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는 ‘오세아니아 구상’ 3대 전략 실체

MB(이명박 대통령)가 국민 앞에 네 번 고개를 숙이던 날, 박근혜 전 대표는 청와대 정무수석의 영접을 받으며 귀국했다. 5.10청와대 회동에서 ‘최후통첩’을 던진 다음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침묵 모드로 ‘친박 복당’이란 확실한 전리품을 챙겼다. 당분간 당이 박 전 대표의 눈치를 봐야할 입장이다. 홍준표 의원도 원내 대표로 선출되자마자 박 전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여당 몫의 국회 감투자리가 논의 될 모양새다. 친박계에 배려가 기대된다. 박 전 대표에겐 국회 장악의 교두보가 마련되는 셈이다. ‘여당 내 야당’으로 캐스팅 보트를 챙길 수 있다.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는 MB의 국정 지지율도 박 전 대표에겐 호재다. MB와 국정의 동반자 관계보다 대의명분을 앞세운 ‘조건부 협력’으로 민심을 안을 수 있다. 이미 그는 호주에서 “옳은 일은 협력 하겠다”며 이 같은 각오를 밝힌 바 있다. 박 전 대표의 ‘오세아니아 구상’ 3대 전략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22일 ‘오세아니아 구상’을 마치고 돌아왔다.
이날 오전 국민 앞에 사죄한 MB는 박재완 정무수석을 공항으로 보내 그를 영접케 했다.
당내 친박계와 ‘살아 돌아온’ 친박계 당선자들이 그를 맞았다.
같은 날 한나라당 홍준표 신임 원내 대표는 “박 전 대표와 면담하겠다”고 밝혔다. “복당원칙은 이미 최고위원회에서 정했다. 남아있는 시기와 절차, 방법 문제는 박근혜 전 대표와 관련된 분들과 면담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친박연대 공천비리와 관련 양정례 당선자의 어머니 김순애씨의 영장은 기각되고 김노식 당선자는 구속됐다.
같은 날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의 가닥을 잡았다.
박 전 대표가 ‘오세아니아 구상’을 끝낸 5월 22일은 숨가쁜 하루였다.
전략 1
‘통첩과 침묵의 정치’ 로 전리품을 챙겨라
박근혜 전 대표의 정치적 성장사는 ‘도전과 응전’이었다. 대통령의 딸에서 ‘영부인 역할’로 20대를 보내다 18년간 정치적 유배를 당했다.
1998년 대구 달성 재보선으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2002년 이회창 총재의 제왕적 당 운영에 반기를 들며 탈당했다.
대선 직전 복당을 했지만 당은 선거에서 패했고 이후 ‘차떼기당’이미지와 ‘탄핵 역풍’으로 존립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2004년 구원투수로 등장해 ‘천막’에서 쓰러져가던 당을 일으켰다.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연정’ 공방, 2006년 얼굴 테러, 2007년 경선패배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지만 이회창 총재의 대선출마가 그를 구했다. 이재오 의원을 겨냥한 독설과 이어진 침묵의 정치로 경선 패배이후 수세에 몰렸던 당내 역학 구도를 바꿨다.
이후 10년 만에 정권탈환의 공동 주연으로 국정의 동반자 역할이 기대됐지만 정치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4.9총선을 앞두고 ‘친박계 학살’의 대위기에 직면한 박 전 대표, 그러나 위기 속에서 ‘최후통첩과 침묵의 정치’가 빛을 발했다.
박 전 대표는 3월 23일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폭탄 선언 후 지역구에만 머무는 ‘침묵의 행보'로 박풍을 일으켰다.
4.9총선 직후 친박연대에 대한 검찰수사와 함께 복당 불가론이 대세로 흐르자 다시 침묵 행보에 돌입했다.
그는 22일 한나라당 당선자 워크숍과 청와대 만찬도 불참하다가 4월25일 여의도에 출현해 “최고위원회의 공적인 절차를 밟아서 결정해 달라"고 주문한 후 다시 침묵 모드에 돌입했다.
