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프로젝트 수면 위로

“한마디로 박근혜를 위한 총선이었다.”
전국 유세에 나서지 않았지만 ‘박풍’은 여전히 살아있는 실체였다.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겨우 넘긴 것도 친박연대와 영남권 무소속 연대의 선전이 크게 작용했다.
4·9 총선을 통해 박 전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품고 안아야 할 대상으로 분명히 자리매김했다. 차기 대권을 향한 첫 발걸음도 순조롭게 시작한 셈이다.
한나라당 안팎의 친박 진영에선 벌써부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움직임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총선 이후 박 전 대표의 행보에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다. 한나라당을 탈당했던 친박 인사들의 ‘복당 여부’는 그 일차적인 가늠대가 될 전망이다.
“결국 박 전 대표에게 도움을 요청할 날이 올 것이다.”
선거 기간 친박 무소속 연대의 좌장 김무성 의원이 내놓은 위협은 결코 공포탄이 아니었다.
당 밖에서 당선된 인사만 26명 가량이고 당내 친박 인사까지 포함하면 60여명에 이른다. 친박 진영 관계자는 “친박에 우호적인 중립 인사까지 합치면 80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MB-박 전략적 제휴 필요”
친 이명박 대통령 그룹도 박 전 대표의 위상이 총선 전과는 몰라보게 커졌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최소 40여명은 되기 때문에 이들의 도움 없이는 원활한 국정 운영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당내 당선자 153명 중 확실한 친박 진영은 32명 정도다.
서울의 진영 이혜훈 이성헌 김선동 구상찬 당선자가 박 전 대표와 가깝다. 경기에선 유정복 김영선 황진하 당선자 등 6명이, 인천에선 윤상현 조전혁 당선자가 친박계로 분류된다.
부산에서도 허태열 서병수 현기환 당선자 등 6명을 배출했다. 대구에선 박 전 대표를 비롯 주성영 유승민 서상기 당선자가 나왔다.
충북의 송광호 당선자, 강원의 이계진 당선자 등 당내만 해도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다.
친박연대와 친박무소속연대 등 외부 그룹 당선자는 26명 가량이다. 친박 무소속연대의 한선교 이경재 당선자, 친박연대의 홍장표 당선자 등 수도권에서도 적지 않게 배출됐다.
60여명 안팎의 당선자가 박 전 대표의 일사분란한 지휘를 받는다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도 “박 전 대표 도움 없이 정국을 끌어가는 건 쉽지 않다”며 “결국 전략적 제휴를 모색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현실을 인정했다.
“청와대 따로, 당 따로”
더구나 친박 진영은 기대 이상의 당선자를 배출함과 동시에 또 다른 중요한 목표를 일궈냈다. ‘물갈이 공천’의 주범으로 주목한 이재오 의원과 이방호 사무총장이 모두 총선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다.
박 전 대표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친박 진영의 최종 목표는 총선을 통해 더욱 분명해 졌다.
친박연대의 이규택 의원은 “우리는 5년 후 박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할 사람들”이라고 존재의 의미를 규정했다. 강재섭 대표의 지역구에서 당선된 홍사덕 전 의원도 “반드시 당에 돌아가 박 전 대표를 튼튼하게 지키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선 당시 친박 캠프 조직을 담당했던 핵심 관계자는 “일단 차기 대권을 위해 박 전 대표가 당에 잔류해야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며 “하지만 외부 지지그룹이 존재하는 만큼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한 상황이란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가 친박 진영에 어떤 당근을 내놓느냐에 달렸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와의 관계를 복원하거나 당권·대권 분리를 약속할지가 관건이다.
박 전 대표는 지난 공천 과정에서 “약속은 깨졌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청와대와 친이계에 화살을 던진 바 있다.
친박연대 관계자는 “친이계가 정몽준 의원을 박 전 대표의 대항마로 일치감치 세우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며 “이재오, 이방호 의원이 왜 낙선했는지 되씹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 끌면 어려워진다”
박 전 대표의 결단과 관련 일차적인 승부는 탈당파 친박 인사들의 ‘복당 여부’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지역구에서 당선된 김무성 홍사덕 의원은 “조건 없이 개별 복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서청원 전 대표 등 비례대표 당선자들은 ‘당 대 당’ 통합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조건 없는 복당을 신청하고 한나라당에 들어가겠다”면서도 “개원 전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당 밖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밖에 없다”고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비례대표를 포함 14석을 획득한 친박연대는 더욱 여유 있는 분위기다. 서청원 공동대표는 “비굴하게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며 “다른 정파들과 연대해 교섭단체를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친박 대리인’ 가능성
당내 친박계 핵심인 유승민 의원이 “정치적인 통 큰 결단”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시간을 끌다 보면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연대가 결합해 하나의 정당이 돼 고착화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박 전 대표도 “복당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한나라당 인사는 “최악의 경우 외부 친박 세력이 연대해 독자적인 교섭단체를 새로 구성하고 일부 인사들이 자유선진당으로 가게 되면 2개의 교섭단체가 더 생기게 된다”며 “당으로선 박 전 대표쪽을 반드시 껴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친박 진영에선 박 전 대표의 당권 도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꽃놀이패’를 쥔 것은 사실이지만 일치감치 여당 대표를 맡는 게 부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권이 총력을 기울여 추진하고 있는 ‘대운하 구상’ 등을 놓고 박 전 대표와 친박 진영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표시한 것도 부담이다. 박 전 대표가 새정부 출범 전 총리직 제의를 거절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때문에 박 전 대표는 당권에 도전하더라도 청와대의 입김에서 최대한 벗어날 수 있는 약속을 받아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당내 친박계와 외부 친박 정치세력은 강력한 엄호사격을 퍼부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박 전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세 가지다.
차기 전당대회에서 당권에 도전, 여당 대표로 일치감치 자리매김하는 게 첫 번째 안이다. 이 경우 친박연대와 무소속 친박연대가 모두 당에 복당해야 무난한 안착이 예상된다. 이 대통령과 ‘책임론’을 함께 해야 한다는 점에서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두 번째는 외부 지지세력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박 전 대표 등 당내 친박계가 친이계와 내부 투쟁을 벌이는 것이다. 전당대회엔 친박진영을 대표해 박 전 대표의 대리인이 나설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친이계와 친박계가 ‘복당 문제’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당내 친박계가 뛰쳐나가는 것이다. 외부 친박 진영과 ‘박근혜 신당’을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지만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많지 않다.
친박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 “최종 목표를 위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을지 고민 중”이라며 “당 장악도 중요하지만 국민들 시선이 무엇보다 우선이다”고 말했다.
총선 이후 또 다른 ‘봄날’을 맞은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의 팽팽한 신경전에서 어떤 결단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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