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식자 길 잃은 민주당

‘거리에 있자니 현실정치 외면이라는 비난을 듣고, 등원하자니 명분이 없다’ 민주당이 고민에 빠졌다. 한나라당에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을 국회등원 전제조건으로 내걸었으나 반응이 없고 지난 6·10 항쟁 21주기 집회를 정점으로 한풀 꺾인 촛불집회에서도 제1야당의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등원론에 힘이 실려 당내외 압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갈등은 단순히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이 아니다. 양당은 쇠고기 정국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샅바싸움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다.
야권 동조를 함께 했던 자유선진당도 등원의사를 밝혀 민주 노동당과 함께 멀고먼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태다. 국민과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등원 시기와 방식만 남겨 두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의 정신적 지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난 4일에 이어 12일 손학규 대표에게 ‘국회 등원론’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국의 어려운 현안이 있을 때 마다 마지막 상담처가 된 김 전 대통령의 말은 번번이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또한 여야를 막론하고 당내에서도 촛불시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촛불 시위를 통해 이미 빼먹을 것을 거의 빼먹었기에 서서히 등원을 해 한나라당과 자리다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난 7일 촛불집회에 대해 “정권퇴진운동으로 번지는 것은 막아야한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다.
조건부 등원 대세론 탄력
야당의 동맹도 깨졌다. 자유선진당이 독자 등원결정을 했기 때문이다. 선진당은 지난 12일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며 18대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는 다른 야당들을 향해 ‘조건 없는 등원’을 주장했다.
이어 지난 12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통합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가진 첫 회담에서 쇠고기 정국의 해법은 접점을 찾지 못했다. 양당 원내대표는 ‘분위기가 좋았다’는 관례적인 말을 했지만 회의장 밖으로는 탁자를 내리치고 고성이 오가는 소리가 그대로 들려나왔다.
이처럼 양당이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18대 국회는 살인적인 물가와 화물연대 총파업 등 산적한 민생현안을 다뤄야 할 국회가 의장단조차 선출하지 못 한 채 표류하고 있다.
민주당이 모처럼 갖게 된 정국 운영의 행운 지렛대를 놓고 여론의 논총을 피해 국회의장단 선출 등 국회 개원에 필요한 최소한의 절차에는 참여하되 상임위원회 개편과 상임위원장 배분 등을 포함한 원구성 협상에서 최대한 실리를 얻어내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도 촛불 시위 현장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야권에게 압박하는 카드를 내놓고 ‘BBK관련 사건을 고소·고발 취하는 등 채찍과 당근을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나라당의 본심은 ‘개원’과 ‘원구성’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한꺼번에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모두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민주당은 촛불시위에 편승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해보려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고, 한나라당은 과반수 여당임에도 불구하고 야당을 등원으로 유도하는 정치력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당은 원칙적으로는 방법론의 차이일뿐이지 국민적 불안을 해소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는 원론적이 입장만을 보이고 있다. 결국 큰 뜻은 같지만 작은 이해관계 때문에 쉽사리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킨 꼴이다.
한나라 vs 민주 끝없는 샅바싸움
이에 대해 민주당의 관계자는 “무작정 등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쇠고기 협상에 따른 30개월 미만의 소를 수입하는 있도록 하는 가축전염병 예방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며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한나라당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대미협상결과에 따라서 민주당의 등원시기가 앞당겨 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본격적인 힘겨루기가 예상되고 있다.
쇠고기 촛불 민심에 편승해 쉽게 당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민주당. 민주당은 등원거부라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위태한 뱃머리를 돌려 국회로 진입할까.
거칠게 올라가는 물가인상의 현안이 그대로 놓여 있는 텅 빈 국회. 서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지는 민생고에 턱밑까지 차오르는 가픈 숨을 몰아쉬고 있다.
백은영 기자 about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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