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한나라당 전대 ‘절반의 성공’

‘정몽준, 대권은 끝났다!’
지난달 27일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진 라디오 토론회에서 버스비를 묻는 질문에 ‘70원’ 발언을 놓고 야권의 한 인사가 내지른 말이다. 고유가 시대 ‘서민의 발로’ 각광을 받고 있는 대중교통 요금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이해되지만 100원도 안 된다는 답변은 많은 서민들에게 ‘냉소’를 갖기에 충분했다. 당장 대의원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도 2위에서 4위로 떨어지는 등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났다. 당 대표 최고위원에 나서는 정 의원으로서는 최대의 악재로 작용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지난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정 의원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타 후보를 누르면서 2위로 최고위원에 들었기 때문이다. ‘절반의 성공’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대권을 꿈꾸는 정 최고위원이 서민의 생활과 동떨어진 귀족적인 이미지는 차기 대선에서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공산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이 시각이다.
여론조사가 정 최고를 살렸다는 평이다. 한나라당 대의원 투표에서는 박희태(4264표) 후보, 허태열(2792) 후보에 이어 3위로 2391표를 얻었다.
이 표는 4위인 공성진 후보(2306표)와 4위인 김성조 후보(2245표)와 별반 큰 차이를 보이질 않아 당내 정 의원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정 의원은 전체 투표에서 30%를 반영하는 일반인 여론조사에서 46.29%로 타 후보를 압도적 차로 누르면서 단박에 2위로 올라섰다. 여론조사의 위력이 다시한번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지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의 상황과는 정반대 결과다. 이 대통령은 당시 대의원 조사에서 졌지만 여론조사에서 앞서 대통령 후보가 됐고 박 전 대표는 당심을 얻었지만 민심에서 밀려 분루를 삼켜야 했기 때문이다.
정몽준 특명 “당심 잡아라”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분명한 것은 당내 친이파와 친박파 등 계파정치가 명확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 의원은 대의원 투표에서 친박 성향의 허태열 후보보다 401표 차이를 보였고 1위인 박희태 후보와는 1873표로 친이계와 친박계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정 의원이 지난해 12월 입당해 7개월 만에 2위로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에 입성한 것에 일정한 평가
를 주면서도 정 최고위원이 넘어야 할 산도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정 의원의 한계를 말하는 인사들은 이번 전당대회가 ‘관리형 대표’를 뽑는 성격이 강한 만큼 유력한 차기 후보가 없는 가운데 치러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 대표로 선출된 박 대표는 여야와 당내 계파를 아우를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지만 친이 진영의 압도적 지지로 표를 모을 수 있었다. 그밖에 허태열, 공성진, 김성조 의원은 친이 친박 진영을 대표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차기 지도자’나 ‘당 대표’감으로 꼽는 당내 분위기는 아니었다. 한 마디로 고만고만한 군소 후보 속에서 2위를 했다고 자위하는 것은 정 의원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한나라당 입당 이후 정 의원의 행보는 차기 대권 후보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탄탄대로였다. 입당 2개월 만에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됐고 올해 초에는 4강 특사의 일원으로 이상득(일본), 이재오(러시아), 박근혜(중국) 전 대표 등 쟁쟁한 인사들과 어깨를 겨누며 미국 특사를 수행했다. 또한 지난 총선에서는 자신의 지역구인 울산을 포기하고 서울 동작을에 출사표를 던져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와 경쟁했던 집권 여당 후보인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한나라당 수도권 승리에 견인차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 의원이 당심에서 2위도 아닌 3위를 했다는 점은 여전히 한나라당 당원으로부터 ‘원죄설(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로 인한 한나라당 참패했다)’과 계파 정치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2002 대선 원죄설 귀족적 이미지 공방
3조원대의 재산가로 귀족 이미지 역시 정 의원이 털고 가야 할 숙제다. 정동영 전 의원의 ‘노풍발언’이 지난 대선에서 언급된 것처럼 정 의원의 ‘버스비
70원 발언’ 역시 차기 대선에서 재차 거론될 공산이 높다.
또한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이 ‘강부자 정권’, ‘1% 정권’으로 불리는 상항 역시 정 최고에게 유리한 정치 상황이 아니다. 귀족적인 이미지를 벗는 것은 본인의 노력에 달려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성공이냐 실패냐 여부는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더 불안한 요소로 작용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 구정권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경우 정 최고의원으로서는 대통령과 같은 ‘현대맨’에 ‘CEO’ 출신이라는 점에서 대권 도전 자체가 불투명하게 될 여지도 충분하다. ‘내우외환’을 겪고 있는 정 최고위원의 대권 운명이 험난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정 최고의 정치적 환경이 손학규 전 대표와 흡사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마디로 손 전 대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손 전 대표는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 도지사를 거쳤지만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탈당해 ‘혈혈단신’으로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다.
그러나 정치는 냉엄했다. 당내 최대 계파인 정동영 후보를 넘을 수 없었고 끝내 패배의 고배를 마셨다. TV 토론회장에서는 친노 진영, 정동영계로부터 ‘정체성이 불명확하다’며 양 진영에서 집요하게 공격받았다.
손 전대표 탈당 배경에 민주당 당ㅅ이 경선 참여를 전제로 ‘DJ 지원설’이 나돌았다. 당 중진인 김근태, 유인태 전 의원의 전폭적인 지원 약속도 받았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정작 경선이 시작되고서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도와주겠다던 DJ와 중진 의원들이 주춤거렸다. 급기야 경선 중단 카드에 캠프 해체 선언까지 초강수를 던졌지만 최대 조직을 보유한 정동영 후보를 넘을 수는 없었다.
