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서 떨어지면 차기대권도 없다

꺼져가던 불씨가 되살아났다. 박재승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의 활약으로 희망을 되살린 구여권 내 잠룡들이 4월 총선을 계기로 화려하게 부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전략공천’의 일환으로 서울 강남북에 나란히 배치된 손학규 대표(서울 종로)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서울 동작을)은 “반전의 씨앗을 봤다”며 발걸음을 재촉 중이다. 추미애 전 의원(서울 광진을)도 이번 총선에서 재기해 더 큰 꿈을 만들어가겠다는 포부다.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외부의 적들뿐만이 아니다. 통합민주당 내 거물 정치인들 사이에선 차기 대권을 향한 신경전이 벌써부터 뜨겁다.
과거 지역구를 떠나 서울로 특별 파견된 손 대표와 정 전 장관은 이번 총선을 통해 당내 입지를 마련하겠다는 포부다.
다시 만난 ‘2002년 악연’
손 대표의 종로 출마는 당 안팎의 요구도 나름 거셌지만 ‘정치 1번지’라는 전략적 차원도 크게 고려됐다. 과거 윤보선·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모두 이곳에서 당선됐다.
더구나 한나라당 후보는 이 대통령과 가까운 박진 의원이다. 터줏대감을 자처하는 박 의원을 이기고 국회 입성에 성공한다면 손 대표는 차기 대권을 향한 확실한 디딤돌을 만들 수 있다.
이 대통령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곳인데다 청와대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서울 종로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서울 동작을에 출마한 정 전 장관의 마음은 한결 급하다.
이미 총선 과정에서 측근들 상당수가 탈락하며 예전보다 힘이 약해졌다. 맞설 상대가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2002년 대선 전날, 그 때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마지막 종로 유세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 정 전 장관과 추 전 의원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는 정 의원이 지지를 철회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총선 결과에 따라 차기 잠룡인 두 사람 중 한 명은 대권 도전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정 전 장관 쪽은 동작을 선거뿐만 아니라 서울 서남부 지역 의원들의 생존 확률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유 있는 ‘추다르크’
민주당 당직자는 “정 전 장관이 대선 패배에 이어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신다면 사실상 ‘패배자’로 낙인찍히게 된다”며 “이번 총선에 정치적 운명이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
‘추다르크’로 불리는 추 전 의원도 이번 총선을 발판으로 큰 꿈을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서 몇 안 되는 ‘안정 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첫 출발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손 대표와 정 전 장관이 힘겨운 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나 홀로 생존’에 성공할 경우 당 내 입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탄탄해 지게 된다.
공천 과정에서 구 민주당계가 상당수 탈락해 추 전 의원은 양쪽을 아우르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나라당 공천 탈락에 반발했던 길기연 광진을 당협위원장이 막판 불출마를 선언해 박명환 후보의 추격이 거센 상황이다.
통합민주당에선 이 들 세 사람 외에 강금실 선거대책위원장을 또 다른 잠룡으로 분류하고 있다. 서울 은평을에서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과 맞붙는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와 대구 수성을에서 출사표를 던진 유시민 무소속 의원도 대권 도전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인물들이다.
구여권 잠룡들이 이번 총선에서 재도약의 첫 단추를 어떻게 꿸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승현 기자 okkdol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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