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의 신간 황금물고기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손녀이자 시인 황동규씨의 딸인 황시내(38)씨가 쓴 수필집.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기에 쓴 편지와 여행기,1999년부터 미주 중앙일보와 포털 사이트 등에 쓴 칼럼들을 모아 산문집 ‘황금 물고기’를 냈다.
이번 에세이집에는 황씨가 서울대 음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만하임 국립음대, 마르부르크 대학, 미국 테네시 대학 등지에서 작곡과 음악학, 미술사를 공부하는 동안 체험한 오랜 이방 생활의 감상과 미주중앙일보를 비롯한 매체들에 기고한 칼럼들이 담겨 있다. 굳이 선대의 후광에 기대지 않아도 웬만한 기성문인보다 더 아름다운 감성과 반듯한 문장들이 돋보여, 그 자체로 충분히 각광받을 만하다. 독일의 낡은 기숙사에서 밤마다 희미하게 들려오던 중국인의 피아노 소리를 모티브로 아름답고 쓸쓸한 향수를 그려낸 ‘그 해 봄밤의 중국노래’를 비롯해 할아버지 황순원에 대한 기억을 교직시켜 이방에서 산다는 것의 아픔을 담은 ‘터키인 거리’ 같은 명편들은 황시내의 문재를 증명한다. 책에 삽입한 그림도 자신이 직접 그렸다.
이 산문집은 3부로 나뉘어 있다. 작가의 독일 유학시절 이야기,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여러 음악에 대한 감상, 미국 시카고 생활 등.
기숙사나 하숙집에서 책을 읽고 작곡을 하고 독일어를 공부하고 피아노를 배우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유학생의 일상, 이국생활에서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고독, 외국 친구들과의 다양한 교류와 여행담, 고민 끝에 작곡가의 길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떠나기까지 10여년에 걸친 그의 삶이 어렸을 때와 학창시절의 추억, 그리고 풍성한 음악이야기 속에 녹아있다.
특히 베토벤, 브람스, 드보르자크, 바르토크 등의 클래식은 물론 엘비스 프레슬리, 송창식, 듀란듀란까지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독특한 해석은 한 음악도의 진지했던 열정을 엿보게 해준다. 어렸을 때부터 배웠던 피아노와 함께 미술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이번 수필집의 삽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다. 그의 치열했던 젊은날이 음악·미술·문학이란 꼭짓점과 만나면서 아름다운 한 권의 산문으로 태어난 것이다.
조용하면서도 웅변적인 그의 문장들은 한 소녀가 성숙한 여성이 돼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황시내의 글에는 유난히 ‘추억’을 소재로 한 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옛날 가요의 추억,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의 추억, LP 판의 추억, 공갈빵의 추억, 음악 감상실의 추억. 그럼 그에게 아버지 황동규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것일까. 우연히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작가에게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일 음악과 항상 오버랩된다. 아버지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비창>을 듣고 최초로 음악을 ‘느꼈고’<첫사랑>, CD 플레이어도 없던 당시에 아버지로부터 음악 CD를 선물 받았으며<독일 레퀴엠>, 아버지 방에 몰래 들어가 만져보기만 하던 수많은 LP 판들을 대학에 입학한 후 물려받았고, 어린 시절 살짝 취한 아버지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송창식의 <한번쯤>을 부르던 기억을 회상한다<한번쯤>.
아직 삼십대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황시내의 추억 글 속에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과 같은 성찰적이며 관조적인 분위기가 묻어난다.
작은 추억의 물건들 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을 조용히 반추하며, 삶을 정화하는 이야기를 나지막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황시내의 글은 황순원 소설의 정갈함과 절제된 언어, 그 예술성을 물려받았고, 황동규 시의 열정을 이어받았으면서도 여성 특유의 감성이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책 한 권으로 한국 문학이 기억할 한 에세이스트의 탄생을 기대한다.
황시내저 / 휴먼&북스 /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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