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다르크’ 급부상, 심상찮은 DJ 입김

총선 이후 민주당이 휘청하고 있다. 당내 최대 계보를 이끌고 있는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장관이 모두 서울에서 고개를 숙였다. 재야파를 이끌었던 김근태 의원도 ‘뉴라이트’의 선봉 주자인 신지호 한나라당 당선자에게 패하며 충격을 더했다. 임종석 우상호 의원 등 386 주자들도 모두 쓴 맛을 봤다. 당 내 제1의 참모였던 민병두 의원 역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당내 간판 인사들이 대거 무너진 민주당은 조기 전당대회 등을 통해 새로운 체제 개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재기에 성공한 추미애 전 의원과 정세균 의원 등이 강력한 후보로 급부상중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주당 내 당권 경쟁을 살펴봤다.
4·9 총선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재기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저조한 당 지지율에도 81석을 차지한 것을 놓고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평가도 없지 않지만 수도권 참패의 아픔은 여전히 깊기만 하다. 손 대표는 “공식적인 목표는 개헌저지선이었지만 현실적인 여권은 그렇지 못했다”며 “당과 나라의 발전을 위해 평당원으로 뛰겠다”고 차기 당권 도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당 내부의 ‘책임론’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로 파악됐다.
손 대표 뿐만이 아니다. 민주당은 총선에서 정동영 전 장관, 김근태 의원 등 간판급 주자들을 대거 잃었다. 지난해 대선에 이어 총선에서도 물 먹은 정 전 장관은 당분간 해외에 체류하며 정치적 휴지기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민주당은 이들을 대신할 ‘대표 얼굴’을 찾는 작업이 절실한 상황이다.
“박근혜 대항마 찾아라”
원칙적으로는 7월 초순까지만 전당대회를 실시하면 된다. 하지만 18대 국회가 개원하기 전인 5월 말에 치러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게 당직자의 말이다.
“제1야당으로서 선명성을 갖추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빨리 지도부를 다시 구성해야 한다. 총선에서 보수 그룹이 확실한 기득권을 획득한 만큼 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새 당권 주자로는 화려한 재기에 성공한 추미애 전 의원이 후보 0순위로 꼽힌다.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이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등 공백기를 가졌지만 지난 총선에서 큰 어려움 없이 당선됐다.
‘추다르크’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뚜렷한 선명성도 현재 민주당 상황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구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출신을 아우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여성 인사로 대표 후보였던 한명숙 전 총리가 총선에서 낙마한 것도 추 전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에선 박근혜 전 대표가 한나라당 당권을 노릴 가능성이 높은 만큼 여성 인사를 맞상대로 내세우는 게 좋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추 전 의원 외에 강금실 선대위원장도 여성 대표로 거론되고 있다. 강 위원장은 비례대표까지 마다하며 불출마란 배수진을 쳤다.
전국 유세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원외’라는 한계와 미약한 지지기반이 약점으로 지목된다.
여성 인사로는 4선 의원인 이미경 의원의 이름도 거론된다.
선명 야당 ‘투사형’ 절실
수도권 참패로 호남세의 약진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서울 출마 권유를 뿌리치고 전남 고흥에서 당선된 박상천 공동대표의 당권 도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던 박 대표는 손 대표와 함께 총선 패배의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발목을 잡는다.
박 대표는 “향후 투쟁 목표는 두 가지다”며 “한나라당 독주를 비판·감시·견제하고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북의 정세균 의원도 ‘구원투수’ 후보다. 4선 의원으로 당내 각 계파의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게 경쟁력이지만 관리형 이미지가 강해 야당 대표로는 의문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호남 출신으로 수도권에서 당선된 천정배 의원도 거론된다. 신기남 의원도 낙선해 ‘천·신·정’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열린우리당 당 의장 출신인 문희상 의원과 전국 득표율 1위를 기록한 박주선 의원도 당권 후보로 거론된다.
민주당 공천 결과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목포에 출마해 당선된 박지원 전 비서실장의 복당 문제도 관심이다. 정치권에선 박 전 비서실장의 당선이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호남 영향력’을 재확인시켜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DJ의 차남인 김홍업 의원이 전남 무안·신안에서 고배를 마신 것은 DJ의 호남 막대기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무조건 (민주당에) 돌아간다”던 박 전 비서실장이 복당해 당권에 도전할 경우 DJ를 위시한 호남세의 입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명맥 유지한 ‘친노 그룹’
노 ‘인터넷 정치’ 영향력 주목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총선에 ‘명운’을 걸었던 친노그룹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 유인태 유기홍 의원 등 믿었던 인사들의 낙선은 충격이다.
무소속으로 영남권에 도전했던 유시민 의원과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도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친노그룹’의 줄기는 일정 부분 이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광재 의원이 강원도에서 살아남았고 부산의 조경태 의원과 김해을의 최철국 의원도 귀중한 금배지를 유지했다.
참여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던 이용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 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과 조영택 전 국무조정실장은 광주에서 금배지 획득에 성공했다.
총선 때까지 목소리를 낮췄던 노 전 대통령도 조만간 본격적인 인터넷 정치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져 친노 그룹은 민주당 내 권력 구도 변화에 또 다른 변수가 될 전망이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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