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포위된 MB, 박근혜의 선택은?
촛불에 포위된 MB, 박근혜의 선택은?
  • 오경섭 기자
  • 입력 2008-06-17 11:15
  • 승인 2008.06.17 11:15
  • 호수 738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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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쇄신만으로 안 된다”

“Follow me!(나를 따르라)"를 외치던 이명박 대통령(MB)이 변신하고 있다. 6·10촛불시위 직후 “많은 생각을 했다”며 국민 앞에 다시 고개를 숙였고, 측근들을 청와대로 직접 불러 함께 고심하기 시작했다. ‘강부자(강남 땅 부자),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S(서울시청)라인’을 버렸고, CEO정치를 버렸고, 독선도 버렸다. 청와대와 내각을 쇄신하고, 민심을 끌어안고, 여의도 정치도 배우려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민심의 촛불을 끄긴 역부족이다.

특단의 카드는 쇠고기 재협상과 박근혜 전 대표, 특히 ‘박 전 대표 총리 추대설’은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당 대표 추대설’까지 더해지고 있다. 과연 촛불에 포위당한 MB는 어떤 승부수를 던질 것인가?

여권의 핵심 A 의원은 최근 MB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A 의원은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돌리고 있다”며 “대통령이 말할 게 있으면 수행비서관을 통해 언제든지 전화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MB는 변신 중

MB와 가까운 B씨의 경우 MB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은 후 청와대에서 장시간 독대를 했다. 그는 “대통령은 인적 쇄신안 발표 등 정국 해법을 놓고 고민 중이셨다. 조만간 특단의 결심을 하실 것 같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MB는 B씨와 독대하기 전에 정태근, 권택기, 강승규, 홍준표 의원 등도 차례대로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B씨는 이상득 의원과도 최근 잦은 접촉을 가졌다. B씨는 “박 전 대표에게 총리직을 제안할 경우 박 전 대표가 수락할 것 같으냐?”고 물은 뒤 “당 대표 추대도 유효한 카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MB의 스타일이 변하면서 ‘박근혜 추대론’공방이 정중동(靜中動), 조용한 가운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남자’ MB는 최근 확실하게 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인사팀에 ‘비 영남, 비 고려대, 재산 30억원 이하’라는 세 가지 인선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안다”며 “이번에도 ‘고소영, 강부자’ 논란이 나오면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MB는 여의도에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대통령 실장이 교체될 경우 후보로 윤여준, 맹형규, 박세일 전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수석과 내각에도 박형준, 권오을,정종복, 홍문표 전 의원 등 정치인 기용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효율성을 앞세운 ‘탈 여의도 실험’의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여권 권력 진공상태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취임 초반 청와대와 내각에서 당을 배제한 채 캠프중심으로 권력을 짜고 물갈이 공천을 통해 기존 정치세력의 교체를 시도했다가 권력기반인 여당 내 균열과 소통에도 실패했다”고 분석했다.

여권의 균열은 4.9총선에서의 ‘55인의 난’에 이어 최근 ‘이상득-정두언, 소장파의 권력투쟁’으로 절정에 달했다. 결국 MB는 박영준 비서관을 퇴진시켰다. 이상득 의원과 정두원 의원도 앞으로 전면에 나서기 어렵게 됐다.

여권에선 “새로 뽑히는 당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 당 공식 라인이 일단 권력 핵심부의 진공을 채울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함께 권력 핵심부에 박근혜 전 대표를 세울 가능성도 제기됐다. MB와 박 전 대표의 관계는 1· 23 청와대 회동에서의 동반자 선언에서 4.9총선을 거치면서 서로 믿지 못할 사이로 벌어지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쇠고기 정국을 더욱 혼란하게 만들었다.

소설가 이문열씨의 표현대로 ‘위대하고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촛불시위)’에 혼쭐이 난 MB가 친 한나라 지지층의 재결집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중 하나가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계회복이다.

보수 논객인 류근일씨는 “대통령은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장수의 머리를 가져야 하는데, 이 대통령은 아군인 이회창씨와 박 전 대표는 짓누르고 야당과 진보세력엔 숙이고 들어갔다”며 “범보수 진영을 아우르는 '동맹의 정치, 열림의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전 대표에 대한 ‘총리 추대설, 당 대표 추대설’은 이 선상에 있다.


‘박근혜 총리설’ 현실적 한계

대통령실장으로 거론되고 있는 윤여준 전 여의도 연구소장은 “박 전 대표가 총리를 맡는다면 경선 이래의 양측 갈등이 봉합되면서 당이 안정될 것이고 민심을 회복하는 정치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MB가 박 전 대표를 총리로 앉히면 당ㆍ청 간의 갈등 해소와 권력 분점 등 상징성으로 인해 민심을 수습할 수 있고, 쇠고기 파동에 따른 민심 이반 해소의 단초를 마련할 수도 있다.

