 고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힘들었다. 주저앉아 목 놓아 울고도 싶었는데 여기는 병원이었다.

“나 깜빡 잠든 거 있지. 정말 못 말린다니까” 정말 못 말리는 나의 아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챘다. 곧 자신의 병명과 수술이 시급하다는 원장의 소견을 듣고 오열했다. 참았던 눈물이 터진 봇물처럼 내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온 몸이 텅 빈 것 같았다. (중략) 나는 죽고 싶었다. 이 젊은 여자의 삶이 측은하다는 생각은 뒷전이었다. 그냥 삶 자체가 너무나 싫었다. 망막색소변성증으로 판명되고 나서 이혼을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조차도 사치였다. 이혼은 삶 속에서나 가능한 선택이었다. 내게는 죽음 외엔 그 어떤 선택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빠 눈이 아파서 나는 정말 슬퍼”

한 번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내려놓더니 갑자기 시무룩하게 앉아 있기에 뭘 하고 있는지 지켜보았다. 조금 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만져보니 눈물이 흥건했다.

“지우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혹시 유치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던 건가 싶어 놀라서 물으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빠 눈 때문에 슬퍼. 아빠 눈이 아파서 나는 정말 슬퍼. 그래서 우는 거야.”(중략)

정말로 눈앞이 캄캄했다. 지우가 내 눈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은 처음이었다. 아마도 어른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지우를 겨우 진정시키고 나니 이번에는 내가 울고 싶어졌다. 지우에게 나는 항상 아픈 사람이었다. 아직은 어려서 구체적인 건 모르고 그냥 ‘사랑하는 아빠가 아프다’는 정도만 아는 채 그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슬퍼서 울게 되는 것 같았다. 간혹은 밥을 먹다가 슬픔에 겨워서 눈물을 흘렸다.


사랑때문에 살아났느냐고?
아내로 인해 시작된 인생 2막

요즘도 나는 오직 죽고 싶었던 그때를 종종 떠올린다. 정말이지 나는 뒤통수치는 농담 같은 삶에 좀체 웃을 수 없었다. 죽기 살기로 대들었다가 힘이 쏘옥 빠져 그냥 죽고만 싶었다. 죽음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랬다. 만약 아내가 없었다면 또 내가 없었다면 나도 아내도 진짜 죽었을 것이다.

사랑 때문에 살아났느냐고? 위대한 사랑의 힘이 시련을 추억으로 만들었느냐고? 글쎄,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내가 있기에 내가 살기로 결심한 것이고, 내가 있기에 아내가 산 것이다. 나는 큰 소리로 외친다. 지금 여기, 나 이동우와 내 아내 김은숙은 살아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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