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386 의원’ 부활 프로젝트

지난 18대 총선은 민주화운동 경력을 앞세운 ‘386 의원들’에게 악몽이었다. 1980년대 운동권 주역이었던 이들은 2002년 17대 총선을 통해 대거 국회에 들어왔지만 이번에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야 했다. 전대협 1~3기 의장을 지낸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의원이 쓴잔을 마셨고, 당 대변인으로 고군분투했던 우상호 의원도 낙선했다. 무사히 생환에 성공한 순수 386 의원들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정치권의 냉엄한 현실을 절실히 느낀 이들은 무너진 386의 이미지를 되찾기 위한 생존 전략을 고심 중이다.
여의도 국회에서 386 의원들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들의 선두 주자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던 김민석 전 의원은 우여곡절 끝에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했다. 재선 의원으로 대중성이 높았던 임종석 의원의 낙선은 당으로서도 충격적인 패배였다. 이들 외에도 이인영·오영식·정봉주·정청래·이기우·김태년·윤호중 의원 등 386 의원들이 대거 낙선했다. 지난 참여정부에 대한 차가운 민심이 이들의 패배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게 정치권의 평가다.
“먹고 살 일 고민”
통합민주당 386 출신 보좌관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총선 이후 한동안 아노미 상태였다”며 “재야파 수장으로 사실상 정신적 지주였던 김근태 의원이 뉴라이트 후보에 패한 것도 전체 진영의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금배지를 어렵게 지킨 의원은 3선의 송영길 의원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광재·최재성·서갑원·백원우 의원 정도다.
낙선한 386 의원들은 패배의 일차적인 원인으로 “너무 안일했음”을 꼽는다.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기자들과 자주 만나게 되고 언론에 자주 부각되면서 나도 모르게 첫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다” 며 “시대 변화와 젊은 유권자들의 요구에 따라가지 못한 게 뼈아프다”고 말했다.
더욱이 이들은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직 출신이 아니어서 당장 먹고 사는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역시 대다수 386 출신으로 구성된 측근들도 다른 당선자 보좌진 자리나 시민단체 쪽 일을 알아보고 있지만 “예전보다 더 어려워졌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낙선자들 대부분은 당분간 정치적 휴지기를 가진 뒤 다시 지역구 관리에 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이인영 의원은 “시대 변화에 맞춰 대안을 찾아봐야 하는 등 공부가 필요한 때”라고 했고 오영식 의원은 “여전히 당에 필요한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석 의원 등은 외국 유학을 고민 중이다.
‘추풍낙엽’속에 살아남은 386 의원들도 고민이 크기는 마찬가지다.
전체 정치 지형도가 대거 ‘보수’로 이동하면서 정체성 찾기가 쉽지 않게 됐다. 기성 정치인들과 이들의 차별성이 거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3선으로 차기 당권 도전설까지 나오는 송 의원은 “우익의 뉴라이트처럼 우리도 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재 서갑원 의원 등을 중심으로 한 ‘친노그룹’ 출신들도 노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나 홀로 길’을 모색하고 있다. 이 의원은 “선거 결과로 볼 때 우리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며 “진보도 새롭게 탈바꿈해야 하는 건 아닌가 고민 중이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낙선 386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재기를 위한 연대 모색 움직임도 감지된다. 한 낙선 의원은 “중도 개혁을 주장했지만 사회 양극화와 부동산 등에 대해 진보적인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등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우쳤다”며 “이명박 정부에서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진보 추구”
18대 국회 개원 이후 87년 민주화 항쟁 기념행사가 열리는 6월 쯤 되면 가시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전해진다.
재야파 관계자는 “총선 결과를 놓고 민주화 운동세력의 공멸이라고 하지만 부동산, 여당프리미엄 등 다른 패배 요인들도 많았다”며 “386 세대 정치인들은 여전히 할 일이 많고 그럴 역량도 충분하다고 본다”고 기대를 표시했다.
하지만 또 다른 당직자는 “386세대 그룹이 이미 손학규계, 친노계 등으로 세분화된 상황”이라며 “과거와 같은 결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뭔가 그런 계기가 생겨야 한다”고 전망했다.
대다수 386 정치인들은 어느새 40대 중반을 향하고 있다. 18대 총선을 통해 민심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낀 이들이 새로운 생존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생존한 386 ‘이젠 당 중심으로’
통합민주당 새 지도부 자리를 놓고 총선에서 살아남은 386 의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손학규 대표와 가까운 송영길 의원은 386 출신의 3선 의원이라는 점을 살려 최고위원 경선에 도전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 의원도 경선 참가를 고려 중이다. 386의 맏형 격으로 3선에 성공한 김부겸 의원의 이름도 거론된다.
원외에선 구 민주계의 김민석 전 의원이 당권 도전을 저울질하고 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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