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증원 후 취업 이어지지 않으면 정책 희생양 될 것”
“의사 파업 장기화, 나머지 인력을 갈아 넣는 꼴”
![예비 간호사들의 다짐 [뉴시스]](/news/photo/202008/419869_336791_1857.jpg)
[일요서울ㅣ신수정 기자] 한 달째 진행된 ‘전공의·의사 집단휴진’이 8월 4주차에 ‘전면파업’으로 돌입하자 우려하던 의료공백이 현실화됐다. 여기에 광화문 집회發 코로나19 감염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전국 신규 확진자 수는 최대 400명대까지 육박했다. 코로나19 치료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라 국무총리까지 나서 사태 봉합에 나섰지만, 정부와 의료계 간 팽팽한 대립은 여전하다.
정부의 의료 정책 강행과 의사들의 총파업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지게 된 간호사들. 일요서울은 서울 소재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재직 중인 간호사 A씨를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24일과 27일 이틀에 걸쳐 유선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간호사 A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코로나19 사태’ 현장의 업무 강도는?
▲ 응급실의 경우 중증도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간호사 1명이) 하루 6~8개 병상을 본다. 바쁠 때는 24명까지도 감당한다. 여기에 코로나 의심환자 구역이 따로 있어서 한 사람을 볼 때마다 작업복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한다. 통상 8~20명 정도를 보면 50번 정도는 갈아입고, 과장해서 100번은 갈아입는다. 병상을 보는 일과는 별개로, 응급실을 오가는 환자들도 있다 보니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나서는 업무 가중도가 2배 이상 늘었다. 특히 스크리닝(질병 분석 과정)에서 “사랑제일교회 다녀오셨냐”고 물어보면 아니라는 대답만 반복하시다 겨우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격리에 들어가는 사례부터 해서 진료·회진 요청에 대한 불평도 많다. 진상 환자가 발생하는 비율이 2~3배는 늘었다. 납득시키고 넘어가려고 하는데 컴플레인으로 업무가 계속 밀리고 쌓이게 되니 속으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 ‘전공의·의사 총파업’ 이후의 업무 변화는?
▲ 전공의 파업하면서 원래 받았어야 하는 환자들을 받지 못했다. 병원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총파업 이전에는 교수들과 전공의들이 돌아가면서 당직도 서고 응급실과 중환자실이 운영되도록 해 왔는데, 지금은 외래에서 응급실로 내려보내지 않고 귀가시키면서 오히려 업무 가중이 줄어들었다. 응급실 입구에서는 ‘이제 정말 중환일 경우에만 받겠다’, ‘경환은 받을 수 없다’ 하면서 돌려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참 파업 초반에는 사람들이 많이 왔었는데 전면파업 돌입하고부터는 운영이 어려우니까 환자를 안 받기도 했고,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에서는 해당 구역을 폐쇄하면서 환자를 돌려보내기도 했다. 현재는 응급실에 총 60개 병상이 있는데 총 20개 병상만 볼 정도로 줄었다.
