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을 통일한 조조에게 ‘생존법’ 배운다
소설 삼국연의에서 위나라의 조조란 늘 악역으로 그려진다. 비겁하고 약삭빠른 그는 촉나라 유비의 숙적으로 사사건건 대립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다. 하지만 여기서 무시되기 쉬운 점도 있다. 바로 조조가 삼국을 통일한 최후의 승자가 됐다는 점이다. 책〈조조 같은 놈〉에서는 이같은 조조의 리더십을 배우라고 설명한다. “적당히 비겁하면 사람이 모인다”는 것이 저자 왕경국의 말이다. 우리 사회는 ‘조조 같은 놈’이라고 하면 ‘비겁한 놈’이라는 뜻으로 통한다. 소설 삼국연의의 조조가 워낙 간사한 인물로 그려지는 탓이다. 실제 삼국연의에서는 조조를 일컬어 “평화로운 시대에는 유능한 신하가 되겠지만,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사한 영웅이 될 사람(治世能臣 亂世奸雄)”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오늘날 조조의 리더십은 재평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는 삼국을 통일한 영웅이었다. 강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이 강하다는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그는 격랑의 시대에서 살아남았고 중국천하를 재패했다.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변화해 혼란스러운 오늘날도 난세와 다를 것이 없다.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적당히 비겁해져라
〈조조 같은 놈〉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자존심’과 ‘체면’을 버리라는 점이다. 사실 체면 차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죽자 살자 체면에 목숨 거는 사람들을 보면 일의 결과를 중히 여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그 결과가 기대에 미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체면과 자존심에 상처만 입기 십상이라는 것. 진짜 잘난 사람은 무대 뒤에 있기 마련이다. 남의 체면을 살려주고 대신 필요한 것을 무난히 얻어낸다. 이른바 조조식 처세술이다. 실패한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능력이 없거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남을 먼저 배려하지 않고 자존심과 체면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조 같은 놈〉에서는 아예 자존심과 체면은 성공의 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약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이익을 얻는 대신 상대방에게도 심리적 만족감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 이것이 체면을 지키는 일이다. 무대를 양보하고 뒤로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실제 조조는 정적들과 패권을 다툴 당시 무대 뒤에서 남들을 조정하는 계책을 활용했다. 한꺼번에 여러 나라의 군주들이 일어나 사방이 위험하게 되자 다른 이를 무대 위에 올리고 자신은 그 뒤에서 조정하면서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실제 삼국연의에서 조조는 동탁 암살이 실패하자 재빨리 뤄양을 빠져나가 초현으로 돌아갔다. 그 뒤 원술, 원소, 공융, 마등, 손견 등과 회동을 갖고 반동탁동맹을 결성한다. 총사령관에는 원소가 올라갔고 손견이 선봉을 맡았다. 조조가 맹주로 나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양보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책략이었다. 원소는 군주들의 정권다툼 속에서 서서히 힘을 잃어갔고 결국 조조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뤄양을 손에 넣고 동탁을 제거한 조조는 다시 헌제를 한의 황제로 옹립했다. 한헌제의 그림자가 돼 황제를 조정하는 실세가 된 것이다. 한헌제가 지닌 황제의 권위 때문에 누구도 섣불리 조조에게 대적하지 못했다. 조조는 이후 자신을 대승상으로 내세워 천자의 권위를 등에 업고 제후들을 제 마음대로 가지고 놀았다.
훗날 크게 성장한 조조에게 사방의 현사(어진 선비)들이 몰려들어 몸을 위탁한 것을 보면 그의 막후 조정능력이 얼마나 대단했던 것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조조의 인덕이 그저 막후 조정능력만으로 생긴 것은 아니다. 책략의 대명사인 조조가 인재를 얻을 수 있었던 점을〈조조 같은 놈〉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는 “적당히 비겁하면 사람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약삭빠른 처세술과도 맞닿아 있다. 적당히 비겁하고 적당히 눈치있고, 적당히 거짓말을 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체면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누군가 실수했다고 책망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세법이다. 오히려 잘못은 인정하는 것이 차라리 낫다. 눈에 보이는 체면을 지키겠다고 버텨봤자 남은 것은 후회뿐이다.
반대로 잘못했다고 상대를 괴롭히는 것도 현명하지 못한 전략이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그를 탓한들 기분만 더 상할 뿐이다. 책망은 그 사람의 자존심과 체면에 심각한 상처를 내는 일이다. 실제 조조는 매우 엄격했지만 자기 사람 관리에는 철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주위에는 늘 시대를 대표하는 장수들이 따라다녔다.
둘째, “화술은 귀신도 움직인다”는 점이다. 말을 통한 체면이란 단순한 몇 마디로 얻는 체면이다. 이를 테면 사람을 맞이할 때나 부탁할 때, 일을 처리할 때 간단한 몇마디의 인사치레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상대를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상대의 비위를 잘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무심결에 하는 말처럼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 상대도 단순히 잘 보이려는 말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끝으로 “임기응변 재치는 최고의 지혜다”라는 점이다. 살다보면 자신도 예상치 못한 일이나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임기응변의 재치다.
임기응변 재치는 필수
전국시대 제나라의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초나라 왕이 왜소한 그를 골탕 먹이려고 성의 작은 문으로 들어오게 했다. 안영은 “개의 나라에 들어갈 때나 개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해 왕으로 하여금 대문을 열게 했다.
초나라 왕은 또 다시 제나라에 왜소한 사람을 사신으로 보낼 만큼 인물이 없냐고 비꼬았다. 그러자 안영은 “제나라에서는 어진 왕에게는 어진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고, 어질지 못한 왕에게는 어질지 못한 사람을 사신으로 보낸다”며 “제나라 사람 중에 자신이 가장 어질지 못한 사람이라서 사신으로 오게 됐다”고 말해 결국 초나라 왕을 감탄케 했다.
오늘날에도 말로 흥하고 망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조조의 전략은 우리의 성공에도 반드시 필요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왕경국
중국 서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왕경국 박사는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동아시아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다. 특히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과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왕박사는, 옛성현들의 지혜와 삶의 철학이 담긴 고사성어를 그 시대에 있었던 실제 사례들과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현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분야별로 연구하고 정리하였다. 따라서 그의 글을 읽으면 누구나 세상을 보는 안목을 높일 수 있으며 삶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저서로는 [유식의 즐거움(동양지식의 모든 것)][맹자에게 설득의 기술을 배워라][중국고전의 산책][한비자의 사상과 철학][인간경영과 처세학][시대를 초월한 경세지략][역사의 발자욱]등이 있다.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강필성 기자 feel@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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