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녀를 벗겼다

‘한국 영화는 김지미가 출연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김지미는 7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하며 한 시대를 풍미해 온 여배우다. 원로영화평론가 김종원씨를 비롯한 4명의 영화전문가들이 집필한 ‘스타, 배우, 그리고 김지미’는 김지미의 영화 인생과 개인사를 깊게 들여다보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김지미가 출연한 영화를 보며 울고 웃었던 이들의 향수를 자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지미는 과연 누구인가. 책 속에서 그녀를 만나본다.
한국의 멜로드라마치고 그의 얼굴이 비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이 나라 영화계의 인기를 모아왔던 톱스타 김지미와 최무룡은 1962년 10월 31일 밤 간통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어 서울교도소에 수감됐다.
최대 위기는 간통혐의 구속
김지미-최무룡 간통사건은 앞서 간통으로 파문을 일으킨 인기 여배우 조미령 경우와는 달리 그들이 남편을 가진, 그리고 아내를 가진 가정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세인들에게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영화인협회는 “양인에게 야기되어온 문제들을 개인 문제로 보고 공식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었으나…전체 영화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이들에 대해 1년 동안 영화 출연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김지미에게 있어 최대의 위기 순간이었다.
하지만 돌파구는 의외의 곳에서 열렸다. 당시 충무로의 톱스타 의존도는 심각한 지경이었다. 두 사람이 선불을 받고 출연을 계약한 영화는 전속으로 있던 한양영화공사의 작품들을 포함해 모두 12편이나 됐다. 때문에 영화사들로서는 그들의 구속이 연장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에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영협’이 최무룡, 김지미에게 내린 1년간 영화 출연 정지처분은 부당한 처사”라는 성명을 발표한다.
결국 김지미-최무룡 간통사건은 김지미가 최무룡의 처 강효실에게 위자료로 “248만 원을 대신 준다는 조건’으로 고소 취하되었고 그들은 1주일 휴식을 취하고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당시 팬들의 비난은 여전히 거셌으나 최무룡의 전처에 대한 위자료를 직접 부담하는 등 최무룡과의 결혼을 성취하기 위해 보여주었던 김지미의 의지는 그녀를 ‘낭만적 사랑의 표상’과도 같은 존재로 만들기도 했다.
최무룡과는 빚 때문에 결별
영원할 줄 알았던 김지미의 인기 가도는 1968년을 전후해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 이른바 ‘여배우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남정임, 문희, 윤정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이즈음 곡절 많았던 김지미- 최무룡 부부의 이혼설이 영화가의 심심찮은 가십이 되어 흘러 다녔다. 최무룡은 “전혀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극구 부인했지만 1969년 근 반년 남짓 전부터 끈덕지게 나돌았던 이들의 이혼설은 기정사실이 된다. 최무룡의 “사업 실패로 말미암은 부채의 부담을 더 이상 김지미에게 지움으로써 톱스타로서의 그녀의 앞날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 끝에 이혼을 결정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연하 나훈아와도 파경
1976년 7월 9일, 김지미는 당시 최고의 인기 가수이던 나훈아와의 결혼을 발표하면서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이 된다. 이들의 결혼 발표만큼 사회와 연예계에 충격을 준 사건은 없었다. 당시 팬들과 언론의 반응은 비난 일색이었고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이들의 결혼이 ‘돈과 육체와 섹스로 합성된’ 것이며 ‘연예인의 부도덕의 대표 케이스’로 표현되기까지 했다. 특히 그녀의 세 번째 결혼 대상이 연하의 남성이었다는 점이 비난을 더욱 폭팔적인 것으로 만들었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김지미 출연영화 거부운동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김지미는 “말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김지미 인생은 다른 사람이 아닌 김지미가 사는 것이다”라며 “자신을 김명자(김지미의 본명)로 돌아가 적당한 시기에 은퇴할 생각”이라는 속내를 밝혔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말대로 한동안 대전으로 내려가 남편 나훈아와 레스토랑 ‘초정’을 경영하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
1982년 5월, ‘얼마나 오래갈 것이냐’하는 주의의 따가운 눈총 속에 불안한 출발을 보였던 김지미와 나훈아의 결혼생활이 세인의 예측대로 결국 파경을 맞았다.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채 동거상태로 지내왔기 때문에 이들은 헤어짐도 간결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극적이고 화려한 표현도, 눈물도, 서로 상대방의 비방도 없이 마치 한 집에서 살다가 서로 딴 집으로 이사한 것처럼 그렇게 헤어진 것이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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