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촛불’ 그 후…
꺼지지 않는 ‘촛불’ 그 후…
  • 오경섭 기자
  • 입력 2008-07-01 15:11
  • 승인 2008.07.01 15:11
  • 호수 740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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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짱 ‘봉하마을’ 압수수색 시나리오 ‘모락모락’
귀향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사저 내 정원수 사이로 곤광객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인사하고 있다.

쇠고기 파문으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미 쇠고기협상에 불만을 품고 건강과 생명이란 서민생활밀착형 이슈에서 출발해 급기야 정권퇴진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촛불시위 배후로 반미단체를 정조준 했고 이명박 대통령(MB)은 ‘국가 정체성’ 도전 세력에 대한 엄중 대처를 주문했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신공안 정국 조성’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그러자 촛불시위가 다시 과격양상을 보였다. 여권 일부와 검찰 등 사정기관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해 봉하마을에 대한 수사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봉하마을로 유출된 200여만 건의 국가기밀 자료 때문이다. 시점이 촛불시위 배후설과 맞물리고 있다. 자칫 ‘촛불시위 배후를 봉하마을로 보는 것은 아니냐?’는 섣부른 추측도 나올 법한 상황이다. 촛불시위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청와대와 작은 청와대(봉하마을)’의 정면 충돌 이상징후 양상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청와대에서 봉하마을로 200만건이 넘는 방대한 국가자료를 복사해 가져갔다. 해킹으로 인한 국가기밀 유출이 우려된다.’

‘아니다. 이명박 청와대와 협의를 마친 내용이며 (유출 자료는) 국가기록원의 자료에 이(e)지원 시스템을 통해 접속하기 전까지 잠정 보관하고 있는 것뿐이다’


한나라 사무총장 선제공격

청와대 자료 유출을 놓고 청와대와 봉화마을(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후 거처, 일명 작은 청와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날선 공방이다.

한나라당 권영세 사무총장은 “(청와대 유출자료 200만건은) 우선 100% 반환되어야 한다”며 “필요하면 검찰조사도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과 봉하마을 사저 압수수색에 대한 필요성을 집권당 사무총장이 직접 제기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도 “봉하마을에 있는 200여만건 자료는 국정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기록이다. 특히 군사분야의 경우 유출되면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이 가져간 청와대 자료 200여만건은 현재 독립 네트워크에 저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미 봉하마을 사저 지하에 30억원을 들여 인터넷 운용 시스템을 만든 바 있다.

검찰 관계자는 “봉하마을 사저 지하에 인터넷 200여 회선을 설치했다는 소문이 도는데, 중복접속을 감안하면 훨씬 많은 회선을 사용할 수 있다. 해킹의 우려뿐 아니라 누군가 인터넷을 통해 자료를 유포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봉하마을 측은 “인터넷 운용 시스템을 설치한 것은 토론 사이트를 개발하기 위한 것이며, 청와대 자료가 저장된 네트워크는 다른 네트워크와 차단돼 있어 해킹의 우려가 없다”고 반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재 ‘민주주의 2.0’이란 토론 사이트를 시범 운영 중이며 이 사이트는 시민주권 운동차원에서 공론을 모으는 장을 만들기 위한 것으로 정치적 목적은 없다는 것이 봉화마을 측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 측이 왜 200여만건의 청와대 자료를 가져갔는지 의문이다. 노 전 대통령뿐 아니라 참여정부 청와대 직원들이 내부자료 불법유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는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회고록 작성’ 설득력 약해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통합민주당 이광재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을 쓰기 위해서 그 자료를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보수진영은 “누가 회고록을 쓰려고 청와대 모든 자료를 가져간 적이 있었던가? 이 의원의 '회고록' 운운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태도”라며 반발했다.

특히 200만건이 넘는 국가 자료가운데는 40만 명의 인사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노 전 대통령 측의 이 같은 주장은 더욱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 인사 파일에는 언론인 750여명을 포함한 민간인 35만 명과 공직자 5만 명 등 40만 명의 인적사항이 기록돼 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인사 파일의 경우, 공적 부분뿐 아니라 사생활까지 거론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학창 시절 교우 관계는 기본이고 주거지를 옮긴 사유나 재산 형성 내용까지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봉하마을 ‘민주주의 2.0’의 정체

일부에선 MB정부가 인사를 할 때 마다 인사 대상자들에 대한 정보가 언론이나 인터넷에 공개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 당국자는 ‘2006년 말부터 축소판 청와대 계획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촛불시위 배후설을 주장하는 이들이 봉하마을로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에선 200만건의 방대한 국가 자료와 노 전 대통령이 사저에 구축한 인터넷 운용시스템을 연관 짓기도 한다. 촛불을 통해 사이버 정치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의 복심 안희정씨는 최근 민주당 경선에서 “민주주의 2.0 정당을 통해 새로운 민주개혁 세력을 결집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여권 관계자는 “친노 사이버 정당이 탄생할 지도 모른다. 사이버 정치에서 총알은 ‘돈’보다 ‘고급 정보’다. 유출된 200만 건의 국가자료와 결합하면 촛불 시위에서 나타난 것처럼 이 정권 내내 국정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희정 씨는 이에 대해 ‘민주주의의 진화, 민주주의 2.0-촛불광장에서 배운다’는 블로그 글을 통해 “아무도 주동하지 않고, 아무도 사주하지 않았다. 결국 모두가 주동자고 모두가 계획자인 촛불집회”라며 배후설을 일축했다.

그러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촛불 배후설은 수그러들기는커녕, 급기야 한나라당이 촛불 배후로 반미투쟁세력을 거론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27일 “촛불집회주도 대책회의 핵심세력은 대선을 앞두고 출범한 남북공동연대 등 진보연대로 골수 반미단체”라며 촛불배후를 정조준 했다. 때 맞춰 검찰은 KBS 정연주 사장 소환과 조.중.동 광고불매운동 배후 수사에 이어 MBC PD수첩에 대해서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촛불배후를 ‘국가 정체성을 흔드는 세력’으로 규정했다. MB는 24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시위나 불법 폭력시위는 엄격히 구분해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6일 대국민담화에 나선 한승수 총리와 어청수 경찰청장도 “불법시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친노 386 이광재의 변명

여권 관계자는 “DJ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좌파 집권 10년에 대한 평가를 두려워하는 세력이 있다. 그러한 세력이 촛불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야권과 시민단체가 강력 반발하면서 정국은 급랭되고 있다.

촛불시위는 다시 과격해졌다. 그러나 여권의 강경 기류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MB정부는 참여정부와의 ‘국가 정체성 공방’에서 승리하면서 탄생한 정부다.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행위를 그냥 넘길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제 촛불 2라운드는 청와대와 작은 청와대(봉화마을)의 극한 대립과 맞물리면서 전직 대통령 사저 압수 수색이란 극단의 시나리오가 무르익고 있다.


오경섭 기자 kbswav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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