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대 총선 이후 박 대표는 한나라당을 이끌며 대표 프리미엄을 적극 활용, 공조직을 사조직화해 세를 확보해 왔다는 게 정설이다. 지난 연말부터 박 대표 측근의원들의 사무실을 대선캠프로 사용하고 있다는 여의도 정가의 소문에 대해서도 박 대표측에선 일축해 왔다.
판세 가른 침착한 대응
하지만, 박 대표가 입원중인 기간 ‘박근혜 대선캠프’ 가동에 대한 소문은 더욱 짙어졌다. 유정복 비서실장에 따르면 피습 이튿날 박 대표는 선거대책을 보고받은 뒤 “정치적으로 오버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선거가 끝난 지금까지도 정객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대전은요?”는 5월22일 병상에서 선거 상황을 보고받으며 한 말이다. 선거전문가들은 이 발언이 대전의 판세를 결정적으로 뒤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진단하고 있다.
또 박 대표는 24일 오후 한나라당 지방선거 후보자와 당원들에게 친필 서신도 보냈다. 세브란스병원에 비치된 메모장에 작성된 이 메시지에서 박 대표는 사고 염려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으며, 투표일까지 법을 어기지 말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지난 5월29일 박 대표가 퇴원하던 날, 세브란스 병원 20층 VIP병동을 나와 3층 로비에서 전달한 ‘대국민 메시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박 대표는 “내 얼굴의 상처보다 국민의 마음에 상처가 나지 않았을까 걱정”이라며 “저의 피와 상처가 우리나라의 모든 상처를 봉합하고, 하나의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이어 “이번에 내가 무사히 병원을 걸어 나가는 것은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남은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부강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했다. ‘남은 인생은 덤’이라는 대목에선 여성으로서 테러를 당했다는 ‘동정론’과 그가 유력 대권주자라는 정치적 입지가 뒤범벅이 돼 묘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게다가 박 대표는 피습 당시 입었던 청재킷에 주황색 셔츠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앞서 나열한 언행만 하더라도 절제된 병상 정치의 교과서적 행보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병상에서 전략보고서 탐독
의혹의 뿌리도 여기서 시작된다. 입원 직후 박 대표는 유력 정치인들의 병문안도 거절했다. 물론,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병원측의 요구도 있었으나, 주목할 대목은 유 실장을 비롯해 몇몇 측근들은 일방통행이었다는 것. 게다가 유 실장은 입원 기간 건강상태 등과 관련 사안이 생길 때마다 병원에서 즉석 브리핑을 통해 언론에 공개했다. 하지만, 박 대표가 입원한 병실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모른다.
바로, 박 대표의 언행을 코치하는 또 다른 ‘창구’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이에 한나라당 대표비서실 핵심 관계자는 “사고 당사자의 발언 및 연설은 누가 대신해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과거 퍼스트레이디 대행 시절 몸에 밴 의전이 위기에 직면해 드러났다고 했다. 그러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전을 향해 보였던 박 대표의 집요함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피습 사건이 나기 전만 해도 열린우리당 염홍철 후보와 20% 포인트 이상 벌어져 사실상 한나라당 패배가 확실시됐던 대전시장 선거는 박 대표의 “대전은요?” 발언이 전해진 뒤 혼전 양상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5월31일 최종 선거결과가 발표된 직후 ‘만세’가 터져 나온 곳은 한나라당 박성효 당선자 캠프다. 대전 승리의 요인이 박 대표라는 데 이견은 없다. 퇴원하자마자 지원유세에 나선 곳도 대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 대표의 대전행은 언제 결정됐을까. 애초 박 대표는 퇴원 후 삼성동 자택에서 안정을 취할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박 대표의 행보에 있어 강한 의문점이 남는 대목은 바로 여기다. 박 대표가 퇴원 직후 향할 지원유세장은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던 대전이 아니라, ‘광주’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나라당 한 핵심 당직자는 “선거가 치러지기 전 박 대표가 퇴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런 저런 루트를 통해 선거전략 보고서가 올라왔다”면서 “이를 통해 박 대표의 퇴원 직후 지원유세는 광주로 잠정결론이 나 있는 상태였다”고 했다. 앞서의 비서실 관계자 역시 “퇴원 직전까지 박 대표의 거취와 관련, 전혀 통보받은 바 없다”고 했다. 박 대표의 대전행이 갑작스럽게 결정됐다는 얘기다.
방문지 바꾼 이유 ‘아리송’
이유야 어찌됐든, 박 대표가 광주에서 대전으로 급선회한 이유도 짚어볼 대목이다. 일단, 퇴원 후 첫 방문지역으로 광주를 택했던 데는 한나라당에 심드렁한 호남민심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권재창출과 박 대표 개인의 대선 레이스를 위해서도 ‘서진정책’은 대표최고위원회에 취임한 이후 박 대표가 진행한 지속적인 정책 중의 하나다.
한나라당 입장에서 호남은 취약지구이며, 광주는 여야를 막론하고 호남민심의 풍향계라 할 수 있는 전략요충지이다. 때문에 박 대표도 올 들어 5차례 이상 호남을 방문하며 공을 들여왔다. 5·31 지방선거 선거운동 첫날인 5월18일에도 당 지도부와 함께 광주를 찾았다.
그런데, 이날 박 대표는 남총련 대학생들의 시위 때문에 준비했던 ‘광주·전남도민에게 드리는 글’도 낭독하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다. 버스에 오르는 박 대표를 향해 플라스틱통도 날아들었다. 막상, 광주행을 택하고 보니 5월18일의 ‘봉변’이 부담이 됐던 것은 아닐까. 당선권에 든 후보가 없는 호남을 버리고, 상식적으로 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대전을 택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이금미 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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