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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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10-06 17:21
  • 승인 2009.10.06 17:21
  • 호수 806
  •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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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곡진 남편의 인생과 함께한 영원한 동반자
2008년 11월11일 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출판기념회가 열린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축하케익의 촛불을 끄고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홀로 남겨진 이희호 여사. 그녀가 최근 자서전을 집필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 갖은 고초를 함께 겪으며 느꼈던 감정들을 스스럼없이 공개했다. 독자들은 정신적 동지이면서 삶의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의 자서전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영부인 중 가장 고학력 퍼스트레이디인 이희호 여사의 인생행로는 김 전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쟁한 1971년 대선부터 그는 최고 통치권자의 최대 정적이 되었으며, 이후 망명, 납치, 구금, 연금 등이 이어졌고, 24시간 감시와 도청이 계속됐다.

또한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군사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남편의 투옥은 이어졌고 급기야 그는 ‘김대중 내란 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런 모진 시련에서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가택연금은 계속되었고, 오랜 기간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해야 했다. 이처럼 이희호 여사는 정치적인 고난을 많이 겪기로 유명한 김 전 대통령의 삶의 동반자이며 정신적인 동지로서 일생을 보냈다. 또한 이 여사는 한국 여성 운동의 선구자이며 인텔리 여성으로서 가족법 개정, 축첩 정치인 반대, 혼인신고 하기 등의 여성 인권 찾기에도 많은 노력과 수고를 바쳤다.

특히 김 전 대통령과 함께 고난과 핍박의 세월 겪으며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여사는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내 한 몸 바치겠다는 큰 꿈과 열정이 그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그는 늘 책을 읽고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 그랬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나는 이 비범한 남자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남편에 대해 평했다.

이희호여사는 1987년, 1992년 대선에서 그가 연거푸 패배하고 1997년 대선 4수를 결심했을 때도 다시 신발끈을 잡아맸다. 이를 두고 한 지인은 “김대중 정권 지분의 40%는 이 여사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계은퇴를 앞둔 김 전 대통령은 “이번에도 하느님은 나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소. 이제 정계를 떠나려고 하오.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써주오”라고 말했다.

남편의 말에 이 여사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회고록에는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서술했다.

“그의 비장한 결정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윽고 그가 구술하고 나는 받아 적었다. 정서를 하는데 눈물이 주르륵 종이 위에 떨어졌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고개를 숙이고 우는 내 모습이 처연했던지 남편이 손을 잡았다.

그러자 남편은 ‘여보 우리 1980년 사형선고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웃을 일 아니오’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이처럼 이희호 여사는 46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독려하며 때로는 비판도 하는 등 버팀목이 되어줬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고독한 모습을 봤다고 말한다.

“강행군을 마치고 5시쯤 숙소로 돌아오니 대통령은 아직 정상회담 중이라고 했다. 2시간째 계속되고 있었다. 잠시 휴식차 온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6시 전에 다시 회담장으로 갈 때는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무거운 걸음을 떼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고독하고 힘겨워보였다.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은 결정적 순간에 무섭게 외롭다. 그날의 그가 결혼 생활 중 만난 가장 고독한 모습이었다”

이 여사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다양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다. 계훈제 선생, 김활란 박사, 육영수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 힐러리 클린턴 국방장관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 여사는 육영수 여사와 관련해서 “육영수 여사는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녔으며 남편의 독재를 많이 염려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속 야당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분이다. 뒷모습도 우아하고 품격이 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역사의 순간 이희호가 만난 사람들

자신의 남편인 김 전 대통령을 사형시키려 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난 사연도 회고록에 담겨 있다.

“조금 기다리니 전 대통령이 들어왔다.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스스럼이 없었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이 없었다. 나는 전 대통령의 유명한 입담을 나중에야 알았다. 사형을 시키려 했던 ‘수괴’의 안사람을 상대로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 일상적으로 대했다. 때로는 바지 자락을 올리고 다리를 긁적거리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분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선 “이전까지의 풍문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대통령은 물론 장관과 수석 등 수행원들에게까지 두루두루 배려와 예의를 차리면서 좌중을 휘어잡고 주도했다. 거침없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여유로움이 돋보였다”고 회상했다.

이 여사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4년 전이었다. 자신의 개인적인 기록이기에 앞서 한국 현대 정치사와 민주화 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이 여사는 “나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생활의 기억들이다. 나 개인의 기록이지만 아로 새겨진 우리 현대사의 뒤안길이기도 하다. 후세에게 그날의 역사를 편린이나마 남겨 놓고자 함이다”며 집필 동기를 적었다.

이 책의 부제인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는 김 전 대통령이 손수 지은 것이다. 묵묵히 고난의 시기를 함께 헤쳐 나온 이 여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더욱 이 여사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다고 한다.

이 여사는 “남편은 길 떠나는 아내가 혹여 사고를 당할까 기사에게 조심을 당부한다. 그것도 부족한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 한다”고 전했다.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김대중과 이희호. 그들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은 책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이희호 여사는

1922년 서울에서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이화고녀와 이화여전 문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램버스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미국 스카릿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회, YWCA연합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를 비롯해 많은 단체에서 가족법 개정 운동, 축첩 정치인 반대 운동 등 여성운동 및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쳐 일했다. 현재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고문, 사단법인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외환은행 ‘나눔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하여〉, 〈나의 사랑, 나의 조국〉,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 등의 책을 펴냈다.

[정리=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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