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북구 서방에서 남구 양과동 수춘마을로 옮겨온 아픔
- 수춘 마을 연꽃방죽 지나 하늘구름이 머무는 고요한 공간

[일요서울ㅣ전남 강경구 기자] 여기 저기 수국이 피어나는 여름은 파랗고 붉은 꽃잎을 아쉽게 떨구며 일상을 흘러 세월 저편으로 우리들의 현란한 기억들을 여지없이 보내버린다.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19로 인한 공포스런 멈춤을 통해 인간은 정말 연약하고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해준다. 하지만 그런 날들마저 지금 소리 없이 가고 있지 않는가?
“정말 기다리면 되는 걸까?” “이 또한 지나가는 것일까?”
갈급한 짐승에게 하늘에서 내려주는 고마운 비처럼... 누군가 천사가 되어 하염없이 뿌려주는 아름다운 꽃들을 만지기만 해도 온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그런 기쁨이 허락된다면... 그 꽃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그리운 벗이 되고, 받고 싶은 선물이 되어 조용히 조용히 피멍든 가슴을 위로해주고 내려앉은 고름딱지들을 깔끔하게 치워버리고는 ‘자! 너의 삶을 다시 시작해!’라고 말해줄 것 같다.
“다시 시작했으면 좋을 것 같은 2020년... 구름 끝자락이 머문 곳 노의웅 미술관...”

광주 남구 끝자락 양과동... 지리적으로 나주와 맞닿은 곳이다. 바로 옆이 전남 나주시 남평이고, 광주 지명은 대촌이다. 제법 큰 저수지가 짙푸른 여름을 버티고 서있다. 이름하여 수춘마을 연꽃방죽... 물빛을 흐르는 하늘 구름이 두둥실 고요하고, 정말이지 뭔가를 뿌려줄 것처럼 길게 늘어선 구름떼가 멋있다. 목줄에 단속되고 있는 하얗고 토실한 흰둥이 진도개가 짖으며 와락 덤벼들 것 같은 한적한 곳...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 끝자락이 머문 곳에 제법 멋진 미술관이 눈에 들어온다.
정말 반가운 분을 만났다. 기억 저편의 것들을 자꾸만 소환시키는 그런 마력의 꽃을 뿌려주시는 분이다.
무거웠지만? 다시 시작된 즐거운 만남...

그가 정말 사랑했던 고향집인 북구 우산동을 떠나온 지 몇 해가 흐르고 있다. 절절한 고향추억을 듣다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대화가 부담이 되시는 듯 다시 노 화백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구름천사’ 이야기로 방향을 바꾼다. 전시관 이 곳 저 곳에서 천사들이 꽃과 추억을 뿌려준다.
지난 2011년, 그러니까 9년 전 그는 전국 최초로 설립된 광주 북구청 자미갤러리의 명예관장이었고, 2010년에는 북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구민에게 주어지는 ‘북구 구민상'을 수상할 정도로 북구와 우산동을 그의 삶에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 그 자체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역 문화 창달과 남다른 헌신... 그리고 갤러리 운영 지원과 북구 미술문화 발전에 대한 그의 공헌이 당시 표창 수상 이유였지만 어디 그에게 광주 북구가 주는 의미가 한 장의 표창장으로 다 설명 될 수 있겠는가?
재개발을 진두 지휘하던 절친한 친구와 끝내 차갑게 결별하며 눈물 훔치던 순간, 모든 추억과 소중한 인연들과도 단숨에 멀어져 버렸다. 끊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모진 이별이 도사리고 있는 광주 땅을 벗어나지 않았다. 너무도 그립고 사무치는 고향땅을 지금도 가끔 지나다녀야 한다. 그에게 고향은 아파트 숲이 되어 견고한 무게로 사랑과 여유로움을 묻어놓고 있다.
“말바우와 말무덤, 그리고 경양방죽과 태봉산을 오가던 그 아름답고 빛나던 유년들”

회색빛 단지 어딘가로 잊혀진 수많은 추억들... ‘그리움’은 오래도록 하염없이 그를 붙잡고 정든 땅을 바라보게 하지만 현실은 냉엄하고 비정하게 유년을 송두리째 지워버렸다. 말바우와 말무덤, 그리고 경양방죽과 태봉산을 오가던 그 아름답고 빛나던 유년들이 눈에 밣혀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때마다 속이 아리고 분노마저 솟아올랐지만 구름천사는 여지없이 환하게 웃으며 꽃으로 사랑으로 갚으라 했다. 몽실 몽실 피어나는 구름천사는 하염없이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의 산 무등산에서 오늘도 여지없이 꽃을 뿌린다.

노 화백이 사는 곳은 이제 같은 광주이긴 하나 남구 양과동이다. 다시금 시작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서서히 단절된 세상과의 문이 열리고 있다. 70년간이나 살았던 곳... 사계절 하늘을 담아놓았다는 그 곳... 푸르디 푸른 하늘과 멀리 우뚝 솟은 무등산이 절경이었던 곳을 영원히 마음속에 담아놓고서 양과동 수춘마을을 걷는다.
어쩌면 지금의 그에게서 느껴지는 작지만 큰 ‘외로움’들은 떠나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주는 것들이 분명하지만, 더욱 분명한 것은 그가 세상이 처한 어려움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며 그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위로해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제 곧 있을 노의웅 미술관의 특별한 계획들을 기다려보면 답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 구름천사가 주는 삶의 매력 속으로 한걸음 더 발걸음을 내딛어 본다.
강경구 기자 istoday@ilyoseoul.co.kr