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 신호탄 “쾌도난마”

초과 근무를 하지 않았는데도 시간외 수당 명목으로 수 백 원억 원의 혈세를 빼 돌리고, 업무추진비를 유흥비와 사비로 흥청망청 써 버리고, 인사 청탁을 받고 점수를 조작해 합격자를 바꿔치기하고… 감사원의 예비감사에서 적발된 공기업 비리의 천태만상이다.
본 감사가 시작되면 비리는 더 드러날 전망이다. 특히 이번 감사에 대해 ‘공기업 민영화의 신호탄’, ‘낙천 인사를 배려하기 위한 공기업 기관장 솎아내기’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감사원은 지난달 31일 31개 주요 공공기관의 경영실태(2002~2006년)에 대한 10일간의 예비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위에 열거한 비리 외에도 부실 경영을 숨기기 위한 가짜 공문서 작성과 편법 수의계약과 대출업체로부터의 향응성 골프 접대 등 각종 비리와 방만 경영 실태가 드러났다.
한국마사회는 2001년부터 시간외 근무수당을 아예 기본급으로 전환해 직급별로 정액 지급하다가 2004년 11월부터는 또 다시 별도 시간외 근무수당 항목을 편성했다. 2006년 12월부터 이마저도 기본급에 편입하는 등 지난 7년간 초과근무 시간과 무관하게 지급된 시간외 근무수당으로 230억여원을 착복했다.
31개 공기업 경영실태 현황
중소기업은행과 한국 수출보험 공사 등도 지급대상이 아닌 간부에게 시간외 근무수당을 주는 등 공기업 상당수가 시간외 수당을 전 직원 나눠먹기식으로 사용했다.
한국토지공사는 사내근로복지기금 265억여원을 사실상 급여나 다름없이 직원들에게 지급했고 증권예탁결제원은 법인카드를 유흥비로 쓰거나 상품권 또는 황금열쇠 등을 구입하면서 모두 8억4800여만원을 집행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외주 용역대상인 톨게이트 운영권을 장기근속자에게 수의계약으로 나눠주다 적발됐다.
감사원은 또 허위문서를 만들어 회사채를 발행하거나 신입사원 면접 때 점수를 조작한 대한석탄공사와 증권예탁결제원 등 공기업 임직원 10명을 배임과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요청했다고 밝혔다.
대한석탄공사는 시설투자비로 부도난 회사 어음을 사고 허위문서까지 만들어 회사채를 발행했다가 1100억원의 손실을 봤다. 증권예탁결제원과 한국 조폐공사, 그리고 대한 석탄공사는 청탁받은 응시자를 합격시키기 위해 점수를 조작해 기준 미달자를 합격시켰다.
감사원은 이달 18일까지 31개 공공기업에 대한 본 감사를 마무리하고 5월부터는 다른 공기업들로 감사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결과가 나오는 대로 결과를 기획재정부에 바로바로 통보해서 공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한 근거자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감사원 감사를 통해 부실 공기업을 가려내고 해당 기관장을 퇴출시킨 뒤 기업인 출신들을 포진시켜 공기업 민영화를 이뤄간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같은 기업CEO 출신의 공기업 사장 기용방침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기업 민영화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로 이해되고 있다.
청와대 의중 담긴 감사 될 듯
금융계에서는 한국증권예탁원과 코스콤(옛 증권전산),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기관장들이 물러나고, 한국전력공사 이원걸 사장, 한국가스공사 이수호 사장, 한국석유공사 황두열 사장 등도 1차 공공기관장 퇴출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마사회 이우재 회장, 한국수자원공사 곽결호 사장, 한국지역난방공사 김영남 사장, 한국공항공사 이근표 사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이재희 사장, 인천항만공사 서정호 사장 등도 퇴출대상자에 포함될 것으로 파악된다.
#신임 감사원 사무총장의 야망
칼 빼든 ‘감사원 리베로’
“체계적인 감사를 통해 민영화 대상 공기업을 분류해서 정부의 짐을 덜어야 한다는 입장”
남일호(55) 감사원 사무총장이 지난 19일 공기업 감사와 관련해 던진 말이다. 남 총장은 감사의 최종 목표가 공무원 기강확립보다 공기업 구조조정에 있다는 점을 굳이 숨기지는 않는다.
“표적 감사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되는 거죠. 또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경북 안동 출신이라고 해서 ‘안동 양반’으로 통하는 사람답게 요란하지 않지만 오랫동안 사정기관에 몸담은 관록이 몸 전체에서 배어난다. 남 총장은 감사원 후배들로부터 ‘같이 일하고 싶은 상사’로 손꼽힐 정도로 신뢰를 얻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사람만 좋은 것은 아니다.
안동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감사원 기획홍보 관리실장과 감사교육원장, 제2사무차장 등 다양한 업무를 섭렵한 몇 안 되는 ‘정통 감사인’으로 자신을 간혹 ‘감사원 리베로(libero)'에 비유한다.
남 총장은 황우석 사건 때 국가연구개발 지원 관리 실태에 대한 소신 있는 감사와 대학수학능력시험 관리 실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한 감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오경섭 기자 kbswave@daily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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