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의 눈이 2008년 미국 대선에 집중되고 있다. 지구상 최고의 권력국가인 미국에서 부부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폭풍의 눈은 힐러리 로댐 클린턴. 미국의 저명 언론인 칼 번스타인이 펴낸 <힐러리의 삶>은 퍼스트레이디에서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른 힐러리와 관련한 저서 중 단연 독보적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았던 번스타인은 8년여에 걸쳐 200여명에 달하는 힐러리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야망가로만 그려졌던 힐러리의 삶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클린턴 대통령 부부가 차를 타고 가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주유소에 들르게 되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주유소 사장이 힐러리의 옛 남자 친구였다.
돌아오는 길에 클린턴이 물었다. “만일 저 남자와 결혼했으면 지금쯤 당신은 주유소 사장 부인이 돼 있겠지?”
힐러리가 되받았다. “아니, 저 남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어 있을 거야.”
미국 대통령 클린턴의 아내가 아니라 힐러리 로댐으로 기억되는 여자, 힐러리.
힐러리의 삶
힐러리는 영국 웨일즈에서 건너온 이민 1세대의 아들인 고집 세고 괴팍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정치적으로는 골수 보수파였고 아이들을 칭찬하는데 놀라울 만큼 인색한 아버지였지만 힐러리는 그런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더 자라서는 어머니에게 욕설을 퍼붓고 가족 위에 군림하는 아버지의 태도를 참을 수 없어 수년간 분노를 삭이며 살았다.
그녀가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해 취한 태도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에 기대는 것이었다. 이런 태도는 이후 남편에게도 똑 같은 방식으로 적용됐다.
웰즐리대학에 간 힐러리는 천성적인 따뜻함과 유머감각, 확실한 일처리 능력 등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으며 점진적으로 정치적 성향을 강화해갔다. 베트남 반전 운동에 가담했고 소수인종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사소하지만 어렵고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진취적 성향은 리더로서 힐러리의 강점이 됐다.
힐러리는 백악관으로 입성하기 직전, 20대 때 가장 큰 환희를 느낀 적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녀는 주저 없이 “빌 클린턴과 사랑에 빠진 일”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물론 보통은 ‘환희’라는 말을 절제와 통제, 그리고 성격의 억제가 필요했던 경우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녀가 1971년 봄에 스스로 선택한 길에 대해서는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고통의 계절
두 사람의 동맹에 치명적인 상처를 낸 것은 르윈스키 스캔들이었다. 그날 오후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보고서의 내용은 대충 예상했던 내용의 정도를 훨씬 넘어 서 있었다.
보고서는 대통령과 르윈스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지나치게 자세히 설명하면서 온통 선정적이고, 거의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표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푸른 드레스’ 일화는 보고서에서 밝힌 폰섹스, 섹스 도구로 사용된 여송연, 극회의 지도급 인사들과 이야기 하면서 받은 오럴섹스, 대통령이 서재에서 하는 자위행위들이 준 충격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그 순간, 힐러리는 “나는 남편을 믿는다”며 빌의 곁에 남았다. 이 사건은 힐러리에게 유난히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던 유권자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번스타인은 “힐러리의 변화 능력이 가장 돋보인 것은 르윈스키 사건이 일어난 때였다”며 “이제 그녀는 퍼스트레이디에서 체제주의적 상원의원으로의 탈바꿈에 성공함으로써 변화와 발전의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고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 6월 출간된 이 책에 대해 “2008년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그녀를 대통령 후보로서 받아들여야 할지를 결정하는데 고려해야 할 필수 요건들을 제시해준다”고 평했다. 평생에 걸쳐 야망을 실현해가는 한 인간의 적나라한 초상을 엿보는데 이만한 책을 또 만나기도 힘들 것 같다.
칼 번스타인 저 / 조일준 역 / 현문미디어 / 2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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