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 ‘당대표 대세론’ 위기 징후
박희태 ‘당대표 대세론’ 위기 징후
  • 오경섭 기자
  • 입력 2008-06-10 09:23
  • 승인 2008.06.10 09:23
  • 호수 737
  • 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류하는 쇠고기 정국‘ 박근혜-정몽준 연대설’ 돌출

한나라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박희태-정몽준(MJ)양자구도’에 지각변동 움직임이 일고 있다. 6·4재보선 참패와 촛불시위 격화, 야당의 국회 등원 거부로 정국이 흔들리면서 강력한 여당 대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인적쇄신론의 칼날이 이상득 의원 등 당내 주류를 향하면서 관리형 박희태 카드에 회의론이 일고 있다. 당내 쇄신파가 독자후보 추대론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MJ는 당권 행보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친박 복당으로 확실한 당권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는 MJ와 박희태 전 부의장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박근혜-MJ 연대설’까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이미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대선과정에서 연대를 모색한 바 있다. 만약 ‘박-MJ 연대’가 성사되면 이는 차기 대권의 필승 카드다. 선의의 경선 흥행마저 성공한다면 미국 대선의 ‘오바마-힐러리 연대’를 뛰어넘게 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4일 한나라당의 재보선 불패신화가 4년여 만에 무너졌다. 17대 대선의 압도적 승리와 18대 총선의 과반 의석 확보의 축제는 이젠 한때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당정청엔 위기감이 확산되고 촛불시위는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20% 아래로까지 떨어진 민심은 좀체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MB(이명박 대통령) 직계를 중심으로 ‘이대로 안 된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차기 당권경쟁의 변수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 한 재선 의원은 “난국을 헤쳐 나갈 추진력과 신선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새 지도부가 돼야 한다”며 강한 여당론을 제기했다.

재보선 직후 ‘남원정(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등 당내 쇄신파는 7.3 전당대회에 독자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강한 여당론’ 박희태 입지 좁아져

제2의 노사모라 불리는 선진국민연대도 지난달에 이어 5일 여의도 회합을 갖고, MB정부 지지선언과 함께 강한 여당 지도부를 주문했다. 친여 보수단체들도 촛불집회가 열리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10일과 14일 맞불 집회를 갖기로 하는 등 여권이 강경 기류로 흐르고 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 차기 당권은 ‘박희태 대 정몽준’ 양자 구도 속에 박희태 대세론이 주류었다. 그러나 ‘강한 여당론’이 확산되면 ‘관리형 대표’로 이상득 의원 등 당 주류가 밀고 있는 박 전 의원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물론 주류 측은 “박 전 의원은 관리형 대표가 아니라 화합형 대표”라며 적극 반박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박 전 부의장 캠프에서부터 이상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캠프 관계자는 6일 “이 대통령의 중국방문 직후부터 대세론이 흔들리고 있다”고 밝혔다. 박 전 부의장은 지난달 하순 여의도 대하빌딩 411호에 캠프를 차리고 실무준비단을 가동했다. 지난해 MB캠프의 언론특보로 호흡을 맞춘 김효재 의원이 실무준비단 단장을 맡았다.

특히 캠프가 지난 대선 때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대선 후 포항인맥의 핵심 박창달 전 의원이 사용하던 사무실이라 한때 MB지원설까지 흘러나왔다.

이와 관련 사무실 한 관계자는 “박 전 부의장이 별도 사무실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 우선 사용하시는 것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MB직계 당내 조직인 국민성공실천연합 관계자도 “우리가 박 전 부의장을 막후 지원한다는 소문은 문자 그대로 소문 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고 밝혔다.

인사쇄신론 대두와 쇠고기 정국으로 이상득 의원 등 원로급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는 것도 박 전 부의장 대세론을 흔들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 측 역시 박희태 지원설을 일축했다.

친박 측 한 관계자는 “박희태 전 부의장이 친박복당에 유화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권지원 관련 밀약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희태 전 부의장은 당 대표 출마선언을 예정보다 미루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부의장측은 이에 대해 "지금은 당 뿐아니라 여권 전체가 위기상황으로, 민심을 수습하는 게 급선무"라며 "출마 선언을 언제 할 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 측은 주중 선대위를 꾸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캠프에 참여하는 현역 의원은 현 상황으로 보면 2-3명에 불과할 전망이다.

이에 비해 열세에 놓였던 MJ는 6.4재보선 직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MJ는 여권 내부에서 거론된 '인적 쇄신' 범위에 대해 5일 "청와대든 내각이든 민심 수습을 위해 꼭 필요한 분들만 남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봉책은 곤란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 알아서 하실 것으로 믿는다"며 이상득 전 부의장 등 주류를 겨냥했다.


열세 MJ 당권 행보 물밑 시동

여권 관계자는 이를 “당 대표 경선 주자로서 자기 목소리를 확실히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분석했다. 그는 지난주 안효대 의원(울산 동구)에게 캠프 실무를 총괄하게 했다.

