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한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8 | 은근하고 도발적인 조선시대 이야기
추석특집, 한권의 책이 인생을 바꾼다8 | 은근하고 도발적인 조선시대 이야기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0-09-17 12:07
  • 승인 2010.09.17 12:07
  • 호수 856
  • 4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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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없는 남녀의 에로티시즘‘조선후기 성소화 선집’

조선후기 패설집 11권에 전하는 234편의 성(性)이야기를 모은 ‘조선후기 성소화(性笑話)선집’이 출간됐다. ‘문학동네’가 최근 펴낸 ‘한국고전문학 전집’ 중 하나로 조선 시대의 성 이야기를 비롯한 음담패설들을 엿 볼 수 있다. 이른바 옛 사람들의 가장 뜨거운 기록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엄격한 유교 윤리의 조선시대에도 음담패설이 성행했음을 이 책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고금소총(古今笑叢)’을 비롯해 ‘이야기책(利野耆冊)’ ‘소낭(笑囊)’ ‘각수록(覺睡錄)’ ‘파적록(破寂錄)’ ‘거면록(祛眠錄)’ 등 아직까지 소개된 적 없는 패설집에 수록된 성 이야기를 일부 또는 전부를 번역해 실어 놓았다.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은 그동안 일부 출판물들을 통해 전해진 패설집 속 성적 농담들에 비해 방대한 양을 자랑한다.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이 책은 독자가 조선에 갖고 있던 기존 통념을 흔든다. 때문에 당혹스러움을 갖게 될 수 있다. 장인인 남편을 태연히 문밖에 세워 놓고 그의 아내와 질탕한 한때를 보내는 양반, 그리고 장인어른 앞에서 자신의 양물을 꺼내보이자 “무색하다”고 외치는 장인에게 “자주색이온데 어찌 색깔이 없다 하십니까”라고 반문하는 사위까지 옛 사람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날것 그대로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기방에서, 허름한 초가에서, 혹은 벌건 대낮 풀밭에서 뒹구는 남녀의 에로티시즘에는 성역이 없다.

책의 도입부에는 ‘이항복은 좆의 사위’라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항복은 장인인 권율 장군 집에 처가살이를 하며 서로 뜻이 잘 맞아 평상시에도 장난을 일삼았다. 특히 권율이 오줌을 눌 때면 몰래 쫓아가 그 물건을 훔쳐보곤 했다.

권율이 이에 당황해 “이 물건은 자네 장인일세, 어찌하여 자네는 장인을 업신여기고 희롱하는가?”라고 했다. 며칠 후 권율이 오줌을 다 누었을 즈음 갑자기 이항복이 권율의 뺨을 후려갈기며 말했다. “어르신께서 오줌을 눈 후 제 장인어른의 목을 잡고 좌우로 흔들어대시더군요. 사위인 제가 감히 그걸 가만히 앉아서 볼 수 있겠습니까” 이에 권율은 “너는 좆의 사위라 해도 성내지 않겠구나”라고 웃으며 답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벌건 대낮에 사랑방 혹은 밭에서 뒹구는 조선시대 남녀상열지사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고전은 우리의 발견을 기다리며 오랜 세월 웅크리고 있던 가장 위대한 우리의 자산’이라고 이야기 한다.

또 고전은 끝없는 상상력의 원천이며 우리가 간직해 온 인물군상과 해학을 넉넉하게 품은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조선 남녀노소 꾸밈없는 성정

패설집 속 음담패설을 읽다보면 조선시대 남녀노소의 꾸밈없는 성정을 살필 수 있다. 더구나 패설집의 시대적 배경과 의미를 조목조목 설명한데다, 각 이야기 마다 원문을 함께 실어 연구서적으로서의 가치도 높다는 평을 받고 있다.

조선시대 옛 사람들의 웃음 속에 당대 권력과 체제를 풍자한 시선이 이 패설집 속에 녹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회 질서에 억눌렸던 지식인들은 음담패설을 통해 기존의 가치와 질서를 위반하며 인간적인 면모를 한껏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 패설집 속에는 눈이 빠지고 배꼽이 튀어나올 만큼 우스운 이야기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우스운 이야기 뒤에 슬픔과 애환까지 녹아 있다.

이 책은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회 질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때는 감성에 따라 사회 질서에 접근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한다. 지나친 감성의 노출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선 분노와 좌절과 같다고 말한다.

특히 ‘조선후기 성소화 선집’ 중 승려와 암탕나귀의 성교까지 나오는 ‘각소록’ 의 25편의 반인륜적 이야기들은 웃음을 넘어선 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역자인 김준형 고려대학교 고전문학 강사는 “암울한 시기의 성은 민족과 계몽을 책임져야했던 지식인의 웃음인 동시에 울음으로 작용하는 하나의 계기”라고 지적하며, “암울했던 근대전환기에 민족과 계몽을 책임져야 했던 지식인들이 ‘일회용’ 제품과 같은 향락적인 우스갯소리의 주된 향유층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장치가 웃음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그 웃음은 당시 암울한 현실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눈물의 다른 표현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며 “중세에서 근대로 전환하는 도정에 찬집된 패설을 접하면서 배꼽이 빠지게끔 웃어대지만, 다른 한편으로 돌덩이가 내려앉는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독자·연구자 눈높이 모두 맞춰

이 같은 이야기와 더불어 생생한 화보를 수록해 읽는 재미에 보는 재미를 더했다.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태껏 ‘고전’으로 출간 된 책들의 대부분은 어린이용이나 청소년용 도서로 제작되어 지나치게 축약돼 원전의 말맛을 잃는 경우가 많았다. 또 원문 그대로 출판되어 오로지 전문가용으로 그쳐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때문에 이 책을 포함,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의 전권 모두 ‘현대어역’과 ‘원본’으로 나누어 두 가지 버전으로 출간해 일반 독자와 연구자의 눈높이 모두를 맞췄다.

우선 현대어역에서는 오늘날의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풀어썼다. 한편 원본에서는 고전의 모든 이본을 집대성했다고 불러도 좋을 만큼 중점적으로 논의되는 고전의 이본들을 철저히 교감해 연구자들을 위한 텍스트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이전의 역주본에서 누락된 내용을 추가하고 잘못된 내용을 상당부분 바로 잡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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