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부인 문학과 예술에선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셰익스피어, 마르크스, 투르게네프, D. H. 로렌스, 버지니아 울프, 허버트 조지 웰스, 올더스 헉슬리, 퀴스틴느 등의 문학 작품들과 제임스 길레이, 메리 카사트, 뒤샹, 호안 미로, 데미언 허스트, 마커스 하비 등의 미술작품들 그리고 현대의 센세이셔널리즘에 대한 성찰을 통해 퇴락해가는 현대 문화의 일반적인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외부 검열에 대한 지식인들의 강한 거부감이 결국 포르노그래피가 범람하는 것도 막지 못하게 했으며 엘리트주의자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대중에 영합하며 고급문화보다는 비속성과 저급문화를 찬미하고 있다고 말한다. 보편적인 휴머니즘보다는 센세이셔널리즘, 부와 명성을 탐닉하는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세태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후반부인 정치와 사회에선 현대국가에 보편적인, 점차 비대해지고 있는 관료주의를 비판하며 복지라는 명목으로 국민을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현상을 설명한다. 그는 관료주의가 국민의 행복과는 상관없이 무능한 공무원의 증가만을 가져왔다고 비판한다. 또한 저속한 문화를 고무하고 조장해 결과적으로 살인, 강간, 폭력이 일상화되는 현실에 대해 고발한다. 이는 특정 정치체제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제3세계의 현상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적 상업주의에 굴복해 대중영합에 앞장선 지식인과 예술가들 그리고 황색저널리즘이 만연하게 된 서구 선진국의 현상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제3세계 국가와 유럽을 두루 보고 느낀 것을 말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자신이 오래 살고 일했던 영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신사의 나라라는 명칭에 어울리게 예절과 전통으로 알려졌던 영국의 추악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저자도 인정하듯이 주로 빈민가와 교도소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의 관점이 제한되어 있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를 읽다보면 과연 그가 본 것이 제한된 영역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사회 현상인지 아니면 현대 사회가 보편적으로 안고 있는 문화적 현상인지 알 수 없게 된다.
테어도르 데일림플의 에세이가 지닌 장점은 무엇보다 그가 직접 체험하며 보고 느낀 것을 기술했다는 점에서 인문학자나 사회 과학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현장감 있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 문화의 비속성과 올바른 사고로 인도되지 않는 감상벽은 영국 문화에도 예외 없이 냄비근성으로 정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기 연예인은 신성함이 소멸된 현대에서 신이 되고 있다. TV에선 일반인들이 평생 벌어도 벌 수 없는 돈을 1년 동안 벌어들이면서도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한다는 진행자들의 멘트가 끊임없이 되풀이 된다. 성해방을 주장하면서도 부부, 연인 간의 의심과 질투는 늘어간다. 분노에 따른 무차별 살인과 폭력이 자행되고 양심의 가책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개인의 불행을 불행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우울증으로만 치부해버리는 현대사회 자체가 심한 우울증에 걸려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정신병자들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것이 현대 영국 사회의 모습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테어도르 데일림플/채계병 역/이카루스미디어/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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