지난해 12월 한나라당에 입당, 당내 입지가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해 소속 의원들과의 접촉을 넓혀가고 있다. MJ 측은 ‘현재까지 적극 지지 입장을 밝힌 의원만 해도 10여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의원 숫자에서 박 전 부의장을 앞서고 있다. ‘명실상부한 당대표’란 구호를 내걸고 ‘정몽준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MJ 측은 이와 함께 박근혜 전 대표와의 연대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J 측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기 때문에 박 전 부의장에 비해 크게 뒤지는 대의원, 당원 표만 어느 정도 만회해도 승산이 있다”고 내다 봤다.


박근혜의 선택은?

따라서 당내 입지가 확고한 박 전 대표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친박 복당으로 한층 결집력이 강화될 박 전 대표 측과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등을 돌릴 수 없는 입장이다. 의원들과의 맨투맨 접촉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MJ 측이 청와대와 여권 주류를 향해 ‘인적 쇄신론’을 거듭 강조한 것 역시 박 전 대표와의 관계 회복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즉 여권 주류가 박희태 전 부의장을 묵시적으로 지원하는 데 대한 섭섭함이 베여있다는 주장이다.

MJ 측 관계자는 “지원받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치열하게 싸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대권 경쟁자라고해서 박 전 대표와 연대하지 말란 법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두 사람 간 선의의 경쟁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미 2002년 대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와 MJ는 양자회동을 통해 연대를 모색한 바 있다. 회동 직후인 2002년 11월 9일 한나라당과 매래연합의 합당으로 두 사람 관계는 냉랭해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나라당이란 한 지붕아래서 살림을 차렸기 때문이다. 물론 MJ가 차기 대권후보란 것이 박 전 대표에겐 걸림돌이다.

그러나 MJ지원이 청와대나 여권 주류의 입김을 차단하고 차기 대권을 확실한 양자구도로 가져가기 위한 방편이 될 수도 있다.

친박 관계자는 “MJ란 드러난 상대와의 싸움이 오히려 쉬울 수 있다. 오바마와 힐러리의 경쟁처럼 경선 흥행을 통해 한나라당 재집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처럼 7·3 전대를 앞두고 상대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보폭이 넓어지자 여권 주류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박근혜-MJ 연대’는 여권 주류가 가장 우려할 만한 카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차기 대권 주자간 결합은 여권 내 힘을 급속도로 쏠리게 하면서 집권 초 레임.덕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몰고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당대표 게임’ 내막

여권 관계자는 “박 전 대표와 정 의원이 손을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만에 하나라도 그렇게 되면…”이라고 밝혔다. 이는 박 전 대표의 결정에 따라서 정국 구도가 급변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때문에 한나라당은 가급적 박 전 대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주중 친박인사 복당문제를 매듭짓기로 했다. 복당심사위에서 먼저 받아들일 사람을 정해 통보하기로 한 것이다.

당초 5일 발족한 복당심사위원회에서 복당 신청을 받은 뒤 심사 과정을 통해 선별 허가한다는 방침을 바꾼 것이다.

최대한 복당시간을 늘려 7·3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을 낮추겠다는 지도부의 당초 의도 역시 바뀐 셈이다.

이와 함께 박근혜 총리설이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것도 박 전 대표의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려보자는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이상득 부의장은 지난 5일 마포 모 호텔 등에서 측근들과 잇따른 접촉을 갖고 인적 쇄신 폭과 박 전 대표와의 물밑 접촉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는 ‘당이 복당 대상자를 어떻게 선정하는지 보고 최종 입장을 밝힐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친박 무소속 연대의 좌장 김무성 의원 역시 ‘누가 복당 대상자인지를 보고 거취를 결정하겠다’고 압박했다.

상황에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청와대와 여권 주류를 향해 극단의 카드를 던질 수도 있고 MJ와의 연대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박근혜-MJ 결합’은 정계 개편의 핵이자 경선흥행을 통한 차기 대선 필승카드가 될 수 있다.

이제 박근혜 전 대표에게 원칙을 앞세운 ‘통첩과 침묵의 정치’에서 벗어나 ‘종합 예술의 정치 쇼’를 펼쳐야 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다시보는 ‘박근혜-MJ 연대’ 뒷담화

16대 대선 직전인 2002년 11월 6일, 한국미래연합 대표를 맡던 박근혜 전 대표는 국민통합21 후보이던 MJ와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오찬 회동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MJ는 양당 합당 뒤 박 전 대표가 통합 정당의 대표를 맡는 연대를 제의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단호히 거절했다. 사유는 ‘정체성 문제’였다. 국민통합21의 강신욱 단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호를 맡은 전력과 관련 “그런 인사가 핵심으로 일하는 정당이라면 그 정당에 모인 사람들의 성향과 연관 짓지 않을 수 없으며, 당의 역사관과 관계되고 정책으로 반영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후보와는 정치적 소신이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10월 중순 기자간담회에서도 "정 의원을 지켜보니까 정체성을 잘 모르겠고 내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가는 것 같아 지금으로선 (연대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 박 전 대표가 연대 거절 사유로 밝힌 ‘정체성과 정치적 소신’, 돌려 말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면 박근혜-MJ연대가 가능할 수 있다. MJ는 당시 “나를 도와주는 분이 우리 당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은 큰 불찰이라고 생각한다”며 “대선 전에도, 대선 후에도 박 대표는 계속 만날 생각”이라며 박 전 대표에 대한 구애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경섭 기자 kbswave@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