“큰 권력은 사람을 두렵게 만들지만 그 큰 권세를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그것을 소유한 당사자이다” 이 글은 1990년 9월 2일 박근혜 전 대표가 썼다.

글의 표현대로 박 전 대표는 권력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안다. 때문에 박 전 대표는 MB측에서 던지는 ‘총리직’ 권력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자칫 독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도 "현재로선 박근혜 총리카드는 실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박근혜의 최종선택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향후 제안이 오더라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친박계 핵심은 "박 전 대표는 총리를 받을 생각이 없다. 서로 신뢰관계가 회복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총리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라고 일축했다.

때문에 ‘박근혜 총리 추대’는 지난해 12월29일 MB와 박 전 대표의 회동 이후 불거진 ‘총리론’과 5.10 청와대 회동 직후 터져 나온 ‘당 대표 제안 진실게임’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5.10 회동 직후 “대통령이 정식 제안을 하지 않았다(박 전 대표)”, “박 전 대표가 제의를 거절했다(청와대)”는 식의 공방전만 난무했을 뿐 성사된 것은 없었다.

결국 MB는 ‘박근혜 카드’와 인적쇄신 관련 최종 결단을 내리기 전에 민심의 동향부터 먼저 파악해야 한다. 정국 안정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열쇠는 쇠고기 재협상이다. 미국과의 쇠고기 재협상에 대한 결단이 없다면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장훈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제 신인도 손상 등을 이유로 쇠고기 재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국내에서는 더 많은 것을 잃을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6ㆍ10 항쟁 집회에 이은 효순ㆍ미선양 추모제 등 ‘촛불’은 꺼질 기미가 안 보인다. 촛불이 진정되는 시점에 극적 효과를 노린 인적 쇄신안이 공개될 것이고, ‘박근혜 카드’의 진실도 그 때 드러날 것이다.



#박근혜식 ‘위기의 정치’

위기 속에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고 있다.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정치사에서 한나라당은 위험의 순간마다 항상 박근혜 전 대표를 불렀다.

그리고 박 전 대표는 그 때마다 위험을 기회로 바꿨다.

한나라당의 첫 번째 위기는 ‘달성 대첩’으로도 불리는 1998년 4·2 재보선, 당시 한나라당은 정권을 뺏긴 직후인데다 DJ지지도가 9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정권교체 후 처음 치러지는 부산과 대구, 문경 재보선 마저 패하면 당이 무너질 위기였다. 특히 대구 달성은 여권의 엄삼탁 후보가 탄탄한 조직력과 철저한 지역관리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도저히 승산이 없는 이 싸움에 박 전 대표는 구원투수로 등장, ‘동화사의 눈물’로 대역전을 일궈냈다. 결국 4·2 달성대첩이 2000년 16대 총선 한나라당 승리의 디딤돌이 된다.

두 번째 큰 위기는 2004년 4·15총선, 탄핵 역풍으로 20-30석도 건지기 힘겨운 상황에서 3·23전당대회를 통해 박순천 이후 최초 여성당수에 오른 박 전 대표는 천막 당사의 신화를 일궈낸다.

박 전 대표는 121석이란 개헌 저지선 확보에 이어 참여 정부 때 치러지는 모든 재보선에서 불패신화를 만든다. 그리고 지난 대선, BBK폭풍과 이회창 전 총재의 등장으로 위기에 몰린 MB는 박 전 대표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만약 경선과정에서 갈라진 박 전 대표가 외면하면 대선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이회창 후보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MB를 지지, 결국 정권교체를 일궈낸다.

그리고 2008년 6월, 국정 지지도 10%대, 이상득-정두언의 권력투쟁, 쇠고기 정국과 촛불로 포위된 MB는 또 다시 박 전 대표에게 SOS 구조신호를 보내고 있다.

MB와 가까운 B씨의 말대로라면 MB는 현재 ‘총리 아니면 당 대표 카드’를 놓고 마지막 고심 중이다. 최근 MB를 면담한 여권 고위관계자 역시 “대통령이 변했다”며 “대통령이 ‘이제 정치를 조금 알 것 같다. 정치라는 게 나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만나서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보다 몇 배는 힘들다. 그때는 행정만 열심히 챙기면 됐지만 이제는 정치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연 박근혜식 ‘위기의 정치’는 ‘위기의 남자’ MB를 구할 것인가?

오경섭 기자 kbswav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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