- 간호사의 입장에서 ‘전공의·의사 집단휴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의사 수만 무작정 증원시켜서는 유지 못 한다는 의사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편이다. 병원 측에서는 이익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고용을 하지 않는다. 정책적으로 일정 인원을 보장해 주는 게 아닌 이상, 무분별하게 증원하고 나서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이 오고 결국 정책의 희생양이 될 거라고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호사의 입장에서 의사 파업에 의해 일정 부분 역할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현 상황에서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선다고 교수들이 업무를 메우는 것과는 별개로 파업 자체에서 오는 후폭풍들을 타 직종의 희생으로 보완하고 있다. 파업이 너무 장기화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나머지 인력을 갈아 넣는 꼴이다. 검사를 못 받고 돌아가는 환자들도 있고, 타 직종에서 피해를 감수하면서 진행하고 있는 상황도 있어서 마냥 응원하지는 못하고 양가감정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 전공의 업무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 의사 ID로 로그인해서 의사명으로 업무를 대신 보는 ‘PA’라는 시스템이 있다. 의사 수가 부족하니까 실제로 흉간 삽입을 한다든지 의사들이 실질적으로 치료하는 침습적인 처지(액팅)를 간호사가 대체할 수 있는 제도다. 다른 국가들에선 PA가 1~2년의 교육을 이수하고 정식으로 인정받는데, 한국에서는 의협의 반대로 인정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실무에선 대학병원들, 작은 병원들에도 PA간호사가 많다. 전공의 공백으로 인해 PA간호사들이 대신 회진을 다니고 있다. 또 중요한 처방 결정은 할 수 없어서 ‘환자가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한다, 다른 랩, 피검사가 필요하다’ 등을 목록화해서 교수한테 노티(상급자에 업무를 넘기는 것)를 한다. 기존에는 전공의가 80% 하면 PA간호사들이 드레싱(상처나 외상부위를 소독하는 행위)이라든가 간단하면서도 필요한 업무 20% 정도 담당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전공의 업무를 PA간호사들이 다 대체하고 있다.
- 간호사들이 전공의들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의료사고’가 예상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데?
▲ 결론적으로 매니지(환자의 질환 및 치료 과정 관리)에서 자질구레한 일들이 차질을 빚을 수는 있다. 하지만 PA간호사들이 업무를 대체한다고 해서 환자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일로 번지는 경우는 없다. 일부 여론에서 ‘생명 갖고 장난치는 거 아니냐, 믿고 맡겨도 되는 거냐’ 하는 분들이 계신데 국민의 생명에 위협이 되는 일로 커질 것이라는 의구심은 언론에서 과장되게 비춘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 대다수 국민 여론은 ‘전공의·의사 집단휴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인데?
▲ 사실 밥그릇 싸움은 맞다고 본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의협에서도 정책에 대한 우려로 내세운 주장은 사실이다. 시스템이 문제라 생각되면 처우 개선에 돈을 더 들이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다만, 언론에서 정부와 의협의 입장 모두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측면도 있다. 그런 데다 서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극에 치달아서 정부-의료계 싸움이 장기화되는 것이라 본다. 거기다 실제로 병동 몇 개만 열고 환자 볼 의사도 없고 PA간호사들이 대신 처방하고 있다. 이런 것은 좀 잘못된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의협 쪽이 너무 과하게 강경 대응하고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 간협에서도 지난 26일 ‘의사 진료거부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냈는데?
▲ 간협 자체에서 목소리를 냈다기보다 젊은간호사회, 행동하는 간호사회 등 분화된 단체에서 먼저 의견을 내고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니까 의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주변 동료들은 의사 총파업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고, 최근에는 사직서까지 내니 파업이 좀 과한 처사가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전공의·의사 총파업’이 더 길어진다면 앞으로의 상황은 어떻게 예상하는가?
▲ 너무 길어지면 소위 말해 개판이 될 거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진짜 죽는 환자도 발생할 것이다. 과거에도 의약 분업 관련해 파업할 때 수천 명 죽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파업이 더 길어지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3차 병원에서 매니지(환자의 질환 및 치료 과정 관리)를 내리고 소견서를 통해 2차 병원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파업으로 인해 종합병원, 요양병원에 해당하는 2차 병원에서 진료를 보려는 환자들이 몰리고 3차 병원의 일을 대체하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초반에 지지하던 의료계 동료들도 어느 순간 등을 돌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은 중도를 지키고 있는데 장기화되면 파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이 변할 것 같다. 본인들도 빨리 파업 끝내고 정상 진료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파업할 동안 환자들은 누가 볼 것인가? 그런 맥락에서 정부와 의협이 유연하게 중간 합의점을 찾아가야 하는데 서로 대립만 하고 있으니 문제가 많다 생각된다.
신수정 기자 newcrysta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