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MB와 동반자 관계는 없다”
박근혜, “MB와 동반자 관계는 없다”
  • 오경섭 기자
  • 입력 2008-06-03 08:35
  • 승인 2008.06.03 08:35
  • 호수 736
  • 2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B 취임 100일 지지도 최악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취임인사차 국회의원 회관을 방문, 박근혜 전 대표를 만나고 있다.

“복당문제 6월15일까지 결론 내겠다” “싫다” 박근혜 전 대표는 단호하다. 홍준표 신임 원내대표의 중재노력에 박 전 대표는 오히려 마음의 문을 더욱 닫아버렸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는 급기야 반정부 시위로 격화되고 있다. 제1야당은 장외투쟁을 선언했다. MB(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초 100일 지지율은 역대 최악이다.

‘1.23회군’에서 MB와 동반자 선언을 했던 박 전 대표, 그러나 한 측근은 “공천파동과 친박 복당을 거치면서 대통령과의 동반자 관계는 깨졌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이미 ‘오세아니아 구상’을 통해 국익과 민심을 따르는 ‘조건부 협력’의 단서를 달았다. 때문에 친박 복당 문제는 박 전 대표에게 악재가 아니라 ‘리모컨 정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따라서 6.4 재보선 결과에 따라 MB-박근혜 관계설정이 최대 고비를 맞을 가능성도 점차 농후해지고 있다.

김영삼 83.4%, 김대중 62.2%, 노무현 40.2%,

역대 대통령의 취임 초 100일 국민지지율이다. 그렇다면 530만 표차로 압승한 MB는? 문화일보와 CBS가 각각 지난달 28일과 29일 실시한 정기여론조사에서 20%대에 머문것으로 타나났다.


‘쇠고기 정치학’

MB의 주요 지지층이던 30~40대가 등을 돌리고 수도권과 영남 민심이 달아났기 때문이다.

MB에겐 최악의 성적표이지만 박 전 대표에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1.23 회군’때 ‘MB와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지만, 이후 공천 파동과 친박 복당 등 첨예한 갈등을 겪으면서 MB와 차별화했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두 분간 갈등은 박 전 대표를 민심 이반의 공동책임론에서 자유롭게 해 준다”고 분석했다.

미국산 쇠고기수입 개방 관련 장관고시 강행이후 여론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촛불집회에 5만여 시민이 참가했다.

통합민주당 등 야권은 장외 투쟁을 선포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똘똘 뭉쳐도 힘겨운 싸움이다. 때문에 홍준표 신임 원내 대표는 최대 현안인 친박 복당문제를 하루빨리 매듭짓기 위해 박 전 대표와 강재섭 대표를 오가며 중재에 나섰다.

이에 강 대표는 지난 달 29일 “6월 중순까지 복당 문제를 결론 내겠다"는 답을 내놓았고 홍 원내 대표는 절충안이라며 생색을 냈다. 쇠고기 고시 강행으로 국민적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복당과 관련해 더 이상 강력한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박 전 대표는 오히려 "지금 쇠고기다, 유가다, 민생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복당 문제를 갖고 왈가왈부할 시점이냐"며 5월말까지 가부간 결론을 내달라고 호통친 것으로 전해졌다. 자칫 자신에게 쏟아질지 모를 비난에 대해 선제공격에 나선 것이다. 동시에 4.9총선 직후인 11일 일괄복당 원칙을 밝힌 뒤 5월말까지 최고위원회의에서 구체적 로드맵에 대한 결론을 내 달라는 자신의 기조를 일관성 있게 유지했다.

친박 관계자는 이를 두고 “친박 복당문제는 ‘박근혜식 리모컨 정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한마디 던지면 당 안팎 친박은 물론 전체 정치권이 요동치는 형국”이라고 분석했다. 박 전 대표는 당 주류 측이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MB와 갈등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친박연대 송영선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이 순차적인 기준을 만들어 복당, 입당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한다면 친박연대도 다음 주초쯤 당이 갈 방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시계 바늘을 13년 전으로 돌려보자. 1995년 12월 5일 집권 민자당 대표 허주(김윤환)는 청와대에서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회동했다. YS가 당명을 민자당에서 신한국당으로 변경하고 제2의 창당을 선언하기 하루 전이었다. 당시 민정계와 공화계의 탈당이 잇따랐기에 일부 언론은 민정계의 얼굴인 허주의
탈당선언을 예상했다.


박근혜의 딜레마

그러나 허주는 회동 후 “정치는 종합예술이다. 깨고 부수고 나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안에서 바로 잡아 나가야한다는 생각으로 남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허주는 또 한번의 ‘킹 메이커’를 꿈꿨지만 이회창 전 총재로부터 팽(烹) 당하고, 결국 민국당이란 초라한 정당을 꾸리다가 병사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향후 행보 결정에 앞서 허주의 교훈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박 전 대표는 허주와 같은 ‘킹 메이커’ 역할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퀸’이 되어야할 입장이다.

