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의사당 떠나는 의원들 심경고백
“집으로…” 의사당 떠나는 의원들 심경고백
  • 김승현 기자
  • 입력 2008-04-29 13:26
  • 승인 2008.04.29 13:26
  • 호수 731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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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지키기 가장 힘들었다”
왼쪽부터 김근태, 강재섭, 심상정, 우상호

화려해 보이는 정치인들이지만 그들 역시 인간이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4년마다 금배지를 놓고 벌어지는 경쟁은 공천 과정에서부터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여기서 패배하면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

어렵사리 국회에 입성해도 의정활동과 정치 투쟁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주관과 당론이 다를 경우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언론과 시민단체 등 수많은 ‘감시의 눈’도 감수해야만 한다. 여의도를 떠나는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를 들어봤다.

“그동안 너무 억울하고 힘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자 신분이던 지난 2월 이렇게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 때부터 자신을 향해 제기됐던 각종 의혹들이 ‘이명박 특검’을 통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직후였다.

각자가 독립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도 어려움에 직면할 때가 많다. 몇몇 의원들은 술자리에서의 추태 등이 불거져 한동안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하기도 하고, 이념 논쟁으로 같은 당 의원에게 ‘나가라’는 쓴소리를 듣는 경우도 없지 않다.


“없었던 오만도 생기더라”

4·9 총선에서 낙선한 뒤 대변인직에서 물러난 우상호 통합민주당 의원은 당의 패배를 지켜보는 게 가장 고역이었다고 밝혔다.

“당 지지율이 10% 안팎을 겨우 넘나들고 모든 선거마다 패배하는 것을 지켜보는 심정은 참담했다. 언론에 비판적인 기사가 넘칠 때도 너무 죄송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대구에 출마했다 고배를 마신 유시민 의원은 정치 실험의 실패를 들었다.

그는 “기간 당원제도나 상향식 제도를 좌절시킨 것은 현역 의원들의 기득권이었다”며 “당초 생각했던 가치들이 몸담았던 당내에서 휴지조각이 됐던 게 회한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 초선 의원은 당론과의 괴리 등 ‘정체성’ 문제를 언급했다.

“남북문제 등 이념 관련 문제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문제의식을 표출했다가 당 내에서 비판도 많이 받았다. 돌아보면 거의 대부분 당론에 굴복해 거수기로 전락했던 것 같다. 되돌아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당내 소장파로 분류됐던 그는 “대선에 임박해 ‘동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대권주자들에게 줄서기를 할 때 회의도 많이 들었다”며 “초심을 지키기가 가장 힘든 곳이 바로 정치권인 것 같다”고 말했다.

통합민주당 386 출신 의원은 “이상을 실현하기엔 정치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며 “참여정부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욕먹는 상황이 왔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그냥 따라만 가게 되더라”고 회고했다.

CEO 출신 의원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계안 의원도 “산전수전 다 겪었지만 정치를 하니 자연스레 없던 오만이 생기더라” 며 “내 생각과 달리 당의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갈 때 가장 무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을 탈당, 진보신당으로 몸을 옮긴 심상정 의원은 소수정당으로서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민생탐방을 할 때 적막한 가게와 주인들의 우울한 표정을 보면 죄송스러울 따름이었다”며 “FTA·노동문제 등에 대해 맞선다고 노력했지만 그래도 소수정당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독배는 역시 썼다”

당 파워 싸움의 와중에서 적지 않게 맘고생을 한 거물 인사들도 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공천을 둘러싼 당 내분을 정리하기 위해 총선 불출마 선언이라는 극단의 카드를 꺼내야 했다.

이를 지켜봤던 당직자는 “뜻이 큰 분이었는데 오죽하면 그랬겠느냐”며 “그 때 상황이 시비를 가릴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총선에서 낙선한 이재오 의원은 중요한 시기마다 친박 진영의 공격 대상이 됐던 것을 마음의 짐으로 꼽았다.

이 의원은 지난해 말 “제가 당내 화합의 걸림돌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치우겠다”며 백의종군을 선언하기도 했다.

김근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대권을 꿈꿨지만 지지도가 좀처럼 오르지 않았던 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열린우리당 의장직을 수행할 때도 많이 힘들어하셨다”고 전했다.


친MB 낙선중진 어디로?

해외유학, 대학출강, 요직등용… 뒷말 무성

청와대 인선 방침에 따라 총선에서 낙선한 친 이명박 대통령계의 칩거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와 관련 “총선 낙선자들은 최소 6개월 동안 정부와 청와대, 공기업 인사에 기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이재오·이방호·박형준 의원 등 핵심 인사들도 당분간 휴지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

특임장관에 거론되기도 했던 이재오 의원은 미국행이 유력하고, 농수산식품부 장관설이 나돌던 이방호 의원은 들어온 대학 강의 요청을 놓고 저울질 중이다.

청와대행이 유력시됐던 박 의원도 당분간은 지역구에 머물며 광역의원 재보궐 선거를 준비할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선 청와대의 언급에 대해 “6개월 후엔 보상해 주겠다는 의미와 다름없다”며 이들의 ‘연내 중용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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