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의 정치학

“국회의장을 하기 위해서는 동아일보에 먼저 입사 해야 한다.” 정계에서 돌고 있는 풍문이 사실로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차기 국회 의장감으로 누구를 선호하냐는 동아일보 여론조사에서 김형오 한나라당 5선의원이 22.3%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같이 여론조사처럼 김 의원이 국회의장으로 취임할 경우 동아일보 출신의 국회의장이 연속 배출되는 진기록을 낳게 된다. 김대중에서 노무현 정권까지 동아일보가 배출한 국회의장으로는 이만섭, 김원기, 임채정 의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이명박 정부의 김 의원까지 국회의장을 취임하게 된다면 한 곳의 신문사에서 총 4명의 기자가 3번의 정권에서 국회의장을 차지하는 셈이다. 동아일보와 국회의장의 역학관계, 그 신비하고 오묘한 조화는 무엇일까 추적해본다.
‘동아맨의 정계진출은 국회의장의 예비후보다’라는 말이 괜한 너스레가 아닐 정도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1950년 대구 대륜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해 1957년 동화통신 정치부 기자를 거쳐 1958년 동아일보 정치부로 옮겼다. 이 전 의장은 1961년 9월 동아일보 필화사건으로 육군 형무소에서 옥고를 거친 뒤 동아일부 주일특파원, 1963년 2월 동아일보 주미 특파원을 지낸 동아출신 기자다.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권력싸움에서 밀려나 미국으로 떠나는 과정을 다룬 이만섭 기자의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표현을 처음 써 아직도 기자세계에서 회자될 정도다. 이후 이 전 의장은 1963년 12월 여당 민주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해, 1967년 6월까지 제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어 1967년 제 7대, 1979년 제 10대, 1981년 제 11대, 1985년 12대, 1992년 제 14대, 2000년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 전 의장은 박정희 정권 15년을 지나,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권으로 40여 년 동안 정치인의 생활을 하며 국회의장을 두 번이나 지냈다.
이후 2004년 16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김원기 전 의장도 연세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1960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김 전 의장은 아버지가 전북 정읍시 감곡면의 면장을 지냈고 집안 어른인 김택술씨가 제 2대 국회의원에 뽑히면서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국회의장 두 번 한 이만섭
정치적인 야심은 어릴 때부터 드러나 전주고 학생회장에 당선된 뒤 전라북도 학생연합회를 스스로 만들어 의장에 뽑힐 정도였다.
이에 김 전 의장은 처음부터 정치에 입문하고자 언론에 진출한 경우다. 김 전 의장은 ‘믿음의 정치학’이라는 자서전에서 1979년 기자를 그만두고 제 10대 국회의원에 출마할 때도 동아일보라는 배경에 큰 힘이 되었다고 말할 정도로 동아일보에 마음의 적을 두고 있는 동아맨이다. 1979년 제 10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11, 13, 14, 16, 17대라는 6선 국회의원이 됐다. 또 2004년 17대 국회의장을 지냈다.
임채정 의장은 좀 특이한 경우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6년 충무로의 한 영화사에서 근무했다. 이후 1967년 동아일보에 입사 한동안 문화부 등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다. 그러나 1974년 자유언론운동 시작되면서 1975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활동해 동아일보로부터 강제해직 당했다. 이후 민통련 상임위원장 등을 지내며 재야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당시 활동했던 사람들은 임 의장에 대해 “동아투위는 기자협회 동아일보분회에서 주도했고 임 의장은 이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고 회상한다. 이후 1986년 문동환 목사 등과 함께 평민당에 입당해 1992년 제 14, 15, 16,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06년 제17대 국회의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번 18대 총선을 앞두고 “17대 국회의장 직을 마지막으로 국회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불출마 선언을 해 사실상 정계은퇴를 했다.
또한 최근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이 국회의장 하마평에 오르면서 동아일보 출신 기자가 국회의장직에 4번이나 취임할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게 나오고 있다.
김형오 의원 측 “아직 이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김형오 의원 측은 전화통화에서 “사실은 알 수 없으며 아직 결정 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뭐라고 말할 수 없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회의장직은 대권이나 당권과 거리가 멀어 여당의 최다선의원이 맡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 이에 5선인 김 의원의 국회의장직 하마평은 매우 현실감 있게 다가오고 있다.
동아일보 출신의 기자가 국회의장을 차지한 것은 모두 3명이다. 그러나 비교적 방송사나 신문사의 앵커나 기자출신들의 정계진출이 비교적 많은 것에 비교할 때 동아일보 기자출신들의 국회 의장직이 많다는 사실은 매우 이채롭다. 국회의장직을 맡기 위해서는 동아일보출신 기자라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일까. 역학적으로도 풀 수 없는 국회의 미스터리다.
백은영 기자 about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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