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긋지긋하게 장대비와 폭우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속수무책인 기상청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폭우로 인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접경지역인 임진강 하류 피해는 예고도 없는 북한 황강댐 방류로 그 피해가 더 커지고 있다는 소식들이 나오고 있다.
황강댐은 임진강 북한지역 상류의 다목적 댐으로 여기서 방류되면 우리 측 필승교에서 수위가 측정되고 군남댐에서 방류에 대비해 제어하게 되어 있다. 결국 문대통령이 군남댐 현장까지 직접 방문 한 후 북의 예고 없는 방류에 유감과 아쉬움을 표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후 북의 반응이 궁금하지만 이미 피해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다.
황강댐의 무단방류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있어 더더욱 큰 문제다. 지난 2009년 북한의 무단방류로 남측에서 6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북한은 유감도 표명하고 남한 측에 사전통보도 약속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북한은 최근까지 인도적 차원에서조차도 사전 통보나 예고없이 무단방류를 해 왔다.
북한은 지난 6월 전광석화처럼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는 충격적인 일을 저질러 놓은 상태다. 게다가 가뜩이나 폭우피해가 심각한 상황에서 또다시 황강댐까지 무단방류시켜 우리 국민들의 ‘대북감정’을 악화시키고 있다.
당연히 우리 정부가 북에 대해 ‘약속 불이행’과 인도적 차원의 ‘비협조적 태도’에 경고를 보내야 할 때다. 그런데 오늘(6일) 뜻밖에도 ‘반전의 뉴스’가 나왔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취임 이후 첫 대북조치로 비록 국제기구를 통하지만 1천만 달러 규모(118억)의 ‘인도적 지원사업’을 결정했다.
이 사업은 세계식량계획(WFP)의 요청이자 이미 지난 6월에 결정됐지만 연락사무소 폭파로 보류된 것이다. 물론 이인영 장관은 황강댐 무단방류에 대해 ‘유감’을 표명도 잊지는 않았지만, 누가봐도 하필이면 얼어붙은 남북관계 그것도 우리의 대북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참 ‘통 큰 결정’(?)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남북관계에 돌파구는 열어야겠고, 북한의 사과나 후속조치도 없는 상태에서 인도적 지원사업이라도 해야겠는데 황강댐 방류에 대해서만 ‘살짝 유감’을 표명한 느낌이다. 아쉽고 찜찜한 여운이 남는 결정인 셈이다.
그나마 집권 여당 민주당에서 북한을 좀 나무라는 듯한 발언이 나왔다. 김태년 원내대표가 6일 "남북합의 위반, 속 좁은 행동"이라고 비판하며, 통일부에 대해선 "엄중하게 항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위한 남북합의를 요청하라" 고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번 지원사업에 대해 북한은 일언반구 반응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북 직접지원도 아닌 세계기구의 요청 형식이기에 북한이 감사해야 할 일도 아니라는 식의 태도를 보일 것이다. ‘변하지 않는 북의 태도’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통큰 대북지원’이 북의 화답을 불러오는 ‘마중물’이 되길 기대하지만, 우리의 노력과 정성이 과연 또 얼마나 많은 ‘인내심의 과정’을 겪어야 할지 또 지켜볼 일이다.
지금 민주당은 최대 의석을 차지한 힘을 바탕으로 못 해왔던 각종 ‘개혁 입법’과 ‘정책과제’를 속전속결로 처리하고 있다. ‘과속’ 비판 여론 속에서 부동산 정책 등도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는 ‘야당 핑계’로 못 했기에, 막강한 힘을 가진 집권 여당이 지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결과는 둘째치고 안 하면 안 한 대로 하면 한 대로 욕을 먹게 되어 있다. 그러기에 ‘책임정치’를 한다고 내세우고 책임지겠다는 각오인 것 같다.
그러나 ‘속 좁은 북한’의 변하지 않는 태도에도 우리의 ‘통 큰 결단’이 국민들의 자존심마저 상하게 하면서까지 지속된다면 결코 지속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게 된다. 책임정치 역시 힘 있을 때 책임 있게 하는 것이지만, ‘변해 가는 민심과 여론’을 세밀하게 반영, 수정 보완해 나가는 ‘소통의 정치’가 밑바탕이 된다면 더 크게 힘 있는 책임정치가 될 것임을 믿는 ‘용기’도 필요한 때이다.
前 청와대 행정관 및 독립기념관 사무처장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