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숨결과 온기를 가슴으로 느낀다”
우리는 세계에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방대한 산성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확인된 것만 3천여 개에 이르는 말 그대로 산성의 나라이다. 산성을 이루는 성돌 하나하나는 물론, 산성에 산재된 기와 파편하나, 토기 한 조각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산성을 돌아다니다 보면 복원을 한 구간이 확연히 구분된다. 기존 성돌과는 다른 반듯반듯한 화강암으로 블록을 쌓듯 포개져 있다. 큰비가 온 뒤에 불룩하게 성벽이 튀어 나왔거나 심지어 무너져 내린 곳을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중장비를 동원해 복원한 구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500년이 넘은 성벽은 굳건히 버티고 있는 데, 현대 기술로 조급하게 쌓아올린 성벽은 채 몇 년을 버티지 못하는 것. 이에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안타까움을 다시 복원하고자 다양한 사료적 근거와 학계의 연구 결과를 되살려 산성기행 두 번째 이야기를 집필하였다.
1500년이 넘은 시간과 역사가 담겨져 있는 산성의 현재적 의미를 독자들과 함께 느끼고자 한다.
우리역사는 수천불 이상의 1인당 국민소득 효과를 지니고 있다.
개국의 역사가 2천년 이상 되는 국가들은 대체로 자신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교육에 반영하게 마련이다.
그 역사에 영광과 굴욕이 공존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써 역사가 짧은 다른 국가 또는 민족에 대한 부러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과학기술이나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조금 뒤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국가나 민족은 자신들의 역사를 가지고 자긍심을 갖고 자존심을 세운다.
중국은 경제력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떨어졌던 때도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1만 년의 역사를 내세워 국제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로 군림해 왔다. 이른 바 중화사상은 그 어떤 경우에도 300년이 안 되는 미국의 역사 위에서 세계 역사의 중심으로 군림했던 것이다. 그리스나 이탈리아도 그렇다.
EU 소속 국가 중 상대적으로 경제력이나 정치 외교력이 뒤처지는 이들 두 나라는, 역사에 있어서만은 영국이나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 중심국들을 선도하고 있다.
국가의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자부심은 적어도 1인당 국민소득 5000불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반면 우리는 5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역사의 가치를 국제사회는 물론 국민들 스스로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역사 과목은 이미 수능에서도 찬밥 신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세대들은 무관심하다. 해외에 나가 있는 대학생들에게 외국인들이 한국의 역사에 대해 물어봐도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이들이 적을 지경이다.
10~20대에게 가장 재미없는 드라마는 사극이고, 서점에서 가장 손이 안가는 종목도 역사서다. 역사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지루하게 외워야 하는 골치 아픈 교과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가장 재밌고 확실한 역사 교육
‘역사와 내가 만나는 곳, 산성기행 2’는 역사가 결코 암기 과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내 발길이 닫는 곳에 우리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말처럼 머리가 아니라 발로,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외우는 우리 역사의 가르침이다.
교과서를 보고 줄기차게 외워댔던 남한산성에 대한 모든 것이 시험을 보고 난 다음 곧바로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남한산성에서 3시간만 시간을 보내면 그곳의 아프고도 자랑스러운 기억은 오랜 시간 자신 속에 남아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와 내가 만나는 곳, 산성기행 2’는 효과적인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와 내가 만나는 곳, 산성기행 2’는 결코 역사책이 아니다.
저자 안순모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또 역사에 대한 해박한 별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다. 다만 발길이 닫는 우리 산의 곳곳을 다니면서 그 속에 숨 쉬고 있는 역사를 우연히 끄집어 낸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책이라기보다 여행 감상문이다. 단지 그 산성이 지니고 있는 역사성 뿐 아니라 그 산성을 휘감고 있는 산에 관해, 그 산성으로 걸어 올라가는 도중에 만날 수 있는 우리의 돌과 나무에 대해 편안한 느낌을 이야기 해준다.
굳이 역사에 대한 관심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수백년 동안 그 곳에 있었던 우리의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는 역사를 아주 우연히 만나는 기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8년 강화의 강화산성을 시작으로 문경 고모산성, 공주 공산성, 담양 금성산성, 부산 금정산성, 김포 문수산성, 춘천 봉의산성, 보은 삼년산성, 부여 성흥산성, 단양 온달산성, 진도 용장산성, 안성 죽주산성 등을 소개했던 ‘전란과 역사의 여울목, 산성기행’이 자그마한 문화적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산성의 축조 의미가 외적으로부터의 방어이기 때문에 산성의 역사를 전란의 역사로 이어서 여행 속에서 만나는 우리의 역사를 보여줬었다.
그리고 다시 2년의 시간동안 저자 상주 견훤산성을 비롯해 남원의 교룡산성, 월악산 덕주산성, 오산 독산성, 동해 두타산성, 경주 명활산성, 포천 반월산성, 청주 상당산성, 연기 운주산성, 하남 이성산성, 단양 적성산성, 논산 황산성을 소개하고 있다.
전편의 관심에 힘입은 바 있기도 하지만 2편에서는 전란을 뛰어넘어 당시 우리 민중들의 삶 속에 오랜 시간동안 배어있는 생활과 지혜까지 폭넓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저자- 안순모
해발 500m.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경북 봉화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의 9할이 푸른 산이었던 유년기의 기억을 갖고 있다. 학과보다는 학보사 생활에 빠져 놀멘놀멘 단국대학교를 다녔다. 주간지 기자와 국회 보좌관을 거쳐, 참여정부 ‘국정브리핑’의 외교안보분야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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