이후 MB가 제안한 5.10 청와대 회동 후 박 전 대표는 친박 복당 기한을 “5월 말까지"로 못 박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리고 박 전 대표는 ‘오세아니아 구상’을 통해 ‘친박 복당’이란 전리품을 챙겼다. 복당 대상에서 일부가 제외될 수도 있지만 부담 덜기는 당외 친박의 몫이다. 서청원 대표가 총대를 멜 일이다. 침묵의 끝에서는 승리의 여신이 항상 박 전 대표에게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략 2
국회를 통해 당을 지배하라
MB와의 국정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던 ‘1.23 회군’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준 교훈은 ‘당에 집착하다가 지지 세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외 친박이 복당하면 경우에 따라 60여명에 육박한다. 마음만 먹으면 당권에 도전할 수 있다. 그러나 자칫 당내 파벌싸움에 말려 계파의 수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여권 관계자는 “박 전 대표는 미래형이다. 확실한 지지기반이 있는데 현재의 당권 싸움에 집착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박 전 대표는 오히려 국회를 통해 당을 컨트롤 하려 할 것”이라며 “여당 내 야당의 캐스팅 보트 역할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국회전반기 구성에 한나라당이 차지할 국회 감투(의장,부의장,상임위원장)가운데 상당수가 친박 진영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다. 친이 진영에 중진급의원이 드문 반면 친박진영에선 6선의 홍사덕 의원과 4선의 김무성, 박종근, 이해봉, 이경재, 3선의 이인기 의원 등이 대거 복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당 내 야당’이 되면, 국회 각 상임위에서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다. 사안에 따라 민주당이나 선진당과도 공조할 수 있다.
이러한 국회에서의 입김은 당내 입지를 더욱 강화시켜 줄 것이다.
이미 원내대표 선거를 앞두고 홍준표 당선자가 구애했고 당권과 국회 감투에 도전하는 원로와 중진들이 저마다 박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박근혜 전 대표는 오세아니아 방문 동안 MB와 향후 관계 설정에 대해 “나라 발전을 위해 좋은 일이고, 옳은 일이면 항상 협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B와 동반자 관계선언 대신 조건부 협력을 선택한 것 같다. 이는 MB의 국정지지율이 바닥을 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략 3
‘MB의 동반자’ 대신 ‘조건부 협력’으로 민심을 안아라
정치평론가 김원철 박사는 “국민들에게 이같은 조건부 협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지금까지의 이미지나 명분, 브랜드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 전 대표는 1998년 정치입문 후 2002년 탈당, 복당 등을 통해 TK(대구. 경북)의 희망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 2004년 탄핵 열풍 속에서 ‘한나라당의 얼굴’로 외연을 확대했다. 그리고 이번 4.9총선과 친박 당선자 복당 투쟁은 그에게 ‘국가의 What? (무엇)'으로 향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친박계 관계자는 “4.9총선은 박 전 대표에게 한나라당에만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라는 교훈을 준 것 같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정치모델은 MB에게서 떠난 민심을 가져올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만약 박 전 대표가 MB와 새로운 관계설정 속에서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란 대의명분을 찾는다면 MB에게 등을 들린 민심이 그에게로 쏠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박 전 대표의 향후 행보에도 암초는 도사리고 있다. 최대 변수는 MB친위 그룹이다. MB친위그룹의 ‘5월 위기설’ 등이 쇠고기 파동과 MB 국정지지율 폭락 등 잇따른 악재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18대 국회가 개원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또 MB의 노사모로 불리는 선진국민연대의 최근 행보도 심상치 않다. 박 전 대표는 이미 이들 세력과 보이지 않는 전쟁에 들어섰을 수도 있다.
‘떠난다는 것, 그것이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것’이었다면 ‘돌아왔다는 것, 이것은 미래를 향한 첫 걸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미래는 이미 ‘오세아니아 구상’에서 완성한 전략을 ‘또박 또박’ 실천해 나가는 현재형 전술로 변모하고 있다.
오경섭 기자 kbswave@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