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정재호 기자] 북한인권국제연대 문국한 대표는 ‘장길수 가족’ 탈북을 주도한 주인공이다. 문 대표는 지난 1999년 문구 사업을 위해 중국에 진출했다가 알게 된 조선족 여성을 통해 길수 가족과 친척을 소개 받았다. 당시 15명이나 되는 길수 가족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북한을 탈출했다. 문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요서울과의 만남에서 “20년째 북한인권운동을 해왔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과 중국에서 떠도는 탈북자 인권 상황은 변한 것이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2000년 문 대표는 길수 군이 경험한 북한의 인권 실태를 글과 그림으로 알리기 위해 ‘눈물로 그린 무지개’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이에 일요서울은 ‘눈물로 그린 무지개’를 다음 1371호부터 연재한다.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북한인권법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이 열린 가운데 북한인권국제연대 문국한 대표가 사업계획발표를 하고 있다.[뉴시스]](/news/photo/202007/411898_328362_4043.jpg)
- 문국한 대표 “20년 동안 북한‧중국 내 인권 상황 변한 것 없어”
지난 2000년 ‘눈물로 그린 무지개’가 출판되고 20년이 지났지만 북한인권과 중국에서 떠돌고 있는 탈북자 인권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눈물로 그린 무지개는 탈북 소년 길수와 그의 형, 어머니, 그리고 이모부, 이종사촌 형제 등 다섯 사람이 북한과 중국에서 겪은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엮은 것이다.
장길수는 지난 1999년 1월 겨울날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았다. 길수는 자신이 살던 북한의 모습과 비교할 수 없는 중국의 환경에 놀랐다.
우선 어디를 가든 먹을 것이 풍부한 것에 놀랐다. 한 끼 죽조차 마음껏 먹지 못해 배고픔에 허덕이던 길수에게는 중국이 살맛나는 세상이었다. 또한 중국에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 북한은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가려면 통행증이 필요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차이가 나는지 길수는 이해 못했다. 중국은 지구상에 하나뿐인 ‘지상낙원’으로 알고 있던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족하고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길수는 이게 모두 꿈인가 싶었다.
길수는 꿈 같은 생활 속에서도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식량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길수는 어머니와 형을 중국으로 탈출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끝내 아버지는 모시고 올 수 없었다. 길수가 중국으로 탈출하기 전 아버지는 식구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중국으로 도망갈 생각을 하면 당에 고발하겠으니 알아서들 해라” 하는 수 없이 길수는 아버지 모르게 중국으로 도망쳐야 했다.
그러나 중국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자 중국 당국은 탈북자들을 붙잡아 북한으로 강제 송환시켰다. 강제 송환은 북한에서 곧 ‘죽음’을 의미했다.
길수 일가의 탈북 대장정은 함경북도 회령에 살던 외할머니가 중국으로 탈출하면서 시작됐다. 그녀는 지난 1998년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이어 길수를 비롯한 5명이 북한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나머지 네 사람의 가족도 천신만고 끝에 탈출시켰다.
길수 일가는 1999년에 탈북자를 돕는 조선족 동포를 만나 이 같은 사연을 전하고 대한민국으로 오기까지 북한 인권의 참상과 탈북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정재호 기자 sunseoul@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