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치가 없다”

“노무현을 무너뜨린 것은 한나라당이 아니었다. 그를 지지했던 호남이었다. 현재 이명박이 무너지고 있는 것도 야당 때문이 아니다. 그를 지지했던 영남의 붕괴다.” 이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정권교체라는 다른 뱃속(정당)에서 시작됐지만 이상하리만큼 비슷한 운명의 궤를 걷고 있다.
한나라당은 오만과 독선, 민심을 읽지 못해 노무현 정권은 실패했다고 비아냥거렸지만, 이명박 정부도 출범 3개월 만에 급격한 민심이반에 시달리고 있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에 이어 청와대 참모진의 투기의혹 논란과 안이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이라는 암초에 걸려 있다. 참여정부 때와 닮은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에 정가에서는 천운을 타고 태어난 후보에서 불운한 대통령까지 두 사람이 지나치게 닮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성급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발가락이 닮았다’소설제목처럼 닮아도 너무 닮아버렸다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 부모(정당)와 태생(지지층)은 서로 다르지만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고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이 어떻게 닮았는지 뼛속까지 철저히 그들의 DNA를 분석해본다.
이명박 대통령은 동지상고를 나와 고학으로 고려대를 졸업하고 현대건설 회장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됐다. 학교를 졸업한 두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멈추지 않는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그들을 성공신화로 이끌게 한 것은 긍정의 힘을 믿고 의지를 굽히지 않은 남다른 추진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진력이 자신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자기 교만과 독선에 빠져 국정운영의 덫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보다 더 많은 고생을 해 대기업 회장, 서울시장에 이어 대통령까지 올라 극적인 삶을 살아온 이 대통령의 경우 자기 오만에 빠져들 가능성이 더 높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실패를 모르는 그들에게는 “해봤어”라는 자기 경험에서 나온 과도한 확신주의가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우를 범할 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위험한 ‘늪’정치 혐오증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바로 참여정부의 대연정과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이다.
그러나 대운하는 대연정과 달리 국토를 헤집어놓으며 지도를 바꾸는 사업이기 때문에 막연한 실험주의와 확신주의만을 가지고 추진하기에는 정권의 운명뿐만 아니라 국가의 운명이라는 커다란 시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두 사람은 정치를 혐오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승부사다운 기질로 계파간 줄타기를 시도해 정권을 잡지 않고 경선이라는 참신한 제도의 최대 수혜자가 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지역을 바탕으로 한 정치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심이탈 탄핵까지 나돌아
그러나 이러한 지역색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이 오히려 국정운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들 지지세력이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지지세력은 진보세력과 호남권이고, 이 대통령의 핵심 지지기반은 영남권 보수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는 대한민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조치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진보세력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또한 자신을 절대적으로 지지해준 호남지역에 대해서도 “내가 좋아서 날 찍었나, 이회창 싫어서 나 지지한 거지”라는 말을 해 은혜를 배신으로 갚으며 호남지역을 배제했다. 또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노무현을 대통령 만들어주고도 가슴 아픈 정치세월을 보내야 했다.
이 대통령도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영남권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정작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일등공신은 박근혜 전 대표였다.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는 구원투수 역할을 해냈다. 또 영남권의 얼굴인 박 전 대표는 경선의 패배를 깨끗이 승복하고 모든 표를 이대통령에게 몰아주기를 호소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18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 세력을 외면했고 영남권 분노의 결집을 불러일으켜 친박열풍을 불게 한 결과를 낳았다.
결국 노 전 대통령도 이 대통령도 정치를 외면한 결과로 스스로를 고립시켜 지지기반을 잃는 자충수를 두었다.
또한 인사를 기용하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코드 인사, 돌려막기인사, 회전문 인사, 보은인사 등으로 파문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이 대통령의 경우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아닌 ‘베스트 오브 프렌즈’ 인사라는 평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자기 사람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애착이 왜곡된 인사를 하게 되었고 자질문제가 도마 위에 떠올랐다. 결정적으로 장관임명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던 김성이 보건복지부장관의 경우 쇠고기 파문을 놓고 “지금까지 30개월이 안 되는 소를 먹는 줄 몰랐으며 사람들이 잔인해졌다”며 “소도 엄연한 생명인데 10년은 살아야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을 해 여야를 막론하고 “소 복지 장관이냐”는 비난을 받으며 자질론 시비가 붙었다.