정 후보가 대통합신당 대통령 후보가 된 이후 손학규 캠프 일각에서는 ‘너무 일찍 신당 경선에 참석했다. 문국현 후보처럼 정당을 만들어야 했었다’며 때늦은 목소리가 나왔었다. 정동영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기 위한 ‘불쏘시개’ 역할만 했다는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정몽준 반면교사
‘손학규 전 대표’ 정치 행보
정몽준 최고 역시 손 전 대표와 닮은 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 최고는 고 정주영 회장이 만든 통일국민당 입당전 1990년 잠시 한나라당 전신인 민자당에 몸을 담은 이후 무소속과 국민통합21 대표를 맡는 등 한나라당과는 무관하게 정치 생활을 했다.
그러다 정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 선언(12.19일 하루 전 단일화 폐기)을 통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패하는 데 일조한 인물로 낙인찍혔다. 한나라당이 노래를 부르던 ‘잃어버린 10년’의 한 주역인 셈이다.
이후 정 의원은 지난해 12월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당시 정 의원의 입당 배경에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이 개입했다는 말이 돌았다.
이에 향후 당권 경쟁에 친이 진영에서 지지를 약속받고 들어왔다는 말도 나왔다. 또한 당 일각에서는 친이 진영이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기위해서 입당시켰다는 소문도 나왔다. 이래저래 친이 진영의 작품인 것은 확실한 셈이다.
하지만 친이 진영에서는 정 의원에게 또 다른 주문을 했다. 수도권 승리를 위해 정동영 전 의장이 출사표를 던진 서울 동작을에 출마를 종용한 것이다. 정 최고는 처음에 고사를 했지만 당 안팎의 여론은 ‘서울 출마’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출마해 승리를 이뤄냈다.
그러나 당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는 정 의원에게 냉혹했다. 전당 대회전 개최된 토론회에서는 친이, 친박 진영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정도로 공격을 받았다. ‘70원 발언’ 역시 친이를 표방한 공성진 후보의 갑작스런 질문으로 시작됐다.
양 진영의 주된 공격 포인트는 ‘원죄설’과 ‘귀족이미지’였다.
손 전 대표의 ‘정체성’ 문제와 흡사했다. 정 후보는 ‘강부자 정권에 재벌 당대표는 안된다’는 공격을 받아야만 했다.
정 최고 역시 ‘정공법’으로 나갔지만 당내 취약한 지지 기반을 넘기는 힘들었다. 당 대표는 친이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박희태 후보가 됐다.
손 전 대표가 경선에서 끝내 정동영 후보를 넘지 못했듯이 정 최고는 2위에 머물렀다. 이에 정 캠프측 일각에서는 전당대회 결과를 보고 ‘한나라당에 너무 일찍 입당한 게 아니냐’는 탄이도 흘러나왔다.
한편 정 의원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표를 얻은 것에 낮은 여론조사 결과를 받은 측에서는 ‘여론조사 무용론’까지 대두하는 정치적 환경도 손 전 대표와 유사다. 대중적 인지도가 낮은 여론조사 결과를 받은 후보 캠프에서 여론조사가 ‘인기투표’로 흘러 당심을 왜곡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론조사 반영비율 축소 움직임
또한 여론조사가 유효 투표의 30%반영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사실 이런 주장은 손 전 대표 경선과정에서 똑같이 나왔다.
당내 조직이 탄탄한 반면 여론조사에 자신이 없던 후보들이 뭉쳐 급기야 전대미문의 ‘휴대폰 투표’를 껴 넣으면서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낮췄다.
한나라당 30% 반영 비율보다 낮은 10%대로 영향을 미비하게 해 대중적 인지도가 높았던 손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정 최고 역시 차기 당권.대권 도전에 있어 반대 진영에서 똑같은 주장이 나올 공산이 높다.
정 최고위원이 차기 대권에서 손 전 대표와 같은 길을 걸을지 아니면 ‘MJ식 독자 정치’를 펼칠지 정치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대가 엊그젠데… ‘조기전대’ 솔솔 왜?
한나라당 전당대회가 끝난 지 일주일도 안 돼 벌써 일각에서는 성급하게 조기전당대회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야당 대표와는 달리 국정운영에 책임이 있는 여당 대표는 ‘임기가 따로 없다’는 설명이다.
참여정부 당시 집권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당 의장이 7차례나 바뀌어졌다는 점도 들었다. 그러나 최소 1년은 박희태 대표가 직을 유지할 것이라는 데는 동의했다. 그러나 변수도 많다. 재보궐 선거, 한미 FTA 비준안 처리, 9월 정기국회 예산안 편성, 이해관계가 첨예한 법안을 두고 국회 파행이 지속될 경우 집권 여당 대표의 ‘책임론’은 언제든지 대두될 수 있다.
시기적으로는 내후년 지방선거전에 앞두고 당 대표가 교체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에 2위가 1위를 승계해 당 대표를 할 수 있어 정 최고의 2위는 의미가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한편 지방선거전에 계파별 자기 사람을 심기위해 ‘당 지도부’를 흔들 공산이 높다는 관측도 대두됐다. 이에 차기 당 대표에 도전할 후보군도 거론되고 있다. 친이 측에서는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홍준표 의원과 이재오 전 의원이다. 반면 친박 진영에서는 친박 인사들의 복당이 허용될 경우 김무성, 홍사덕 의원 이름이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중간 심판 성격이 강한 2010년 6월 지방선거전인 상반기에 교체될 경우에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당 지도부를 대체해 운영될 수 있다. 이럴 경우 6월 지방선거의 성패에 따라 당 대표가 재차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