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남자들’도 추풍낙엽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 링컨은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고 말했다. 이번 18대에서는 유권자들의 냉엄한 총알에 무참히 쓰러진 중진 의원들도 많았고 또 총알보다 더 강한 자신의 소중한 한뜻을 표현하기를 거부하는 유권자들도 상당했다. 하지만 18대 총선의 투표함이 개봉되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 웃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울고 있는 사람도 있다. 특히 정치 실세들의 잇따른 낙마가 무엇보다 눈길을 끌고 있다. 앞으로 국정방향이 어디로 진행될 지 바로미터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총선에서는 MB 주요 측근실세의 몰락과 3김 정치의 한 축인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차남인 ‘리틀 DJ’ 홍업의 낙선이 큰 이슈다. MB는 대통령 신분으로 이재오 후보의 지역구를 직접 방문했으며, 87세의 이희호 여사는 아들의 지역구를 세 차례나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탄력을 받지 못하고 낙마했다. 현직 대통령과 전 영부인의 지원사격에도 민심은 동요하지 않았다. 왕의 남자들, 그들의 낙마 배경과 앞으로의 정국방향을 더듬어본다.
DJ의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이라던 호남지역, DJ의 고향인 하의도가 위치한 전남 무안·신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DJ 차남 홍업의 낙마는 이번 총선의 이변 중 이변이었다. 87세의 전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직접 세 차례나 방문해 지지를 호소했지만 유권자들에게는 공염불이었다. DJ의 그림자만 보아도 조건반사적으로 일어났던 표심이 자취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에 무엇보다도 DJ를 축으로 결집되던 야당의 충격은 이만저만하지 않다. DJ가 민주당 공천심사 때 아들의 공천을 위해 종교인과 재야 지식인 그룹을 통해 집요하게 아들의 공천 민원을 했다는 설이 파다하게 돌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무소속 홍업의 낙마인 것이다.
심상찮은 영호남민심
이에 DJ가 당내에서조차 아들의 공천을 받지 못할 만큼 힘이 약해졌으며 설상가상으로 고향에서조차 외면당해 ‘DJ 시대의 종식’라고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개표결과 민주당 황호순 후보와 무소속 김홍업 후보가 신안군을 중심으로 윗섬, 아랫섬 전쟁을 벌이는 동안 여론조사 내내 3위를 차지했던 무소속 이윤석 후보가 무안군의 표심을 받아 어부지리 당선됐다는 것이다. 또한 ‘리틀DJ’의 낙마와 달리 ‘DJ의 분신’이라 불리는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목포에서 당선돼 DJ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또 친MB계의 낙마도 이변 중 이변이었다. 공천심사에서 친박계 배제를 주장했던 이재오 의원, 이방호 사무총장, 정종복 사무부총장은 ‘공천심사위원회의 저주’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이번 총선에서 줄줄이 떨어졌다.
특히 대통령의 2인자이자 친이계의 좌장인 이재오 의원은 서울 은평을에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패배했다. 대통령의 남자답게 MB가 직접 지역구를 챙기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사격을 했으나 문국현 후보의 ‘대운하불가론’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또 한나라당의 공천을 떡 주무르듯 움켜주었던 이방호 사무총장도 박근혜 의원의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의 낙선운동 등으로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에게 금배지를 넘겼다.
또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대변인을 지냈고 박형준(부산 수영) 의원과 한반도 대운하공약을 도맡아 추진해 온 박승환(부산 금정) 의원 등도 원내 재진입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구심점을 잃은 MB는 당권싸움과 MB노믹스 추진에 급제동에 걸린 셈이다. 항간에는 이재오 의원이 여의도를 떠나 칩거하지 않겠냐는 말이 나돌고 있다. 오른팔을 잃은 MB가 내각으로 끌어들여 중심으로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의원의 존재는 친박세력을 껴안야하는 MB로서는 울며겨자 먹기식의 내부통합을 위해서는 버릴 수도 껴안기도 벅찬 ‘뜨거운 감자’로 전략해 버렸다. 자신들이 휘두른 칼날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 셈이다.
공천실세 이방호 탈락 대이변
또한 민주통합당의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의 최대 계파의 수장들도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에 민주당은 지도부의 공백으로 말미암아 정국운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변을 낳았던 18대 총선에서 여야 모두 예상치 못한 결과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야의 큰 축을 담당했던 왕들의 남자들은 모두 뜻하지 않은 암초를 만나 전복됐다. 하지만 이들의 컴백은 시간문제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아직도 수장들의 파워와 힘이 건재하고 민심과 수심(首心)은 언제나 같지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백은영 기자 about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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