이에 이대통령이 관료출신 배제인사로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386측근 인사로 정권 임기중반 잡음에 시달렸던 노무현 정권의 전철까지 착실히 밟아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언론과의 껄끄러운 관계도 비슷하다. 노 전 대통령은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신문들과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다가 기자실통폐합까지 추진했다. 반면에 이 대통령은 보수 신문이 아닌 노 전 대통령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방송 인터넷 매체와 껄끄러운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한 인터넷 매체는 ‘이명박 탄핵서명’을 시작하기도 했다.
인사가 만사, 인사가 망사
이에 대해 여권의 한 관계자는 “CEO형 리더십의 이 대통령이 50만 공무원에게 정책세일즈를 강조하는 것과 노 전 대통령이 ‘50만 공무원 코드화’를 역설하는 모습까지 닮았다”며 “이 대통령이 노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 전철을 밟지 않도록 중용의 인사와 참모진의 말에 귀 기울이는 맹장의 모습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스스로 위기를 몰아가 탄핵이라는 벼랑 끝에서 기회를 잡아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현재 이 대통령에게도 탄핵이라는 국정 최대 위기를 가르키는 단어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하지만 ‘매도 처음에 맞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이 대통령은 정권 3개월을 맞이해 국민들의 분노와 여론의 온몸으로 맞아 국정을 현명한 묘를 살려야한다는 충심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임기말년 “외롭다”는 말을 자주했던 노 전 대통령이 무엇 때문에 외로움의 성에 갇혀 보냈는지 기억해야 한다.
5년 뒤 ‘행복한 웃음으로 국정말년을 보낼 수 있는 대통령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임기 3개월의 쓴 비난은 4년 9개월의 달디 단 칭송으로 바뀌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괴담’ 진실공방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예언 괴담이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또한 발언의 진위를 놓고 언론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상태다. 이에 이를 보는 시각도 각 매체마다 다르다.
경향닷컴은 노무현 예언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일 참여정부 평가포럼 초청 ‘21세기 한국 어디로 가야하나’ 특강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하니 좀 끔찍하다’고 말했다며 ‘노 대통령은 당시 한나라당이 무슨 일을 할까 예측하려면 전략을 봐야하는데 그 전략이 뭔지 알 수가 없다’며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은 일이 거의 없고 앞뒤가 맞지 않고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 너무 많아 무책임한 정당이란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그 당의 후보 공약만 봐도 창조적인 것이 거의 없고 부실하다’며 ‘막연히 경제를 살리겠다, 경제대통령이 되겠다는 건 전략 없는 공허한 공약이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하며 노무현 괴담의 실체를 밝혔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지난 7일 사설에서 “지금 인터넷에는 노무현 괴담이란 것이 퍼져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과거 미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예언했다는 것은 실제와는 정반대다”라고 반대의 논지를 보도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지난 2007년 3월 21일 서울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농 · 어업인 업무보고에서 ‘이미 호주산 쇠고기를 사오고 있고 캐나다산 자유무역협정을 하거나 안하거나 수입되고 있다’며 ‘이 모든 것을 무시하고 한미 FTA를 하면 광우병 소가 들어온다’며 ‘투쟁하는 이 나라의 진보적 정치인들은 정치하지 않고 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그날 ‘(그런) 정치인들에게 제일 하고 싶은 얘기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도 했다”며 “‘이는 한마디로 무역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나라의 입장에서 미국 쇠고기를 광우병 소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고 보도 했다. 이처럼 진보와 보수를 지향하는 신문마다 노무현 예언괴담을 바라보는 차이가 있어 누리꾼들은 인터넷상에서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괴담 시리즈에 대해 한 네티즌은 “노무현 예언 괴담이 진실이건 허위이건 이러한 괴담이 나도는 것은 민심이 현 정권 대해 얼마만큼 불안과 불만이 쌓여있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고 말했다.
백은영 기자 about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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