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윤사랑 기자]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친형 강제입원’과 관련한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은 이후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종횡무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 지사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대선주자 지지율 1·2위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면서 정치적 위상을 강화시켰다. 정치권은 주요 논쟁적 현안이 부상할 때마다 이 지사의 ‘입’에 주목하는 형국이다. 사법적 족쇄에서 풀려난 이후 기본소득, 부동산 정책 등과 관련 정책적 선명성을 부각시키던 이 지사가 이젠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차별화 전략을 가동시켰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난지원금 지급 문제를 고리로 당권을 획득한 이낙연 대표에게 견제구를 날리더니 이젠 임기말 문재인 대통령과의 차별화까지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친문’과의 화해 가장 급선무, 그러나 ‘친문’ 자극하는 이유는
- ‘정책 선명성 부각’ 강공 드라이브, ‘본선 경쟁력’ 자신감의 발로?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선 전략의 큰 골격은 ‘정책적 어젠다’로 선명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사는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대응 방안으로 2차 재난지원금 전국민 지급을 주장하며 존재감을 과시해왔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어려운 분들을 더 두텁게 돕는 차등 지원이 맞다”며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급을 주장했고, 이 지사는 “국민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며 민주당이 견지해온 보편복지 노선을 버리고 보수 야당의 선별복지 노선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이 지사는 ‘선별 지급’ 방침을 강조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도 ‘철없다’ 공방전을 펼쳤다. 홍 부총리는 관가에서는 ‘이낙연 사람’으로 통하고 홍 부총리의 ‘선별 지급’ 주장이 이 대표의 입장과 같다는 점에서 이 지사가 ‘홍남기 때리기’로 사실상 이낙연 대표에게 견제구를 날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李 ‘문 정부’ 직접 언급 “배신감 불길처럼”, 차별화 신호탄?
이 지사는 지난 6일에는 당정청이 ‘선별 지원’ 기조를 공식화하자 비판의 대상을 여권 전체로 확대시켰다. 특히 문재인 정부를 직접 거론하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이 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분열에 따른 갈등과 혼란, 배제에 의한 소외감,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며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공화국에서 모두가 어렵고 불안한 위기에 대리인에 의해 강제당한 차별이 가져올 후폭풍이 너무 두렵다”고 밝혔다.
이 지사는 자신의 발언을 놓고 파장이 일자 뒤이어 올린 글에서 “보수언론은 더 이상 저의 견해를 ‘얄팍한 갈라치기’에 악용하지 말라”며 “저의 충정과 의무를 왜곡하지 말아주시라”면서 진화에 나섰다. 이 지사는 “지금까지 많은 논의들이 있었습니다만, 저 역시 정부의 일원이자 당의 당원으로서 정부여당의 최종 결정에 성실히 따를 것”이라며 “이는 변함없는 저의 충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지사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낙연 대표는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과의 차별화 행보에 신호탄을 날렸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이 지사는 또다시 친문과의 갈등을 노출시켰다. 이 지사는 친문인 신동근 최고위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논쟁을 벌였다. 신 최고위원은 이 지사의 ‘재난지원금 1인당 10만원씩이라도’ 주장에 대해 “철학으로 보나 정책으로 보나 납득이 안 가는데 왜 미련을 못 버리냐. 참 딱하네요. 이미 끝난 게임”이라고 비판했고, 이 지사는 “위원님께는 게임이겠지만, 국민은 생존의 문제”라고 발끈했다.