만약 박 전 대표가 ‘안에서 바로 잡아 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면 지금부터라도 당내 역학관계에 눈을 돌려야 한다. 당장 18대 국회가 정식 개원하면 친이 성향의 수도권 초선 의원들이 대거 여의도에 입성한다. 이들 가운데 강경파들은 당외 친박계 당선자들이 조기복당 할 경우 ‘5월 거사설’을 계획한 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복당이 예상되는 친박 무소속 당선자들의 입장도 난처하다.

친박연대 관계자는 “당외 친박 진영의 교섭단체 구성은 불가능하다. 복당대상자들이 한나라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도 “여기서 다시 강수를 두면 갈수록 명분을 잃을 수 있어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당이 직면한 위기상황을 ‘나 몰라라’하고 ‘계파 챙기기’에만 몰두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차기 당권 구도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 대표는 ‘비둘기파’인 박희태 대세론이 형성되고 있지만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정몽준 의원의 급부상 가능성도 무시할 순 없다. 친박 관계자는 “박 전 의장은 박 전 대표에게 우호적일뿐 아니라 원외, 고령으로 차기 대권과도 관련이 없다. 그러나 정 의원은 사정이 다르다”고 우려했다.


정몽준 암초

특히 정몽준 의원은 당내 기반이 취약한 반면 전대 유권자의 30%에 해당되는 여론조사 득표에서 절대 우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최고위원 다섯 자리 가운데 박 전 부의장과 정 의원, 그리고 여성 몫 한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두 자리에 대한 친박계의 진입 여부도 관건이다. 현재 친박계에선 진영 의원과 김학원 최고위원이 조를 이뤄 안경률, 김성조, 공성진, 정두언 의원 등과 경합을 벌일 전망이다. 친이 소장파의 핵심이자 ‘매파’인 정두언 의원은 출마 여부와 관련,“정국 상황이 너무 유동적”이라면서 “6·4지방선거 재·보선이 끝난 뒤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권력도 만만치 않다. 복당 여부를 떠나 18대 국회 내 친박계는 60여명, 확실한 캐스팅 보트를 챙길 수 있다. 박 전 대표는 ‘여당 내 야당’역할 뿐만 아니라 야당과의 선별적 협조를 통해 한나라당을 컨트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컨트롤이 잘못될 경우 여권 매파로부터 거센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또 정책이념이 다른 야당과의 연대는 자칫 국민들 눈에 야합으로 비춰질 수 있다. 여권 관계자는 “교섭단체 구성을 위한 자유 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의 연대가 국민적 비난에 직면했음을 상기해야한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국회를 통한 여당 견제란 박 전 대표의 대권 전략은 차질을 빚게 된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박 전 대표는 더 이상 ‘MB와 동반자 관계’에 미련을 둘 수 없다. 여권 관계자는 “두 분은 서로에 대한 불신이 큰 것 같다. 단적으로 5.10 청와대 회동 직후 두 분의 말이 판이했던 것을 보라”고 말했다. 친박연대 한 핵심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정치적으로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다 일괄 복당이 어렵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줄기차게 주장한 것도 정치적 승부수”라고 분석했다. 때문에 6.4 재보선 결과에 따라 MB와 박 전 대표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설정될 수 있다. 그리고 박 전 대표가 ‘통첩과 침묵의 마술’로써 전리품을 챙기는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종합 예술’을 펼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래도 우리는 이웃사촌”

한나라당 당권에 도전하는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과 정몽준 의원이 같은 건물, 같은 층에 캠프를 꾸렸다. 이들이 지난달 하순 사무실을 얻은 곳은 여의도 D빌딩 4층, 박 부의장은 411호, 정 의원은 401호에 각각 둥지를 틀었다.

크기는 정 의원 캠프가 400평으로 박 부의장 측(80평)보다 훨씬 넓다. 정 의원 캠프는 대선 때 정동영 의장이 쓰던 사무실과 한나라당 대선 외곽조직 사무실을 합친 면적이고, 박 부의장 캠프는 한나라당 모 조직의 사무실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캠프 조직력은 박 부의장측이 훨씬 알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캠프 관계자는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이 중앙에 있어 난감하다.

사무실에 드나드는 인사들이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 같은 고민의 깊이는 박 부의장 측이 더한 것 같다. 대의원, 당원 지지율이 높아 당 관계자 출입이 정 의원 측 보다 빈번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우의를 보이는 정 의원 측은 다소 느긋한 모양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쪽이 캠프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도 없다.

기 싸움에서 밀리는 듯한 모양새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당권 싸움이 ‘이웃사촌끼리 캠프 기선잡기’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오경섭 기자 kbswave@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