이 지사는 강성 친문 지지자들의 반발도 불러왔다. 친문 지지자들은 권리당원 게시판을 통해 이 지사가 해당 행위를 하고 있다며 “제명해주라”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책가이자 전략가적 면모를 보여왔던 이 지사도 자신의 언행이 친문으로부터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했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경선에서 대선주자로 선출되기 위해서는 친문이 장악하고 있는 ‘당심(黨心)’을 얻는 것이 급선무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이 지사가 대법원 판결 이후 대선을 위해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정치적 앙금을 쌓아온 ‘친문’과 화해에 나서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왔었다. 그러나 이 지사가 ‘친문’의 심기를 건드리면서까지 소신 발언을 쏟아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같은 행보의 밑바탕에는 이 지사의 자신감에 근거한 전략적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 지사는 지금까지 정책적 선명성을 부각시키며 ‘사이다 행보’로 민심의 호응을 얻어 지지율을 끌어올려왔다. 일부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이낙연 대표를 누르고 1위로 올라서기도 했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이낙연 대표에게 밀린다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다. 그러나 이 지사가 민심을 확실히 거머쥐고 지지율 1위를 굳히며 본선 경쟁력을 보여줄 경우 친문도 자신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친문의 경우 근본적으로 ‘친문 적통’ 대선주자를 내세우고 싶겠지만 상황은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가족 관련 의혹 등과 관련 재판을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최종심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조 전 장관이 대선주자로 나설 경우 지금도 정치권에서 회자되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공정성’ 퇴색 시비는 다시 부각될 수밖에 없다.
‘친문’ 핵심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드루킹’ 댓글 조작에 연루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지난 3일 서울고법 형사2부 심리로 열린 김 지사에 대한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재판부에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에 징역 3년 6개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징역 2년 6개월을 각각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유시민 전 의원은 대선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일축하고 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에 강성 친문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친문이 이 지사가 싫다고 똘똘 뭉쳐서 이재명을 치지는 않는다”며 “누가되든 경쟁력이 높은 사람을 선택하려고 하는 친문도 있기 때문에 이 지사는 그걸 보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지사가 여권 전체로 비판을 확대했다가 다시 뒤로 물러선 행보를 보인 것은 전략적 좌표 설정이 안됐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배종호 세한대 교수는 “이 지사가 아직 전략적인 좌표 설정이 안돼서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지사가 독자 노선을 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친문의 마음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양자를 적절히 균형 할 것인가를 놓고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양다리걸치기, 치고빠지기” 에 李, “정치사전에 차별화 없다”
일각에서는 이 지사의 ‘양다리 걸치기’ ‘치고 빠지기’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지사는 지난 7월에도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무공천을 주장했다가 이틀 만에 “저는 서울부산시장 무공천을 주장한 바가 없다”고 번복해 논란이 됐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에 출연해 “이 지사가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나가는 것이 제 눈에 뚜렷이 보인다, 이러면서 재난지원금을 다 드려야 한다, 얘기해 놓고 반나절도 안 돼서 정부여당 최종 결정에 성실히 따르겠다, 이렇게 말씀했다”며 “치고 빠지기 하면서 재난지원금을 못 받는 분들에게도 인기를 누리고 친문 진영으로부터도 배척 안 당하기 위한 양다리 걸치기를 하고 있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아니냐”고 주장했다.
민주당 내 분위기는 당 내 갈등으로 비칠 수 있는 만큼 이 지사의 행보가 차별화 전략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김기현 의원과 같은 방송에 출연한 설훈 민주당 의원은 “우리 내부에서는 치열하게 서로 논쟁할 수 있다”며 “이재명 지사 안이 있고 제 안이 있고 정부안 있고 누구 안 있고 다 있다. 그걸 다 모아서 가장 합리적인 처방을 한다면 따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이 해낸 결정인데 옳은 결정이면 따라가는 것”이라며 “그걸 가지고 양다리를 걸쳤느니 이런 건 정책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비슷하게 들린다”고 반박했다.
지난 10일에는 이 지사가 민주당과 정부가 13세 이상 전국민에게 통신비 2만원을 일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과 관련 부정적 입장을 밝히자 이 지사가 정부여당에 반기를 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기까지 했다.
이 지사는 이날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통신비는 직접 통신사로 들어가 버리니 승수 효과가 없다”며 “영세 자영업자나 동네 골목의 매출을 늘려주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워 아쉽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사는 이 같은 발언에 정치적 해석이 뒤따르자 페이스북에 ‘이재명의 정치사전에 차별화는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물구경 불구경에 더해 싸움구경이 3대 구경거리라고는 하지만, 일부러 싸움 붙이고 국민을 속이며 없는 싸움 지어낼 일은 아니다”라며 “내부갈등에 적전분열은 극복해야할 적폐세력이 간절히 원하는 일이니, 차별화나 반기 드는 구태정치로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사랑 기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